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남도 해남군 서림공원 내 단군전이다. 향토유적 12호(사진=윤한주 기자)

지난달 31일 전라남도 해남단군성조영모회(회장 박기철)를 찾았다. 사무실(해남읍 수성2길 11-5)은 해남종합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이었다. 

이곳에선 영모회라는 이름보다 수성회로 통한다. 마을이름이 수성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경로당이기도 하다. 박기철 회장은 “영모회가 수성회이고 수성회가 영모회”라고 말했다. 
 
▲ 전라남도 해남군 서림공원 내 단군전이다. 오른쪽은 홍익문화운동연합이 세운 통일기원국조단군상(사진=윤한주 기자)
 
이날 영모회에서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단군영정’이다. 하지만 백운 이종철 선생(白雲 李鍾轍, 1879-1938)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서 가져온 단군영정은 아니었다. 이 영정은 1963년 설산雪山이란 화백이 그린 것이다. 
 
전국을 다니면서 만난 단군지킴이들은 영정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다. 충청남도 서산 와우리에서 단군 영정을 금고에 보관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모회도 단군 영정을 따로 보관하고 있었다. 단군전에 있는 영정은 모사본이다.
 
▲ 단군전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많아서 인상적이었다.(사진=윤한주 기자)
 
이제 단군전(구교리 346)을 찾아가보자. 자동차로 가면 5분이다. 서림공원에 있으니 모르는 주민은 없었다. 공원이라 그런지 무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울창한 나무 그늘에 앉으니 삼림욕이 따로 없었다. 
 
단군전 앞은 기념비가 많았다. 기미독립선언서기념비가 있다. 1919년 4월 6일 해남읍 보통학교 학생들은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어 11일 김동훈 안창석 등의 주도로 해남 장날에 운집한 수백 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민족정기를 후손에게 전하기 위해 1946년에 건립한 것이다.
 
▲ 단군전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다포양식의 맞배지붕으로 건립됐다.(사진=윤한주 기자)
 
또 단군성조숭모비가 있다. 안쪽에는 홍익문화운동연합에서 민족사를 바로 찾기 위해 세운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단군전은 잔디 위로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다포양식의 맞배지붕이다. 제상과 위패 그리고 단군영정이 전부다. 제기나 제복을 보관하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1년에 2번 행사를 치른다. 3월 15일 어천절과 10월 3일 개천절이 그것이다. 군 소유이고 향토유적으로는 12호다. 문은 항상 열어 둔다고 하니 방문할 때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 단군영정은 1963년 설산雪山이란 화백이 그렸다고 한다. 모사본이다. 원본은 해남단군성조영모회에서 따로 보관하고 있다. (사진=윤한주 기자)
 
이날 단군전을 안내한 영모회 관계자는 “우리 회원의 나이가 팔십 구십이 넘는다”라며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가입조건이나 회비도 필요 없다고 한다. 
 
이들이 젊은 시절에는 영모회가 평생학습기관이었다. 시도 읊고 붓글쓰기도 하고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제사로서 단군을 받들고 있을 뿐이다.
 
▲ 전라남도 해남군 단군전 앞에는 단군성조숭모비와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백운 이종철 선생이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를 참배하고 1923년 고향에 단군전을 지은 지 올해로 91년이다. 곧 100년이 다가온다. 해방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단군전을 지켜온 사람은 백운의 후손이 아니라 해남군민이었다. 이들의 앞날이 곧 단군전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28편 북에서 건너온 '단군'(바로가기 클릭)
 
관광안내 061-532-1330
해남 단군전 찾아가는 방법(바로가기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