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시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 포스터.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기획전시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 포스터.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 이하 ‘영상자료원’)이 1월 16일(화)부터 한국영화박물관(서울 상암동 소재)에서 시작한 신규 기획전시 《대사극장- 한국영화를 만든 위대한 대사들(이하 ‘대사극장’)》은 국내 최초로 영화의 대사에 주목한다.

195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제작된 한국영화에서 배우들이 하는 대사를 조명한다. 때로는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고, 유행어가 되어 전 국민의 머릿속에 각인된 한국영화의 대사를 통해 80년여년의 한국영화사를 조망한다.

《대사극장》은 영화 속에서 발화되고 흩어진 대사를 가상의 극장 공간 안에서 다양한 형태의 영상 작품으로 재구성하여 연속 상영하는 형태로 만들었다.  지면과 활자에 갇혀 있던 영화 대사를 스크린 위에 연속 상영하는 가설 극장으로 그것들이 남긴 유산을 회고해 보는 기억 극장이다.

전시의 시작은 BTS X 루이비통 패션 필름 <LVMenFW21>(2021)과 장편영화 <다섯 번째 흉추>(2023)로 걸출한 장르영화 신예 감독으로 주목받는 박세영 감독이 연출과 편집을 맡은 작품 <대사극장>(2024)이다. 전시 제목과 동명인 이 작품은 1954년 <운명의 손>(한형모)부터 2023년 <다음 소희>(정주리)까지 100편의 영화 속 대사를 아름다운 영상미로 풀어낸다. 약 80년의 한국영화사를 철로와 열차를 따라 변해 온 풍경으로 바라본다.

' 대사 극장' 박세영.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 대사 극장' 박세영. 이미지 한국영상자료원

 

박세영 감독은 이번 작업을 통해 “산과 얼굴과 바다와 계곡, 원룸과 오피스텔, 사무실, 학교, 마당, 이제는 없는 옥상, 얼마 전 재개발된 아파트와 완전히 교체된 거리를 배경으로 한국영화의 대사들이 부유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고 밝혔다.

박세영 감독의 <대사극장>이 젊은 영화인이 감각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영화 대사의 역사라면 그래픽 디자이너의 시선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한글에 새로운 시각 언어를 입히는 레터링 작업과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을 해온 햇빛스튜디오의 박철희 작가의 <살풀이 한판>(타이포그래픽 스톱모션, 2024)은 25개의 명주 천 모양 모듈로 영화 대사 중 욕설을 표현하는 작품이다. 명주 천을 던져 그 떨어지는 모양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살풀이라는 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디자인 스튜디오 ‘콰칭’의 양으뜸 작가는 한국영화에서 발화자가 여성인 대사 혹은 여성을 향한 대사만을 짜깁기한 <독백 집단>(모션그래픽, 2023)을 선보인다. 각기 다른 영화 속 개별 대사들이 마치 서로 대화하는 듯 구성된 꾸러미 형태로 구성된 작품은 각각 ▲여성의 가치 ▲능력과 본성 ▲부정적 감정과 체념 ▲욕망과 관계 ▲험담과 죽음을 다룬다.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전문지 《월간 디자인》의 레노베이션을 맡았던 젊은 디자인 스튜디오 프론트도어가 작업한 <타이틀: 99개의 의문문>(타이포그래픽 서브타이틀, 2024)은 한국영화 속 의문형 대사만을 모은 작품이다. 의문형 대사는 간혹 스크린을 뚫고 나와 우리의 일상, 집단, 사회, 국가, 세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어떤 형태로든 개인이나 사회가 대답하도록 요청하곤 한다. 개인의 일상에 대한 사적 질문부터 이념과 체제에 대한 것들까지, 다양한 차원의 영화 속 질문을 섞어서 관람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전공한 이동언 작가는 대사를 뱉어내는 입의 움직임을 표현한 작업을 제시한다. <삶적인 하나, 죽음적인 하나, 그리고 인생의 하나>(종이 위에 실크스크린, 2024)는 영화의 생각을 전달해 주는 매개체인 ‘입’과 말투에 담긴 몸의 움직임을 8개의 포스터로 표현했다.

영화감독과 그래픽 디자이너가 재창조한 작품 외 관객이 직접 참여한 대사 연기 영상 모음과 시나리오를 직접 읽고 자기만의 대사를 편집 출력할 수 있는 라운지 공간을 조성했다.

관람객이 마지막에 다다르는 공간은 바로 각자의 방식으로 영화 대사를 즐길 수 있는 라운지이다. 이 공간에는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 50년간 수집, 보존한 시나리오 약 400권과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구축한 1,000개 영화 대사 데이터베이스를 준비했다. 관람객은 1946년 <자유만세>(최인규) 시나리오부터 최근 2023년 <콘크리트 유토피아>(엄태화) 각본집까지 약 400편의 시나리오를 관람하거나 열람할 수 있다. 신나리 작가가 구축한 웹 데이터베이스 <대사 편집기>는 한국영화의 중요한 대사 1,000개를 여러 방식으로 검색하고, 다양한 형태로 출력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관람객이 연도, 캐릭터, 키워드, 배우, 감독, 원작, 각본, 각색으로 이루어진 총 8개의 분류에 따라 정보를 직접 조작하여 대사를 생성하고 이를 스티커로 출력할 수 있다.

<대사극장> 전시는 한국영화박물관에서 1월 16일부터  5월 18일까지 관람할 수 있고, 전시 관람료는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