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티끌 수와 같은 행위를 합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말하고 감촉을 느끼며,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누고 학문을 하고 일하고 재물을 모으고 명예를 높이고, 있다 없다, 크다 작다, 예쁘다 밉다, 더럽고 깨끗하다, 선이다 악이다 하는 등등의 헤아릴 수 없는 분별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와 같은 행위와 활동을 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직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버리고 좋아하는 것은 취하려는 욕망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욕망을 과거에도 이루지 못했고 앞으로도 이룰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욕망은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그런가? 예를 들어본다면 내 몸뚱이가 젊고 건강할 때는 내 몸뚱이가 젊고 건강한 줄을 모릅니다. 내 몸뚱이가 젊고 건강한 줄을 알 수 있을 때는, 내 몸뚱이가 늙고 병들었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젊고 건강한 몸은 스스로 있지 못하고 늙고 병든 몸으로 인하여 있고, 병든 몸도 스스로 있지 못하고 건강한 몸으로 인하여 있습니다. 즉 늙고 병든 몸이 없으면 젊고 건강한 몸도 없고, 건강한 몸이 없으면 병든 몸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싫어하는 늙고 병든 몸뚱이를 버리려고 하지만 버릴 수가 없습니다. 병든 몸이 없으면 건강한 몸도 없으니 지금 늙고 병든 몸뚱이를 버려 없어지면 젊고 건강한 몸뚱이도 없어지니 버릴 수 없습니다. 병든 몸을 버리려는 것은 건강한 몸을 얻기 위함인데, 건강한 몸이 없어지면 병든 몸 생기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젊고 건강한 몸 또한 따로 얻거나 오래 보존할 수 없습니다. 건강한 몸은 스스로 있지 못하고 병든 몸으로 인하여 있으므로 건강한 몸을 얻으려고 할 때마다 병든 몸이 따라오기 때문에 건강한 몸을 계속 끊임없이 얻어야 하므로 끝내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은 취하지 못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지 못합니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서로 융합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것을 취한다는 것은 결국 싫어하는 것을 취하는 것이고, 좋아한다는 것은 싫어하는 것이므로 지금 내가 무엇을 좋아한다면 좋아하는 것은 결국 싫어지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영원히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좋아하면 싫어하는 것이 생기고, 싫어하는 것이 생기면 싫어하는 것을 버리려 하지만, 싫어하는 것을 버릴 때마다 좋아하는 것을 버리게 되므로 싫어하는 것도 영원히 생겨서 버리지 못합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A라는 정치인을 싫어하고 B라는 정치인을 좋아하며, 어떤 사람들은 A 정치인을 좋아하고 B 정치인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싫어하는 A가 있는 것은 좋아하는 B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B가 없다면 A 또한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싫어하는 A를 버리려 하면 B를 버리는 것이므로 A를 버릴 수 없고, 좋아하는 B를 취하려 하면 A를 취하는 것이니 B를 취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혹하여 이 같은 지혜를 갖추지 못하여 지금도 좋아하는 것은 취하고 싫어하는 것은 버리려 합니다. 하지만 취하지도 버리지도 못하니 고통 속에서 마냥 헤매는 것입니다. 그러다 의문이 일어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내 운명은 정해진 것인가 아니면 바꿀 수 있는가?’ ‘내 소원은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런 의문은 미혹한 어리석음의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서 왔는가? 과학이 주장하는 150억 년 전 빅뱅 전으로 돌아가 보면 우주 세계가 모두 블랙홀로 사라지고 텅텅 비어버린 허공무일(虛空無一)의 세계에서 중생은 어느 곳에 존재하고 있는가 즉, 빅뱅이 일어나기 전에 무엇이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4차 산업의 중입 시대 이상에 해당하는 중생이 있습니다. 그들은 복덕이 뛰어나 음식물을 직접 섭취하는 4차 산업 출발시대와 초입시대와 달리 음식물을 직접 먹지 않아도, 음식을 먹었다는 마음만 먹으면 음식을 섭취한 것과 같아지는 광명의 복이 뛰어난 곳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중입시대 이상의 세계에 있어도 싫어하고 좋아하는 분별 망상이 남아 있는 중생일 뿐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중입시대의 복이 다할 때는 그동안 쌓이고 축적되었던 싫어하고 좋아하는 번뇌 망상의 공유 업이 동력이 되어 순수하고 맑은 우주의 기운을 자극하여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싫어하고 좋아하는 욕망의 기운이 바람이 되고 티끌이 되어 서로 결합하여 인연을 따라 우주세계와 지구가 성립됩니다. 과학이 주장하는 150억 년 전 티끌 하나의 폭발은 바로 우리들의 번뇌 망상이 폭발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빅뱅한 하나의 티끌이란, 우리의 싫어하고 좋아하는 분별의 망상이며, 망상의 티끌이 폭발한 연유는 4차 산업 중입시대 이상의 중생이 그동안 쌓고 축적했던 싫어하고 좋아하는 등의 망상이 복덕이 다하여 없어질 때를 맞추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난 것입니다.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주장한 40억 년 전 지구의 바다에 최초 출현했다는 단세포는 바로 우리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번뇌 망상의 티끌입니다. 이 티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번뇌를 반복하여 진화 유전시킨 습관과 버릇의 업장이 60만 년 인류의 조상이 되었으며 오늘의 우리 사람이 된 것이며, 지금도 습관의 업장은 계속 진화 유전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주위에 있는 태양과 달과 별, 산과 강, 수많은 동물과 집과 컴퓨터와 스마트폰과 같은 모든 사물 등 티끌 수와 같은 일체 존재는 오늘 이 생애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고 짧게는 40억에서 150억 년 전, 길게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세월 동안 서로 꾸준히 인연을 맺어온 것들입니다. 이런 인연으로 인해서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번뇌를 여의기가 그토록 힘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위에서 언급한 우리들의 모든 의문은 스스로 풀어집니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라고 하는 곧 이 몸뚱이는 무량한 세월 동안 범부의 망상, 아첨, 거짓, 잘난 체하고 뽐내는 이것들이 하나로 모여 이루어진 것이고, 우리는 이런 망상 속에서 왔다가 망상 속으로 돌아가며, 운명은 망상의 업장이므로 망상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참된 소원은 모든 망상을 여읠 때,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와 같은 참된 소원의 성취가 바로 모든 이들을 이롭게 하는 홍익정신이고, 예수의 사랑이며, 부처의 자비이고, 동방의 등불입니다.

 

 

진원 스님 <안동 보현사 스님> 

1949년생으로 덕산 스님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으며 정각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였다. 그간 제방에서 참선수행하였으며 지금은 안동의 암자에서 정진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