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포트레이츠 Hair Portraits, 2015-2022년 [사진 롯데뮤지엄]
헤어 포트레이츠 Hair Portraits, 2015-2022년 [사진 롯데뮤지엄]

롯데뮤지엄이 12월 24일 개막한 〈마틴 마르지엘라〉전은 돌연 패션계를 떠나 아티스프로 돌아온 마틴 마르지엘라의 예술 세계를 조망한다. 상식과 경계를 뒤엎는 새로운 방식으로 시대를 앞서간 마틴 마르지엘라의 시각 예술을 조명하는 개인전이다.

패션 브랜드 메종 마르지엘라의 창립자이자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였던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2008년 돌연 패션계를 은퇴한다. 이후 마틴 마르지엘라는 순수 예술 창작자로 돌아왔다.

2021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라파예트 안티시페이션(Lafayette Anticipation)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올해 베이징 엠 우즈(M Woods)에서 전시한 후 세 번째로 이번 서울 전시를 한다.

바니타스 Vanitas, 2019년 작품   [사진 롯데뮤지엄]
바니타스 Vanitas, 2019년 작품 [사진 롯데뮤지엄]

이번 전시에서 마틴 마르지엘라는 1980년대부터 깊게 고민해온 ‘예술, 물질과 신체, 성별의 관념, 시간의 영속성, 직접 참여’를 주제로 작업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50여점의 설치, 조각, 영상, 퍼포먼스, 페인팅 등이 미술 애호가들과 팬을 맞이한다.

패션의 시스템과 ‘인체’라는 매체의 한계를 넘어 뮤지엄의 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공간 안에서 질문을 던지고, 대안적 사유(alternative thinking)를 제시하며 예술적 시도를 지속하는 마르지엘라의 작품 세계를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롯데뮤지엄이 작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여 뮤지엄 전시장의 독특한 구조를 바탕으로 미로를 구성하고 장소 특정형(site-specific) 작품을 선보여 서울 관람객을 위한 독창적인 전시가 탄생했다.

‘예술, 물질과 신체, 성별의 관념, 시간의 영속성, 직접 참여’는 마르지엘라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주제다. 초반에는 패션의 범주 안에서 이를 표현했으나 디자이너에서 은퇴한 후 어떠한 제약 없이 시각 예술가로서 무한한 창작의 자유를 누리며 작품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토르소 시리즈 Torso Series, 2018-2022년   [사진 롯데뮤지엄]
토르소 시리즈 Torso Series, 2018-2022년 [사진 롯데뮤지엄]

이번 전시의 대표작으로 꼽힌 <데오도란트(Deodorant)>는 매우 일상적인 물건이다. 작가는 데오도란트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체취를 인위적으로 은폐하고 더 나아가 현대 사회의 위생에 대한 관념도 산업이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을 일깨운다.

마틴 마르지엘라는 신체를 소재로 삼아 확대 재생산하거나 신체의 일부를 극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을 통해 그것의 의미와 상징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토르소 시리즈(Torso Series)>는 인체의 일부를 3D 스캔하여 만든 실리콘 조각으로 고대 조각상의 관념에서 탈피하는 한편 젠더의 의미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바디 파트 (Bodyparts)> 시리즈는 인체의 한 부분을 촬영하여 크게 확대한 작품이어서 관람객이 어떤 부분인지 알아볼 수 없게 표현했다. <레드 네일즈 (Red Nails)>는 붉은 손톱을 거대한 규모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변화하는 아름다움의 개념과 구성 원리를 연구한 작가의 사유가 담겨있다.

카토그래피 Cartography, 2019년 작품 [사진 롯데뮤지엄]
카토그래피 Cartography, 2019년 작품 [사진 롯데뮤지엄]

<바니타스(Vanitas)>에서는 모발이 얼굴을 덮은 두상을 볼 수 있는데, 머리카락 색상만으로 유년부터 노년까지 나타내며 인간의 생애 흐름을 드러낸다. 작가는 인공 피부를 입힌 실리콘 구체에 자연 모발을 하나하나 이식하여 작품을 완성했다. ‘지도 제작법’이라는 뜻의 <카토그래피(Cartography>는 한 방향으로만 쏠리는 인공 모와는 달리 정수리에서부터 소용돌이치며 자라나는 자연 모발의 방향을 작가가 심도 있게 연구한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난다.

레드 네일즈 모델 Red Nails Model, 2021년 작품  [사진 롯데뮤지엄]
레드 네일즈 모델 Red Nails Model, 2021년 작품 [사진 롯데뮤지엄]

 

이번 전시는 마틴 마르지엘라가 창조한 세계관 속에서 관람객이 새로운 전시를 경험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작가는 관람객에게 작품을 모든 시간 동안 드러내지 않는다. 스태프가 작품을 하얀 천으로 덮었다 열었다를 반복하며 작품 관람 시간을 제한한다. 전시장 중반에는 <모뉴먼트(Monument)> 작품이 관람객에게 휴식을 제공한다. 거대한 소파에서 관람객은 휴식을 취하면서도 자신이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마틴 마르지엘라>전은 롯데뮤지엄(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에서 2023년 3월 26일(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