마이산의 조선시대 이름은 속금산(束金山)이다. 태조 이성계가 금척(金尺)을 여러 개를 묶어서 신인(神人)으로부터 받았다는 뜻이다. 금척은 금으로 된 잣대를 말한다. 이와 관련해서 2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그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내용이 비슷하다.

▲ 이성계가 무릎을 꿇고 신인에게 금척을 받았다는 몽금척도이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이산 은수사 태극전 내에 걸려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금척의 기원

신라의 시조가 꿈에 하늘에서 신인(神人)이 내려와 금척을 주며 말하기를, “너는 문무에 뛰어나고 신성하여 백성이 바라본 지가 오래되었으니 이 금척을 가지고 금구(金甌: 금으로 만든 단지, 나라를 뜻함)를 바로 잡으라! 고 하였는데 꿈을 깨보니 금척이 손에 들려 있었다고 하였다. - 『동경잡기』

임금(=태조 이성계)이 잠저(潛邸)에 있을 때, 꿈에 신인(神人)이 금척(金尺)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와 주면서 말하기를 “시중 경복흥(侍中 慶復興)은 청렴하기는 하나 이미 늙었으며, 도통 최영(都統 崔塋)은 강직하기는 하나 조금 고지식하니, 이것을 가지고 나라를 바로 잡을 사람은 공(公)이 아니고 누구이겠는가?”하였다. - 『태조실록太祖實錄』

박혁거세와 이성계는 모두 신인을 만났고 금척을 받았다. 그렇다면 신인은 누구일까? 일부에서는 단군(檀君)이 아닌가라고 추정한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나라를 보호하는 신(神)인 것만은 분명하지 않을까? 다만 금척을 ‘단군조선’에서 찾고 있는 문헌이 있어 관심을 끈다.

신라 박제상(朴堤上, 363〜419)의 저술로 알려진 『부도지』가 그것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혁거세왕이 미천할 때에 신인이 금척(金尺)을 주면서 이 금척을 가지고 금사발(金甌)을 바로잡으라고 말했다 하고, 일설에는 금척과 옥피리가 칠보산에서 나와 혁거세왕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칠보산은 영해의 명산이요, 백두산 아래 명천부에 또 칠보산이 있으니, 어느 산인지 알 수가 없다. 만약 후자라면 이는 반드시 옛날의 일이어라. 신라 창시의 근본이 이미 부도에 있었으니, 금척(金尺)의 법이 또한 단군의 세상에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금척의 경로가 2가지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첫 번째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박혁거세와 관련한 것이고 두 번째는 신라 창시의 근본이 부도라는 점을 이유로 단군조선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왕의 정치적 목적 vs 혼을 살린다!

▲ ‘부도지’는 금척의 기원을 단군조선에까지 소급하고 있다(표지=한문화)
『한국선도와 금척』을 주제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 석사학위를 받은 박정대 씨는 “금척 기록 대부분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을 정당화하는 정치적 목적이 많다. 반면 민간에 전승된 설화나 유적 등에서는 사람의 혼을 살려내며 죽은 사람까지도 살려낸다는 한국선도의 수행적 의미까지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주지역 민간설화를 정리한 신문기사 ‘금척으로 재서 죽은 사람을 살려(동아일보 1927년 9월 24일)’와 ‘서악역에서 볼 수 있는 금척릉이란 무엇인가?(1939년 2월 26일)’가 그것이다. 또한 사람이 잠을 잘 때 혼쥐가 몸 밖으로 나온 과정이 꿈이 된다는 설화가 있다. 흰 쥐가 문턱에 걸려 높은 곳을 못 올라갈 때 자를 대주어 올라갈 수 있도록 해주는 내용이다. 여기서 흰 쥐는 혼을 상징한다.

한편 금척 관련 유적과 유물이 있다. 경북 경주시 건천읍 금척 고분, 경북 상주시 은척면 은자산, 전라북도 마이산 은수사 태극전 등이다. 박 씨는 “태극전은 신라시대를 넘어서 단군조선시대의 한국선도 전통에까지 소급한다”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까? 다음 편에서 소개한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