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우주세계의 일체존재가 오직 이 마음의 작용이고, 이 마음의 작용이 우주세계의 일체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일체존재가 겪는 고통이 곧 이 마음이고, 일체존재가 원하고 얻으려는 것이 곧 이 마음일 뿐입니다. 만약 이와 같지 않다면 우리가 겪는 태어날 때의 고통과 젊고 건강했던 몸이 허망하게 늙어가는 고통과 갖가지 질병에 걸려 겪는 고통과 수명이 다하여 속수무책으로 맞이하는 지옥의 고통과 같은 죽음의 고통을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코로나19와 같이 계속 반복되는 유행성 질병과 과다한 탄소를 배출하여 일으킨 이상고온 현상으로 인하여 빈번히 발생하는 태풍, 폭우, 폭설, 혹한, 혹서 등의 자연재해(自然災害)와 우리들의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교통사고 등과 같은 수많은 일반재해를 어찌 해결할 수 있으며, 두 번 다시 생각조차 하기 싫은 더러움과 너무도 깊은 미움 그리고 배고픔, 목마름, 가난, 죄와 벌 등등 불행으로 일컫는 티끌수와 같은 모든 고통에서 어떻게 영원히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고 우리가 원하는 행복은 영원히 얻을 수 있는 도리가 바로 마하반야바라밀다 라고 하였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다」는 우주세계와 모든 불행의 고통과 모든 행복의 즐거움은 이름이고, 우주세계와 고통과 즐거움을 구성하고 있는 의미이며, 우주세계와 고통과 즐거움을 표현하는 뜻이고, 우주세계와 고통과 즐거움에 관한 이름과 의미와 뜻에 따라서 어리석음과 탐하고 화를 내며 부드럽고 거칠고 딱딱하다 하는 모든 느낌이며, 이와 같은 모든 행위와 활동과 역할과 작용이라 하고, 또는 마음 성품 부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고통이 있다고 필히 믿지 말고, 생노병사의 고통이 바로 이 마음이므로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굳게 믿는다면 반드시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코로나19와 같은 유행성 질병과 빈번히 발생하는 태풍, 폭우, 폭설, 혹한, 혹서 등의 자연재해(自然災害)와 우리들의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반재해가 있다고 믿지 말고,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이 마음의 작용이라고 믿는다면 이런 고통에서 자연히 벗어나며, 극도의 더러움과 극한으로 미워하는 생각과 배고픔, 목마름, 가난, 죄와 벌 등등 불행으로 일컫는 티끌수와 같은 모든 고통이 곧 이 마음이므로 본래 없고, 고통이 없는 것도 없는 것이라는 믿음을 굳게 가진다면 고통에서 기필코 영원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해서 사랑과 희락,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가 열리게 하려면 제 안에 남아있는 죄악, 탐욕, 교만, 자아, 거짓, 편견과 선입견, 나쁜 습관, 게으름, 체면, 질투, 미움, 집착에 사랑과 화평과 오래 참음 등의 아홉 가지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가득 채우면 죄악과 탐욕 등이 모두 없어져 예수님 마음과 목자의 심정을 가득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목사님이 말을 한 대로 죄악, 탐욕, 교만, 자아, 거짓, 편견과 선입견 등에 사랑과 화평과 오래 참음 등의 아홉 가지 기도와 말씀과 찬양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하고 하나님에게 기도한다면 과연 채울 수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채울 수가 있느냐, 아니면 채울 수가 없느냐 라는 문제에 앞서서 우리가 기도하는 하나님이 무엇이고 죄악과 탐욕 등과 사랑과 화평 등이 무엇인지 알아야 채울 수도 있고, 채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무엇인지 모르고 죄악, 탐욕과 사랑과 화평 등을 모른다면, 알지 못하는 것은 당연히 채우지도 못하고 채우지 못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기도하는 우리와 죄악과 탐욕, 사랑과 화평 등은 무엇인가? 먼저 기도하는 우리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들의 몸뚱이를 살펴보니 몸뚱이는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세포, 원소, 원자, 쿼크 마지막으로 최소립자 힉스로 되어 있는데 끝내 힉스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서 혹시 신의 입자가 아닌가? 라고 추측할 뿐이다, 고 합니다. 과학이 끝내 힉스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힉스는 물질이 아니라 바로 이 마음인데, 과학은 힉스를 물질로 보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힉스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이고 어디에 계시는가?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고, 낯과 어둠이라 부르시고, 곡식과 풀과 열매를 내라 하시고, 비추라, 날으라, 번성하라 하시니 모두 그대로 이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빛이 있으라고 하는 것이 무엇이고, 열매를 내라 하고, 비추어라, 날으라, 번성하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름, 의미, 뜻, 느낌이며 활동과 역할과 작용의 이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바람입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우리의 어려움을 해소해 주시는 우리의 의지처 바로 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죄악, 탐욕 등과 사랑, 화평 등도 모두 한 마음이기 때문에 죄악과 탐욕 위에 사랑과 화평을 채울 수도 있고, 사랑과 화평 위에 죄악과 탐욕을 채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죄악과 탐욕을 없앨 수도 있고, 사랑과 화평을 생기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의 말씀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날 제자 베드로가 예수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잘못했을 때, 일곱 번 정도 용서한다면 되겠습니까?” 예수가 말했습니다. “일곱 번씩 일곱 번도 더 용서해라.” 베드로는 누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일곱 번이나 용서해준다면 충분할 것이다. 라는 생각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일곱씩 일곱 번(7×7=49)도 더 용서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참된 뜻은 잘못도 용서도 오직 이 마음이고, 이 마음의 작용이므로 잘못과 용서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이 곧 단군이고, 하나님과 예수이며, 부처이고, 동방의 등불 대한민국입니다.

 

진원 스님 <안동 보현사 스님> 

1949년생으로 덕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으며 정각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그간 제방에서 참선수행하였으며 지금은 안동의 암자에서 정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