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어머니와 자식이 바로 이 마음이고, 또한 소중한 이 몸뚱이, 이 육신도 바로 이 마음입니다. 이 육신이 소중하다는 번뇌 망상의 얽매임에서 벗어나 해탈 열반의 세계에 이른 혜가 스님의 행적을 살펴봅니다.

혜가 스님은 달마 조사를 만나 스승으로 섬기었습니다. 소림사까지 따라 오면서 항상 조사에게 법을 물었으나 달마 조사는 전혀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스스로 탄식하기를 ‘옛 사람은 법을 구하기 위해 뼈를 깨고 골수를 꺼내고, 피를 뽑아 부처님 성상을 그리고, 머리채를 풀어 진흙에 펴고 벼랑에 몸을 던지고 주린 범에게 몸을 주었다. 옛 사람은 이렇게까지 하였는데 나는 무엇을 소중히 할 것인가!’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날 혜가 스님은 법을 구하기 위해 눈 오는 밤을 서서 새웠습니다. 날이 새어 달마 조사가 보고 물었습니다.

“네가 눈 속에 섰으니 무슨 구하는 바가 있느냐? 혜가 스님이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면서 말했습니다. “바라옵건대 조사이시여, 열반의 문을 활짝 열어 모든 중생을 건져 주십시오.” 달마 조사가 말하였습니다.

“부처님의 위없는 깨달음은 여러 겁을 수행한 것이거늘 네가 작은 뜻으로 큰 법을 구하려 해도 끝내 될 수 없느니라.” 혜가 스님이 이 말을 듣자 곧 날카로운 칼을 뽑아 자기의 왼팔을 끊어서 달마 조사의 앞에 놓으니 조사가 말하였습니다.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이 법을 구할 때엔 몸으로써 몸을 삼지 않고, 목숨으로써 목숨을 삼지 않았는데 네가 이제 팔을 끊었으니 법을 구할 만하구나.” 그리고는 법호를 혜가라 내려 주었습니다.

혜가 스님이 사뢰었습니다. “조사께서 저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소서.” 조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 주리라. 혜가 스님이 말했습니다.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찾아지면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겠느냐?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히 하였다.” 다시 말하였습니다. “너의 마음을 이미 편안히 해 주었다. 너는 보는가?”

혜가 스님이 이 말씀에 문득 활짝 깨닫고 조사에게 사뢰었습니다. “오늘에야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하고 고요하여 오늘에야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은 것임을 알았나이다. 그러기에 보살은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보살의 바다에 이르며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열반의 언덕에 오르나이다.” 조사가 말하였습니다. “옳은 말이다.”

미혹한 어리석음의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간절한 마음이 스스로 슬픈 눈물로 표출되어진 혜가 스님이 말했습니다. 조사께서 열반의 문을 활짝 열어 모든 중생을 고통의 바다에서 건져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러자 달마 조사는 부처님의 깨달음은 위도 없고 아래도 없으며 어떤 계급과 차별도 없는 평등한 정각의 지혜인 무상의 보리는 여러 겁을 수행한 것이다, 네가 지금 갖고 있는 싫어하고 좋아하는 등의 분별망상은 위와 아래가 있고 계급과 차별이 있어서 평등한 정각의 지혜가 아니다, 그런 작은 뜻으로 큰 법을 구하려 해도 끝내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부처님과 조사님들은 과거 고통을 참는 수행 중에 누가 재산과 부인을 달라면 재산과 부인을 주었으며 눈을 달라고 하면 눈을 빼주고 팔과 다리를 달라고 하면 팔과 다리를 잘라 주었으며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뚱이를 전부 내주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내 것을 아끼고 내 몸을 소중히 여기는 차별적인 마음인 불평등한 마음이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마음을 올바르게 깨치고자 한다면 싫어하고 좋아하며 위와 아래가 있는 불평등한 분별 망상이 없어야 하며 내 재산과 내 부인을 아끼고 내 눈과 팔다리 몸뚱이를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인색한 번뇌 망상을 멀리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뜻을 알고 있던 혜가 스님이 날카로운 칼을 뽑아 자기의 왼팔을 끊어서 달마 조사의 앞에 놓으니 조사가 말하였습니다. “부처님들과 보살님들이 법을 구할 때엔 몸으로써 몸을 삼지 않고, 목숨으로써 목숨을 삼지 않았다. 네가 이제 팔을 끊었으니 법을 구할만하다.”

혜가 스님이 사뢰었습니다. “조사께서 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주소서.” 조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하게 하여 주리라. 혜가 스님이 말했습니다. “마음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조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찾아지면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겠느냐? 벌써 너의 마음을 편안히 하였다.” 다시 말하였습니다. “너의 마음을 이미 편안히 해 주었다. 너는 보는가?”

혜가 스님이 이 말씀에 문득 활짝 깨닫고 조사에게 사뢰었습니다. “오늘에야 모든 법이 본래부터 공하고 고요하여 오늘에야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은 것임을 알았나이다. 그러기에 보살은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보살의 바다에 이르며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열반의 언덕에 오르나이다.” 조사가 말하였습니다. “옳은 말이다.”

“조사께서 저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소서.” 조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 주리라.”

혜가 스님의 편안하지 못한 마음 곧 불편한 마음이란 어떤 마음인가? 그 마음은 150억 년 전 빅뱅한 하나의 티끌로서 싫어하고 좋아하며 위와 아래와 차별이 있는 불평등한 분별망상의 마음입니다. 이 분별망상이 바로 별, 달, 태양, 지구이고 40억 년 전 지구의 바다에 최초 출현한 단세포입니다. 우주 세계의 일체 존재는 이런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망상이 모양과 모습으로 자취를 나타낸 것입니다. 결국 번뇌 망상이 진화와 유전을 거듭 반복하여 그림자 같은 우리들의 몸뚱이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몸뚱이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몸뚱이는 오직 싫어하고 좋아하는 분별 망상이 유전과 진화를 반복해서 생긴 버릇의 습관으로서 실체가 없는 그림자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혜가 스님은 이런 불편한 분별망상을 찾아도 찾을 수가 없다고 하였으며 조사는 그와 같은 분별망상이 찾아진다 해도 어찌 그것이 너의 마음이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마음에는 본래 번뇌 망상이 없으므로 너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였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였습니다.

‘너의 마음을 이미 편안하게 해 주었다.’ ‘너는 보는가?’

혜가 스님이 이 말씀에 문득 활짝 깨달았습니다. 혜가 스님은 무엇을 활짝 깨달은 것인가? 이 몸뚱이가 싫어하고 좋아하는 망상으로 이루어진 그림자 같은 것이므로 싫어하고 좋아하는 망상이 없으면 그림자와 허깨비 같은 나의 재산과 부인 그리고 눈과 팔 다리 몸뚱이 전부를 남에게 주어도 조금도 아깝거나 서운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사에게 사뢰었습니다. ‘오늘에야 모든 법이 곧 이 마음이기 때문에 본래부터 공하고 고요해서 오늘에야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은 것임을 알았나이다.’ 모든 법이 본래 공하고 고요하다는 것은, 하나의 티끌을 포함한 이 몸뚱이와 우주 세계의 일체 존재가 이 마음이므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하고 고요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주 세계는 우주 세계라는 이름이 바로 이 마음이고, 우주 세계를 구성하는 의미와 우주를 나타내는 뜻과, 우주에 대한 느낌이 곧 이 마음이며, 우주 세계 구성원들의 그 나름의 활동과 역할과 모든 작용이 바로 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주 세계가 곧 이 마음이고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망상이 이 마음이며 나의 재산과 부인을 남에게 줄 때 서운하고 아까워하는 것도 이 마음이고, 눈과 팔다리를 잘라 줄 때 느끼는 지옥 같은 고통 또한 작용으로서 이 마음입니다. 때문에 우주 세계가 그대로 깨달은 마음이므로 혜가 스님은 깨달음이 멀리 있지 않은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보살은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보살의 바다에 이르며, 생각을 움직이지 않고 열반의 언덕에 오르나이다.’ 보살의 바다가 곧 이 마음이므로 생각을 움직이지 않아도 보살의 바다에 이르며, 이 마음이 바로 열반의 언덕이므로 생각을 움직이지 않아도 열반의 언덕에 오른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사가 말하였습니다. “옳은 말이다.”

나의 몸뚱이 내 육신이라는 번뇌가 없으면 재산과 부인을 남에게 주어도 조금도 아깝지 않고, 눈을 빼주고 팔과 다리를 잘라 주며, 굶주린 호랑이에게 몸뚱이를 전부 내주어도 티끌만큼도 서운하거나 아깝지 않습니다.

이같이 거짓, 아첨, 잘난 체하고, 뽐내며, 내 부모님 내 자식, 내 몸뚱이라는 번뇌가 없는 이 몸뚱이가 바로 홍익인간이며, 예수의 사랑이고, 부처의 자비이며, 번뇌를 밝게 비추는 동방의 등불입니다.

 

 

진원 스님 <안동 보현사 스님> 

1949년생으로 덕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으며 정각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그간 제방에서 참선수행하였으며 지금은 안동의 암자에서 정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