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가 있는 벽, Acrylic on canvas, 130.3×162.2cm, 2022. [사진 제공 아트노이드178]
액자가 있는 벽, Acrylic on canvas, 130.3×162.2cm, 2022. [사진 제공 아트노이드178]

1960년대 프랑스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묘사하는 한편, 도시적 감수성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조르주 페렉의 소설 《사물들(Les Choses)》 첫 장처럼, 최은숙 작가는 전시 공간에 발레리나 인형, 헌팅 트로피, 램프, 화려한 벽지와 액자, 레이스, 꽃과 같은 사물들을 펼쳐 놓는다. 어두운 불빛 아래서 그것들은 우울하고 외로운 이면을 드러낸다. 작가는 물감의 물질성이 느껴지지 않도록 최대한 얇게 저채도의 색을 장식적인 풍경에 입힌다. 작가가 그려내는 풍경은 단단하면서도 단단하지 않은 이중적인 풍경이다.

5월 18일부터 6월 12일까지 아트노이드178(서울 성북구 삼선교로6길 8-5(B1))에서 열리는 최은숙 작가의 개인전 〈단단한 풍경〉 모습이다. 권력지향적인 삶과 기억 속 편린의 관계에 주목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은연중에 사회적 욕망을 대변하는 미묘한 사물들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다.

펜스3, Oil on canvas, 116.8×91cm, 2022. [사진 제공 아트노이드178]
펜스3, Oil on canvas, 116.8×91cm, 2022. [사진 제공 아트노이드178]

 

작가가 그려낸 일상의 사물들은 문화적 취향으로 둔갑한 과시욕의 상징이다. 사회적 성공의 전리품이 되어버린 사물들은 더 높은 지위, 부를 향한 욕망 위에 놓여 있기에 위태롭다. 명성을 누리고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이 삶의 전부인양 질주하는 경쟁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듯 비판 없이 받아들인 일상이 낯설어지고 불편한 감정을 마주할 때 사물들은 숨겨진 이야기를 꺼낸다.

품격 있는 선물, Acrylic on canvas, 45.5×53cm, 2022. [사진 제공 아트노이드178]
품격 있는 선물, Acrylic on canvas, 45.5×53cm, 2022. [사진 제공 아트노이드178]

이번 전시를 위해 최은숙 작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상의 풍경을 담은 이미지들을 수집했다. 작가는 무의식중에 시선이 가는 사물에서 자신의 과시욕을 발견할 때, 기시감을 느낀다. 잠재된 의식 어딘가에 단단히 자리하고 있는 어떤 것.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있던 동경의 대상이었던 걸까. 사물 뒤에 놓여 있던 “그것”이 얼굴을 내민다. 작가가 들려주는 내밀한 곳에 감춰두었던 비밀, 누군가의 욕망과 한 몸이 되어버린 사물들에 숨겨진 이야기.

“대상을 나에게 투영하여 유년 시절의 이야기로부터 욕구의 단서를 찾아낸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대상에 대한 환상과 현실을 프로젝팅한다. 단, 판단을 이끌어 내는 것은 최대한 지양한다. 나 자신도 상승욕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월해지고 싶은 욕구는 인간의 본능이다. 어느새 우린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만다.”( 최은숙 ‘작가 노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