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스페이스 라프는 7월 15일부터 8월 5일까지 "일상탐구생활"전을 개최한다.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아트스페이스 라프는 7월 15일부터 8월 5일까지 "일상탐구생활"전을 개최한다.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아트스페이스 라프에서 7월 15일 개막한 《일상탐구생활》전은 주변의 환경과 사물에 대한 관찰에서 출발해 사적인 이유와 방식으로 창작을 일상화하는 작업을 소개하는 전시다.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작업이다.

40여 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온 중진 작가부터 첫 개인전을 막 쏘아 올린 신진작가까지 다양한 경력과 매체의 작가 4명이 의기투합한 결과다. 참여작가는 윤소연, 박영선, 박경진, 이응우.

윤소연, 사물의 초상화 흰색종이백, 2020, 캔버스에 유채, 41X27.3cm. 사진 아트스페이스
윤소연, 사물의 초상화 흰색종이백, 2020, 캔버스에 유채, 41X27.3cm. 사진 아트스페이스

《일상탐구생활》은 하루가 달리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의 소산을 쫓는 대신 평범한 개인의 일상에 주목하는 작가들을 조망한다. 작가들의 일상에서부터 비롯된 작품의 소재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외려 작품이 낯설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우리는 금세 그 안의 편안함을 느끼며 작품에 수긍한다. 이렇게 《일상탐구생활》은 익숙함 속 새로움을 편안히 선사하는 전시다.

여기에 공예의 현대적 쓰임을 도모하는 ‘일상여백’과 함께하여 네 명 작가들의 회화와 사진이 공예와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을 꾸몄다. 과거 일상용품이던 자기, 바구니, 소반 등이 현대에 와서는 박물관 문화재나 장식품으로 박제될 위기에 놓여있다. 일상여백은 전통 공예에서 예술품 꼬리표를 떼고 그 쓸모를 다시 일상화하려는 시도를 한다.

박영선, 입술들손가락들 그리고 #7, 2023, 포토그램, 젤라틴 실버 프린트, 27. 9x35.6cm.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박영선, 입술들손가락들 그리고 #7, 2023, 포토그램, 젤라틴 실버 프린트, 27. 9x35.6cm.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일상탐구생활》의 김진형 기획자는 “개인적 사유와 자연스러운 호흡에 집중하고 소멸하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는 참여 작가들의 경향을 살피며 관람객들은 예술가의 방에 앉아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전시를 즐기게 될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작가 윤소연은 택배 상자, 쇼핑백 등 한때는 기대를 담았다가 내용물을 취한 후 버려지는 쓰레기를 회화적 방식으로 재활용한다. 포장의 기능을 상실한 후 가치를 다한 사물의 초상화를 그려주거나 그 안에 다른 것을 담아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다. 자본주의적 욕망의 표상인 쇼핑백과 포장상자 안에는 의외로 그의 평범한 일상 풍경이 자리해 있다. 작가는 버려진 포장재라는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다시 제안하면서 자신이 늘 복기하는 별것 없는 일상의 소중한 쓸모를 회화를 통해 환기한다.

박경진, 종으로 이루어진 도랑3, 2022, 장지에 먹과 아크릴, 170 ×68cm.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박경진, 종으로 이루어진 도랑3, 2022, 장지에 먹과 아크릴, 170 ×68cm.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작가 박영선의 최근 작업은 평소 별생각 없이 사용하고 버리는 생수병 등 플라스틱 제품을 골똘히 쳐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작가는 수학적 사고와 재현이 응집된 첨단 자본주의적 생산물이자 폐기물인 생수병을 차마 버리기도 품기도 어려운 곤란한 일상을 토로한다. 카메라를 쓰지 않고 감광지 위 물체에 직접 빛을 비춰 나타나는 추상적 그림자 사진인 포토그램과 슬라이드 프로젝터가 쏘아내는 빛에 의해 맺힌 상들의 우연한 이미지 조합인 그림자 그림을 실험 중이다. 렌즈를 통한 프레임이 작동할 수 없도록 의도한 그의 작업은 사진적 재현의 불가능성을 은유한다.

이응우, 물에서 뭍으로 퍼포먼스, 1981.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이응우, 물에서 뭍으로 퍼포먼스, 1981.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어릴 때부터 등산이 삶의 일부였던 작가 박경진은 산속에서 느낀 감상이나 인상적인 풍경을 사생을 통해 기록한 후 추상적으로 재현한다. 어떤 광경이든 휴대폰에 저장하는 요즘 방식과 달리 노트와 펜을 들고 산행을 나서는 순간 그의 작업은 작동하기 시작한다. 산불을 대하는 태도 역시 세간의 시각과 다르다. 불에 탄 산을 재난의 현장이나 자본의 손실이 아니라 자연적 현상이자 일상적 순환으로 본다. 가본 적 없는 이미지를 디지털로 조합하는 것에 더 익숙한 최근의 예술환경에선 보기 드물게, 작가는 걸어서 손으로 회화적 아틀라스를 그려나간다.

'일상탐구생활'전.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일상탐구생활'전. 사진 아트스페이스 라프

공주에서 시작된 자연미술가협회 야투의 창립멤버로 그 역사를 같이해온 이응우는 주위에 버려진 자연 재료를 가지고 와 미리 세운 계획이나 아이디어 없이 작업에 돌입한다. 80년대 서울을 중심으로 유행한 서구적 모더니즘 아트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나간 야투 작가들은 물가에서 멍을 때리거나 풀밭을 서성이고 염소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창립전을 치렀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 행위가 예술로 거듭나는 전통은 이미 자연 미술로부터 잉태되어 온 지도 모른다. 계룡산 자락에서 이응우를 만나 나눈 ‘소멸해야 더 아름다운 예술’ 이야기를 함께 들어본다.

《일상탐구생활》전은 8월 5일까지 아트스페이스 라프(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로 63, b1)에서 무료 관람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수-일요일 11:00-18:00, 매주 월, 화요일.

'일상탐구생활'전 포스터. 이미지 아트스페이스 라프
'일상탐구생활'전 포스터. 이미지 아트스페이스 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