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철학자 수학자 물리학자 데카르트는 사과가 달고 새콤하다고 하는 것은 아마도 악마가 우리의 뇌 속에 들어와서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닐까? 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은 그 나름의 생각 끝에 내린 결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철학 수학 물리학자로서 뛰어난 상식의 소유자인 그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 즉 음식을 먹으면서 그 맛이 달다 쓰다 하는 느낌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은, 철학 수학 물리학이라는 인간 최고의 지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단편적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데카르트라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의문이라도 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은 그 같은 의문조차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사과를 먹으면서 달고 새콤하다 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커피는 쓰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지금 사과를 먹고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컴퓨터를 보는 눈과 컴퓨터와 컴퓨터를 보며 있다 없다, 크다 작다, 성능이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귀와 소리와 소리를 듣고 큰 소리 작은 소리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며, 코와 냄새와 냄새를 맡고 냄새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무엇이고, 몸과 몸이 느끼는 가려움, 아픔, 차고 뜨거움은 무엇인가?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생각이 행하는 티끌 수와 같이 무수히 많은 행동과 작용을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눈, 귀, 코, 입과 혀, 피부, 생각과 오장육부가 각기 따로따로 나뉘어 있다고 하고, 내 몸뚱이와 너의 몸뚱이와 사과와 컴퓨터가 따로 있으며,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뜻 모두가 따로 나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사과를 먹는 입과 혀는 사과가 지나가는 식도와 위장이 같이 연결되어 있고, 눈과 귀와 코와 다른 오장육부와 근육, 신경, 혈액, 뼈 등 몸의 모든 조직도 입과 혀와 식도와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구조와 장기는 한 몸, 한 육신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눈이 지금 컴퓨터와 사과를 볼 때 눈과 컴퓨터와 사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금 보는 눈이 없으면 보이는 컴퓨터와 사과가 있을 수 없고, 지금 보이는 컴퓨터와 사과가 없다면 눈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눈은 컴퓨터와 사과로 인해서 있고, 눈은 컴퓨터와 사과로 인해서 있으므로 눈과 컴퓨터와 사과는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눈과 컴퓨터와 사과는 한 몸입니다. 그 외에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과 성대와 말, 몸과 감촉, 생각과 뜻과 느낌도 모두 한 몸, 한 생각입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조직과 장기 그리고 컴퓨터와 사과, 모든 소리, 모든 냄새, 모든 맛, 모든 감촉과 느낌, 생각은 각자의 이름이 있고, 그에 맞는 의미와 뜻과 느낌과 그다운 역할과 활동 그 나름의 작용을 하는데 이 모두를 마음 또는 성품 부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체는 한 몸이고, 한 마음이며, 한 부처입니다.

우리는 목숨이 다하여 죽으면 이 몸뚱이가 없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뚱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 몸뚱이의 본래 모습인 흙 곧 티끌로 돌아갑니다. 그 때문에 티끌의 작용이 바로 육신이고, 육신이 바로 티끌의 작용이므로 육신은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구와 태양 그리고 수많은 은하계 별은 모두 허공에 떠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구는 왜 허공에 떠있는 것인가? 지구는 한 개의 티끌이나 원자가 수없이 쌓이고 뭉치고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수없이 쌓이고 뭉친 티끌 또는 원자가 모두 흩어지면 그것이 바로 허공입니다. 즉, 원자나 티끌이 쌓이고 뭉치면 그것이 지구이고 태양이며 은하계의 모든 별이고, 흩어지면 허공입니다. 우리 몸뚱이도 원자나 티끌이 쌓여서 뭉쳐지면 몸뚱이고, 원자나 티끌이 흩어지면 그대로 허공입니다. 우리는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허공은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아 볼 수 없는 초미세먼지, 세포, 원소, 원자, 쿼크, 힉스와 같은 소립자 그 자체입니다.

부처님은 “허공과 마음은 수명을 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티끌과 원자가 뭉쳐진 모습 모양이나 뭉쳐 있지 않고 흩어진 모습 모양이나 그 자체가 허공과 마음과 작용이며, 마음과 허공 작용 자체 그대로가 티끌과 원자입니다. 그러므로 끝도 없는 광활한 우주세계는 바로 한 개의 티끌 원소 원자 쿼크 힉스이고, 한 개의 티끌 원자 등이 바로 광활한 우주세계입니다. 따라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드높이고 어리석고 욕심내고 화내고 고통스럽고 편안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등의 티끌 수와 같은 행위 즉, 모든 이름, 의미, 뜻, 느낌, 행동, 역할, 작용 모두가 하나의 티끌과 원자이고 허공이며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이 마음은 그렇게 생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광활한 우주세계의 일체존재가 이 마음이고, 이 마음이 우주세계의 일체존재라는 생각만으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좋아해서 얻으려는 행위로서 먹고 자고 사랑하고 일하고 공부하고 재물을 모으는 것과 싫어해서 버리려는 고통과 더러움과 미움 등등의 생각이 완전히 멈추어야 비로소 이 마음을 깨달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 마음을 깨달아 알지 못하는 철학 수학 물리학자 데카르트는 지금 사과가 달고 새콤하다고 하는 것은 악마가 그렇게 시키는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지금의 4차 산업의 출발 시대 과학이 우주세계를 가상의 현실, 가상의 세계라고 하는 것도 지금까지는 우주세계가 물질의 세계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주세계가 물질의 세계가 아니고 정보와 데이터의 세계라는 것을 알았지만 정보와 데이터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자 현실을 가상의 현실이라 하고, 가상의 세계, 아바타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데이터와 정보가 바로 이 마음인 것을 깨달아 알지 못하는 소견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보는 것은 눈이고, 눈이 본 대상은 신경을 따라 뇌로 보내져서 뇌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눈과 뇌가 물질이 아니고 정보와 데이터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그렇다면 보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실을 모르는 데카르트는 악마가 그렇게 시켰다고 하였고, 양자역학은 우주세계는 가상의 현실 가상의 세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과는 달고 새콤하다고 하며, 지금 싫어하고 좋아하는 A와 B를 보는 것은 무엇인가? 철학 수학 물리학자 데카르트는 어느 때 사과를 먹으면서 어떤 사과는 달고 새콤해서 좋아하고, 어떤 사과는 달지도 않고 새콤하지 않아서 싫어하는 자신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한 때 그는 철학자다운 의심을 일으킵니다. 지금 사과를 먹는 것이 무엇이고, 지금 어떤 사과는 달고 새콤하다 하여 좋아하고, 어떤 사과는 쓰고 새콤하지 않아서 싫어하는데 지금 도대체 무엇이 달다 쓰다 하면서 좋아하고 싫어하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심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수학자 물리학자로서 몸뚱이와 사과가 오직 물질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물질인 몸뚱이와 사과가 스스로 달다 쓰다 라고 하지 못한다면, 혹시나 사람을 골탕을 입히는 악마가 우리들의 뇌 속에 들어와서 그렇게 시키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의 몸뚱이와 사과가 물질이 아니라 비물질의 데이터와 정보라는 것은 지금의 4차 산업 출발시대에서는 밝혀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데이터와 정보가 전부가 아닙니다. 데이터와 정보는 4차 산업의 출발시대에 한정적으로 해당하는 것일 뿐, 4차 산업 초입시대 이상의 다른 시대에서는 해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기 산업시대에 따른 각기 다른 가칭의 데이터와 정보가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일체는 이름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고, 의미, 뜻, 느낌, 활동, 역할, 작용의 이 마음이라는 궁극적 진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과와 사과는 달고 새콤하다는 것은 물질이 아닌 데이터와 정보이며 작용으로 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사과는 달고 새콤하다는 이 마음이 있으니 달고 새콤한 사과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사과는 달고 새콤하다는 이 마음이 없다면 달고 새콤한 사과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바로 달고 새콤한 사과인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싫어하고 좋아하는 A와 B을 무엇이 보고 있는가? 지금 A와 B를 보면서 B와 A를 싫어하고 좋아하는 이 마음이 있으므로 싫어하고 좋아하는 B와 A가 있습니다. 만약 싫어하고 좋아하는 이 마음이 없다면 보는 눈도 A와 B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이 바로 눈과 B와 A이므로 A와 B는 한 몸, 한 마음, 한 부처입니다.

이것이 홍익인간이고, 예수의 사랑이며, 부처의 자비로서 고통의 세계를 밝게 비추는 동방의 등불 대한민국입니다.

 

진원 스님 <안동 보현사 스님> 

1949년생으로 덕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으며 정각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그간 제방에서 참선수행하였으며 지금은 안동의 암자에서 정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