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을 모신다고 하면 종교적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단군은 신(神)이 아니고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그럴 때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공자님을 모시는 유학자나 부처님을 모시는 스님들이 단군을 모시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유학자나 스님들은 말한다. 종교 이전에 국조가 먼저라고.
그런 점에서 전라북도 고창군 단군성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학자들이 발의했고 군민의 성금으로 지었다.
단군성전을 건립하기까지
단군성전은 교촌마을 성산(聖山, 168.4m)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자를 풀이하면 ‘성인(聖人)의 산’이다.
어릴 적에 배웠던 교과서에는 성인들이 나오지만 대부분 외국인이다. 왜 한국인은 한국의 성인을 기리지 못하는가?
홍익정신으로 나라를 건국한 단군왕검이 성인 중의 성인이 아닐까? 성산에 세워진 단군성전을 보고 든 생각이다.
성산은 고창의 주산인 방장산(方丈山, 743m)에서 출발한다. 벽오봉 서쪽을 향해 구붓구붓 이어오는 산굽이를 내려오면 동서대로의 지하도가 나온다. 고개를 들고 쳐다보면 우뚝 솟은 속칭 필봉이 보이는데 거기서부터 높고 낮은 산 능선을 따라 걷다 보면 멈춰버린 산이 성산이다. 필봉에서 성산기슭까지 안겨있는 마을들이 법정리의 교촌리이고 그 중심이 교촌마을이다.
이곳에 대표적인 문화유적은 어사각, 옛 고창고등보통학교 강당, 고창오거리당산제 보존회, 고창향교 등이 있다.
어사각(御賜閣,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7년간 호남 전투에서 전사하거나 자결한 사람들의 의열(義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1938년 건립한 옛 고창고등보통학교 강당(등록문화재 제176호)은 근대 학교 건축 형태와 분위기를 잘 간직하고 있는 대일항쟁기 지방 교육 시설이다.
고창오거리당산제보존회(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37호)는 고창읍 오방(五方)에 당산을 세워 풍년을 기원하고 액운을 쫒는 토속 행사인 오거리 당산제를 주관한다.
고창향교(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98호)는 고려 공민왕 때 향학당이란 이름으로 학당동(현 고창읍 월곡리)에 있던 것을 옮긴 것이다. 과거제도가 폐지된 1894년까지 많은 인재를 배출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향교의 유림은 1970년대 후반부터 단군성전 건립에 나섰다. 왜 갑자기 단군을 모시게 됐을까? 신휘관 단군성전보존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전라도에서 우리보다 먼저 생긴 곳이 4〜5군데가 있었어요. 다른 지역은 공자님을 모시면서도 단군을 모시는데, 우리가 잊을 수 있느냐? 그런 뜻에서 단군성조를 모셔야 한다고 해서 시작했어요.”
군민들의 순수한 정성
단군성전이 있던 곳은 본래 향교의 땅이었다. 당시에는 집이 몇 채 있었고 주민들이 밭으로 활용했다. 성전 건립은 유림이 시작했지만 군민의 모금으로 거국적으로 진행됐다고 한다.
“그때는 기독교인도 협조해주었어요. 많은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당시 건립에 동참한 인원만 1,250여 명에 달했다. 많게는 벼 20석, 적게는 1가마씩 무려 1,125석이 모여 1979년 성전을 세웠다. 성전 앞마당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성금에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단군성전을 참배하러 왔다면, 건립의 주역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성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군성전은) 군민의 순수한 성금으로 이룩한 우리 고장의 자랑”이라는 신 회장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 성전을 둘러보자.
성전으로 가는 모양성로에는 ‘단군성전’이라는 표석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큰 바위처럼 이곳을 지키는 듯했다. 입구인 홍살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홍익문이다. 문을 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 한와로 지은 단군성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좌우로 단군전 건립사적비와 건립 동참자 비문이 있다. 동재나 서재는 없다. 화장실만 하나 있었다.
성전의 문을 열자 색이 짙고 근엄한 표정의 단군영정을 만날 수가 있다. 절은 4번 올린다. 제례는 유교식으로 치른다. 대표적인 행사인 개천절에는 박우정 군수가 직접 참배한다. 이전에도 그랬다고 한다. 그 외 삼짇날(음력 3월 3일), 단옷날(음력 5월 5일), 중굿날(음력 9월 9일), 동짓날(12월 22일)에 추모분향을 세 향교의 전교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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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 단군문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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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