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린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사진 정유철 기자
국조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린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사진 정유철 기자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의 원동력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서 한국은 단시간에 이런 한류를 만들어냈는가, 한류 현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외국인들은 이런 점을 궁금해한다. 그런데 우리는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 주지 못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류 대유행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제각각 분석하여 그 나름의 결론을 내놓는다.

외국, 특히 일본의 시각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한국 정부가 문화강국을 위해 정책으로 한류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것은 맞지 않다. 한류 성공이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비롯된 것이라면, 다른 나라도 정부가 정책 지원을 하면 한류와 같은 일이 벌어질까? 그렇지 않다. 일본 또한 정부가 주도하여 문화 대국으로 일본의 이미지를 확산하기 위해 쿨 재팬(Cool Japan)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일시적인 성과는 있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한류 붐은 정부가 주도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가 관여하지 않고 민간 부문이 자유롭게 마음껏 역량을 발휘하도록 한 것이 큰 역할을 하였다. 한류 붐은 민간 부문이 주도하였다. 또한 과거와 다르게 민간 부문은 뛰어난 인재와 여력 있는 자금 등 풍부한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외국의 문화를 모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한국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한국적인 작품에 현재 세계 각국, 특히 젊은이들이 매료된 것이다.

이러한 매력을 만들어낸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 이는 한국문화에서 찾아야 한다. 오랫동안 우리 민족의 삶과 함께 내려오면서 발전을 거듭해 온 한국문화가 지금 한류로 꽃피운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문화라 할 때 그 바탕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광복이후 한국에는 서양 문화가 물질문명과 함께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 영향을 받은 한국문화는 전통시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렇게 형성된 현재 한국문화가 서양 문화, 특히 미국문화와 닮아 보이지만,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다. 서양 문화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으면서도 한국적인 문화를 낳았던 것이다. 일례로 K-POP은 미국 등 서구의 팝(POP)에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만의 독특한 POP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K-POP이라고 한다.

이렇게 한국인은 밀려오는 외국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풍부하고 튼튼한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를 창조했던 것이다.

한국을 안다는 서양 전문가들은 조선 500년간 유교가 지배한 것을 근거하여 유교적인 시각으로 한국를 보려 한다. 같은 유교의 영향권이었던 중국, 일본과 한 덩어리로 평하기도 한다. 이런 시각은 한국은 “고유문화가 없고 있다면 중국의 아류”라는 그릇된 견해를 낳는다.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에 네 차례 조선을 답사하고 《조선과 이 이웃 나라들》을 펴낸 영국 왕립 지리학회의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이 한국을 ‘중국의 패러디’라고 한 이후로 많은 동·서양 학자가 한국을 중국의 변방으로 취급하고 있다.

다행이라면 한류가 이러한 견해에 파열음을 내고 있다는 점일까.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문화적 독자성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다. 한류를 접한 외국인들은 이를 확실하게 느끼고 있다.

삼국시대에 전래하여 고려의 국교가 된 불교도 한국 불교가 되었다. 중국에서 들어온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한국만의 특징을 갖춘 불교, 한국 불교가 된 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절에는 ‘대웅전’이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절에는 이런 건물이 없다. 불교 도래 이전 선도에서 한웅을 모시던 ‘한웅전’이 대웅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불교는 한국에 들어와 한국문화를 풍부하게 하였다. 불교문화는 팔만대장경 등 문화유산으로 전래되는 것이 많다. 우리 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화두’, ‘야단법석’, ‘찰라’ 등 불교에서 유래한 낱말을 우리는 일상에서 쓰고 있다. 이런 점을 볼 때 현대 서양문화나 유교, 불교로만 한국문화를 본다면 그 진면목을 파악하기 어렵다. 면면히 내려오면서 다양한 외국문화를 받아들여 독특한 꽃을 피운 한국문화의 본령말이다. 그것은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전 이 땅에 꽃피운 문화, 선도仙道문화일 것이다. 단군이 세운 조선은 이 선도문화를 기반으로 한다. ‘홍익인간 이화세계’를 선도문화를 바탕으로 펼친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이 홍익인간의 가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백범일지》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면서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하였으니 오늘날 한류 열풍을 1947년에 내다본 셈이다.

홍익인간 이념은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 이념으로 살아 있다.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가 그것이다.

한류에는 이런 철학이 스며들어 있다. 그러므로 한국의 소프트파워는 ‘홍익인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홍익인간’ 철학을 더욱 깊이 연구하여 다양하게 활용한다면 여러 분야에서 한류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지속될 것이다.

이에 앞서 우리 스스로 ‘홍익인간’ 철학에 긍지를 느끼고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21세기 지구촌 시대에는 인종과 종교, 국가를 넘어 평화롭고 행복하게 공생하는 지구촌을 만들려는 철학이 필요하다. ‘홍익인간’이 바로 그러한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