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 서구 정림동 단묘의 전경이다. 단묘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고,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전면에 퇴칸이 배치되어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지난달 8일 단묘를 찾았다. 이곳의 관리는 조금상 씨(59)가 맡고 있다. 그는 조병호 선생(1914∼2005)의 손자이다. 지난해까지 교직원으로 근무했고 올해 정년퇴임을 했다고 한다.

단군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그는 ‘단군’을 찾고 싶다는 내게 이름부터 정정할 것을 요구했다. 고조선을 건국한 이는 단군(檀君)이 아니라 단제(檀帝)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할아버지가 펴낸 <단군세계>에서 찾을 수 있다.

조병호 선생은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1994년 4월 6일)에서 “단군조선이 신화로 이어져 온 것은 고려를 침공한 원나라가 고려의 서고에 있는 역사서적을 몽땅 가져갔다. 원나라의 관직까지 받은 고려의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쓰면서 사대주의적 발상으로 단군황제를 단군으로 강등시키고 신화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묘 내 단군은 표준영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왼쪽은 비어 있고 오른쪽은 삼일신고가 걸려 있었다. 빈 자리는 천부경이 있던 곳이다. 도난당했다는 것이 조 씨의 설명이다.

흥미로운 것은 단군을 정면으로 보고 참배를 올릴 수 없다고 했다. 단군과 동격만 할 수 있다는 것. 그러니까 옛날에는 왕이었고 지금은 대통령만 설 수 있는 자리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어느 방향에서 절을 올려야 한단 말인가? 조 씨는 오른쪽이나 왼쪽인 사선으로 향한다고 했다. 단묘 제사는 1년에 2번(어천절과 개천절) 지낸다. 제관은 오른쪽 문으로 입장에서 대각선으로 절을 올리고 가운데를 지나서 왼쪽으로 나온다. 대전대학교 총장이 와도 마찬가지라는 것이 조 씨의 설명이다.

절하는 법은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끊는다. 이마와 머리를 바닥에 같이 댄다. 이마를 살짝 앞으로 미는데, 이것을 ‘조아린다’라고 표현한다. 사찰에서 하는 것처럼 두 손바닥을 올려서도 안 된다. 조 씨의 안내에 따라 절을 다시 했다. 그는 사계 김장생 선생이 정리한 예법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유교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물은 다른 단군전과 마찬가지로 생식을 올린다.

▲ 단묘 내 단군영정(사진=윤한주 기자)

단묘는 누가 책임지나…대전대학교 vs 조금상 씨

조 씨는 올해 어천절을 자비로 지냈다고 했다. 관리도 혼자서 하고 있다. 조 씨는 단묘에 대한 소유권이 있는 대전대학교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그의 조부인 조병호 선생은 1993년 10억 원에 달하는 재산(단묘)을 대전대학교에 기증했다. 지난해까지 어천절과 개천절 양대 행사를 치렀다. 그런데 올해부터 학교가 손을 뗐다는 것인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지난달 29일 대전대학교 총무팀 관계자는 코리안스피릿과의 전화통화에서 “조금상 씨와 합의가 됐다. 학교도 알고 있고 그쪽도 알고 있다. 더 이상 (행사 경비를)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관리팀 관계자는 “그곳이 학교 교육용 토지로 되어 있다. 조금상 씨가 거주하면서 관리를 위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조 씨는 전화통화에서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공문으로 달라고 했는데, 못 준다고 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어천절, 개천절) 행사를 치르는데 최소한 2백만 원 이상 든다”라며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합의를 해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학교 측과 조 씨의 주장은 일방통행이었다.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앞으로 남지훈 여사가 창립하고 조병호 선생이 키워온 ‘단묘’의 역사는 손자인 조 씨에게 달렸다. 더 이상 대전대학교에서 단묘 행사를 치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단묘를 대전대학교에 기증한 조병호 선생의 손자인 조금상 씨(사진=윤한주 기자)

우물가에 버려진 ‘단군상’

한편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하 단군상)도 단묘 건너편에 방치된 상태였다. 홍익문화운동연합(이하 홍문연)이 대전대학교에 기증한 것이다.

단군상은 1998년부터 홍문연이 민족통일을 기원하고 민족사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전국에 건립한 것 중의 하나다. 대전에는 자양초등학교를 비롯해서 8곳에 단군상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전대학교 도서관 앞에 세운 단군상이 한순간에 철거돼 이곳으로 오게 됐다는 것이 조 씨의 말이다. 그는 반대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고 한다.

홍문연 또한 학교로부터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현재 단군상은 닭장과 우물이 있는 곳에 서 있다. 이에 대해 대전대학교 홍보협력팀 관계자는 “당시 학교에 없었다. (그 상황은) 잘 모른다”라고 답했다.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은 “당시 기독교 교직원들의 철거 요구로 옮겨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건국시조인 단군이 종교적인 갈등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암 스님(환국불교 조계종 통도사)이 떠올랐다. 스님은 사찰에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시고 있다. 개천절에는 신도들과 함께 제사를 지낸다.(바로가기 클릭)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종교 이전에 아버지 어머니가 첫째에요. 부모가 ‘나라’에요.  나라가 첫째에요. 종교는 첫째가 아니에요.”

▲ 닭장과 우물가에 버려진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다. 조금상 씨는 대전대학교에 있었다가 이곳으로 강제 이주했다고 밝혔다(사진=윤한주 기자)

25편 “대전 단묘의 창립자는 누구인가?”  (바로가기 클릭)

26편 “우리의 혼은 단군이다!” (바로가기 클릭)

<대전 단묘 스토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