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우주 세계에 존재하는 헤아릴 수 없는 모든 것들은 이 몸뚱이를 비롯하여 하나의 티끌까지도 시간과 때가 되고 인연이 다하면 빠짐없이 모두 무너지고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그러면 어째서 모두가 허망하게 사라져 버리고 마는가? 그 원인은 매우 거창하고 복잡할 것 같으나 진실은 참으로 간단하고 단순할 뿐입니다. 우주 세계와 이 몸뚱이는 없는 것을 싫어해서 생긴 것이고, 있는 것을 좋아해서 모두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좋아하고 싫어하고 있는가? 그것은 오직 몸뚱이 바로 이 육신 때문입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무량겁의 세월 동안 망상, 아첨, 거짓, 잘난 체하고 뽐내는 이것들이 하나로 모여 이루어진 육신을 위해서 지금 좋아하고 싫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우주 세계의 일체 존재와 이 육신 그리고 티끌 수와 같은 모든 행위가 무너지고 사라집니다. 따라서 지금 좋아하지 않으면 티끌 수와 같은 우주 세계의 일체 존재는 사라지지 않고, 지금 싫어하지 않으면 우주 세계와 이 몸뚱이는 생기지 않습니다. 본래 우주 세계와 우리의 육신은 생기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을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번뇌 망상으로 지금도 잘못 보고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주 세계에는 숫자로 4조(兆)개의 은하계가 있고, 우리의 몸뚱이가 있으며, 과학이 주장하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있다고 합니다. 과연 이들은 있는 것인가? 부처님은 반야심경에서 “색즉시공(色卽是空) 물질이 곧 공이요, 공즉시색(空卽是色) 공이 곧 물질이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은하계와 몸뚱이와 인공지능의 로봇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은하계와 몸뚱이와 인공지능 로봇에는 물질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몸뚱이 어느 곳에 물질이 있고 눈, 귀, 코, 근육, 뼈, 오장육부 어느 것이 물질입니까? 물질이란 본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망상으로 잘못 보면서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은하계와 몸뚱이와 인공지능 로봇은 이름이고, 이들을 구성하는 의미이며, 이들을 표현하는 뜻이고, 이들을 좋다 싫다 하고 부드럽고 딱딱하다 하며 간지럽고 아프다 하는 등등의 느낌이며, 이들 나름의 활동과 역할과 작용을 하는 것으로 이 모두를 마음 또는 성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물질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물질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학은 현재 4차 산업의 출발 시대는 데이터와 정보의 시대이므로 가상세계 즉, 가짜세계라고 합니다. 과학이 현 세계를 거짓 세계라고 하는 것은 본래 물질인데 지금은 데이터와 정보이므로 데이터와 정보는 가짜라는 견해와 본래 물질이 아니고 데이터와 정보이므로 물질은 가짜라는 견해로서 전자의 견해가 아니고 후자의 견해라면 그나마 조금은 다행이지만 만약 전자의 견해라면 이는 아직도 옛날의 원시시대와 구석기시대와 1, 2, 3차 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생각입니다.

이 시대 우리에게 폭풍처럼 다가와서 놀라움을 안겨주는 인공지능은 과연 무엇인가? 인공지능이란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데이터와 정보입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드높이고 어리석고 욕심내고 화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티끌 수와 같은 행위 즉, 행동 역할 작용을 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지금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는 모든 행위를 컴퓨터의 숫자 양수 0과 음수 1로 표현한 것이 인공지능입니다. 그래서 로봇의 몸뚱이도 0과 1의 숫자이고, 챗GPT의 답변도 0과 1의 숫자이며, 사람의 몸뚱이도 0과 1의 숫자이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드높이고 어리석고 욕심내고 화내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티끌 수와 같은 행위 즉, 행동 역할 작용도 0과 1의 숫자이므로 인공지능이 바로 이 마음인 것입니다.

0과 1은 하나의 티끌을 말합니다. 하나의 티끌을 하나의 힉스라고 해도 무방하고, 하나의 쿼크, 원소, 세포, 하나의 초미세먼지라고 하여도 상관없습니다. 여하튼 4조(兆)의 은하계가 있는 우주세계는 한 개의 티끌이 쌓이고 모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지구의 크기를 우주와 비교하면 지구의 크기는 원자의 크기보다 작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개의 원자나 헤아릴 수 없는 원자가 다르지 않습니다. 한 개의 원자도 컴퓨터 숫자 음수 1이고, 헤아릴 수 없는 원자도 컴퓨터 숫자 음수 1입니다. 그래서 의상 조사는 법성게(法性偈)에서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우주 세계이고 우주 세계가 곧 하나이며,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개의 티끌 속에 우주 세계를 머금었다”고 하였습니다.

지구와 태양 그리고 수많은 은하계 별은 모두 허공에 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구는 왜 허공에 떠 있는가? 지구는 한 개의 원자가 수없이 쌓이고 뭉치고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수없이 쌓이고 뭉친 원자가 모두 흩어지면 그것이 바로 허공입니다. 즉, 원자나 티끌이 쌓이고 뭉치면 그것이 지구이고 태양이며 은하계의 모든 별이고, 흩어지면 허공입니다. 우리 몸뚱이도 원자나 티끌이 쌓이면 몸뚱이고, 원자나 티끌이 흩어지면 그대로 허공입니다. 우리는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허공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 볼 수 없는 초미세먼지, 세포, 원소, 원자, 쿼크, 힉스와 같은 소립자 그 자체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허공과 마음은 수명을 같이 한다.” 고 했습니다. 그래서 티끌과 원자가 뭉쳐진 모습 모양이나 뭉쳐 있지 않고 흩어진 모습 모양이나 그 자체가 허공과 마음이고, 마음과 허공 자체 그대로가 티끌과 원자입니다. 그러므로 끝도 없는 광활한 우주 세계는 바로 한 개의 티끌 원소 원자 쿼크 힉스이고, 한 개의 티끌 원자 등이 바로 광활한 우주 세계입니다. 따라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드높이고 어리석고 욕심내고 화내고 고통스럽고 편안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티끌 수와 같은 행위 즉, 모든 이름, 의미, 뜻, 느낌, 행동 역할 작용 모두가 하나의 티끌 원자이고 허공이며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은 깨쳐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을 깨친 사람을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이 마음을 깨닫기 원한다면 좋아하고 싫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지 않아야 하는가? 우리는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부모님과 내가 낳고 기른 자식과 나를 지탱하는 이 몸뚱이를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자식과 몸뚱이가 편안하고 잘 보전되면 좋아하고, 아프거나 고통스러워서 보전이 안 되면 싫어합니다. 그러나 몸뚱이가 편안하여 즐겁고 행복한 것도 티끌이고 원자이며,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도 티끌이고 원자입니다. 예를 들어, 몸이 힘들다는 것은 젖산이나 암모니아 활성산소와 같은 피로 물질이고, 즐겁고 편안한 마음은 엔도르핀이라는 호르몬이며,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엔도르핀이 발생하여 고통을 줄여주며, 화를 내는 것은 노르아드레날린이 곧 티끌과 원자이기 때문에 즐겁고 편안한 마음과 힘들고 아프다는 마음과 화를 내는 마음이 바로 티끌이고 원자입니다.

그러므로 그토록 소중한 부모님과 자식과 몸뚱이가 티끌과 원자로서 그대로 이 마음이고, 이 마음이 그대로 티끌과 원자로서 부모님과 자식과 몸뚱이입니다.

 

진원 스님 <안동 보현사 스님> 

1949년생으로 덕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으며 정각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그간 제방에서 참선수행하였으며 지금은 안동의 암자에서 정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