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사찰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처음엔 산신각인 줄 알았다. 산신각은 부처를 모신 대웅전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다. 산신각은 산신을 모신 전각이다.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단군문화기행>에서 "우리나라는 태초에 신교 즉 단군교가 있었고 다음에 불교가 들어왔다"라며 "산신각은 신불습합의 좋은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수염이 긴 산신령이 아니라 단군 동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종교를 비롯해 단군을 신앙하는 단체가 있기 때문이다.

코리안스피릿은 석가탄신일을 기념해 <절에서 만난 단군>을 2회에 걸쳐 보도한다.

1편은 석가 부처는 환인 환웅 단군의 후손이라고 주장한 정암 스님(속명 박우열, 79세)을 만났다. 2편은 서울, 충청, 경북, 부산 등에서 단군을 모신 사찰을 소개한다.

▲ 충북 제천시 풍양읍 명암리 대박산에 자리한 통도사. 이곳에 정암 스님은 환인, 환웅, 단군을 석가부처와 함께 모셨다.

종교 갈등의 해법, “존중하라!”

지난 14일 충북 제천시.

스님이 있는 곳은 환국불교 조계종 통도사(通道寺)다. 시내에서 절이 있는 풍양읍 명암리까지는 자동차로 40분이 걸렸다.

절이 가까워지자 연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2층 건물인 통도사는 만국기가 펄럭였다.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절 사람들은 분주했다. 주변은 대박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기자를 맞이한 정암 스님은 단신이면서도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그의 첫마디는 타종교를 인정하라는 당부였다.

지난해까지 불교는 종교 갈등 한복판에 있었다. 2010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봉은사 땅밟기’는 말할 것도 없고 2012년 개신교 목사가 대구 동화사에서 불교 탱화를 훼손하고 방뇨까지 한 사건도 있었다.(기사 바로가기 클릭 )

“내 종교가 소중하면 남의 종교도 소중한 겁니다. 우리나라에 480개 종교가 들어왔다고 해요. 지구상에는 허가받지 않은 종교를 포함해서 3만 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 종교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유교, 불교, 도교가 동양에서 최고잖아요. 그런데 연원을 찾아 올라가면 하나에요.”

그는 도(道)를 통해 들어가면 신, 한울, 부처라고 이름만 다를 뿐 같다고 말했다. 그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라는 것이다.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말이 있어요. 어렸을 때는 무엇인지 몰랐어요. 어떻게 벌은 벌이고 새는 새이고 사람은 사람인데 하나라고 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되었어요. 나이가 들고 공부하다 보니깐 알게 된 거죠. 우주적인 입장에서는 하나인 거에요. 하나 속에서 개체가 갈라져 나온 거에요.”

종교갈등의 해법으로 내 것만 소중하다는 생각을 놓으라는 것이다. 정암 스님은 크리스마스에 “예수님 탄신을 축하합니다”라고 현수막을 시내에 내걸었다고 한다. 신부와 목사들이 고맙다고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종교가 갈등이 아니라 화합의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췄다.

▲ 정암 스님은 통도사 2층에 인류조상성전을 마련했다. 이곳에 환인, 환웅, 단군을 동상으로 모셨다. 그는 “인류의 성자들은 삼성(三聖)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인류 성인의 시조는 누구인가?

환인, 환웅, 단군상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계단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부처상이 있었다. 그런데 왼쪽에 삼성의 그림을 내걸었다.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암 스님은 안쪽 공간으로 안내했다. <인류조상성전>이라는 이름이 적힌 문을 열자 삼성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스님이나 신도들이 보면 놀라지 않느냐고 물어봤다.

“안내하면서 설명을 해줘요. 스님들에게는 당신도 이 어른의 후손이고 당신의 교조 석가모니도 이 어른의 후손이라고. 기록에 다 나와요. 근거를 대고 말하니깐 꼼짝을 못하지. 20년 전부터 이야기하니깐 이제는 사람들이 정암은 삼성 할아버지 사상을 가진 것으로 인정해요.”

정암은 경기도 안성에 태어났다. 유학자 집안에서 자란 그는 춘원 이광수의 사촌 형인 운허스님 밑에서 주역을 배웠다고 한다. 7개월 만에 주역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불경을 공부하게 된다. “불교의 세계가 너무 재밌었고 심취했다”라며 말한 정암은 16세 때 출가하게 된다.

단군을 알게 된 것은 1960년대로 기억했다. 실제로 상을 세운 것은 2000년대가 되어서다. 그는 임균택 전 대전대 부총장의 <한경대전> 등을 비롯해 고대사에 관한 공부를 놓지 않았다. 역사만이 아니라 스승의 영향도 컸다.

그의 스승은 백용성 스님(白龍城, 1864년~1940)이다.

33인 민족대표 중의 한 사람으로 속명은 백상규(白相奎), 용성은 법호이다. 전국의 사찰을 돌며 심신을 수련했다고 전한다. 1917년 어느 날 단군왕검의 현몽을 꾸고 박성빈에게 금오산 지역으로 적을 옮기도록 조언했고 태기가 있는 백남의(白南義) 여사에게 아이를 잉태하게 된다. 그 아이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의 스승이 동산 스님이에요. 동산 스님의 스승은 용성 스님이고. 용성 스님은 33인 독립운동가 중에 최고입니다. 당시 백성들이 굶어죽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면 스님의 역할이 무엇이냐? 백성 어려운 것 살피는 게 스님이에요.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빌었어요. 큰 스님인데 절이 없고 부처가 없었겠어요. 그런데 단군사당에서 빌었어요.”

인류조상성전에는 환인, 환웅, 단군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자, 노자, 예수, 마호메트, 최제우 등 동서양의 모든 성인이 있었다. 마치 성인박람회를 보는 것 같았다. 그는 모든 종교가 근본으로 올라가면 하나라고 역설했다.

“인류의 성자들은 모두 삼성(三聖)의 후손입니다.”

정암 스님은 개천절에 신도들과 함께 제를 올린다. 법회도 하고 풍물놀이도 벌인다고 한다. 이러한 활동은 신앙적인 차원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것을 하는 것은 애국이에요. 종교 이전에 아버지 어머니가 첫째에요. 부모가 ‘나라’에요. 이런 이야기 하긴 그렇지만, 황사영 백서사건(클릭 )이라고 알아요? 서양이 침략하도록 만든 거 아닙니까? 그게 뭐하는 거예요? 종교가 첫째가 아니에요. 내가 아무리 스님이지만 종교가 그러면 안 됩니다. 나라가 첫째에요. 종교는 첫째가 아니에요.”

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