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사신사상으로 볼 때 한라 백록담이 남주작南朱雀을, 강화 첨성단이 우백호右白虎를 백두의 천지가 북현무北玄武를 상징해오고 있다면, 막상 동쪽을 수호하는 좌청룡左靑龍은 어디일까? 이런 의문에 삼국유사의 만파식적을 만들었던 대나무를 얻어온 동해의 기이한 섬, 문무대왕의 수장유언水葬遺言을 떠올리며, 선뜻 독섬獨島이라고 대답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성싶다 - 이종상, '모화근성募華根性에서 섬 그리기 의도적 꺼려왔던 것 문제' 중에서 -
 

선생님의 자생문화론이란 무엇입니까?

고구려벽화를 보면 사신사상四神思想으로 되어있다고 합니다. 좌청룡 우백호 색깔까지 있죠. 동쪽은 청색이고 서쪽은 백색이고. 그림에 방향이 있고 시간이 있고 도덕이 있고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있는 걸 지금 누가 알 수 있을까요? 색깔에 인의예지가 있다? 색깔에 도덕이 있다? 우리 자생문화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빨강이 피를 의미하니까 혁명을 의미하고 정열을 의미한다는 정도는 다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공간적으로 어느 쪽 방향인가? 넓이로 비교했을 때는? 그건 모릅니다.

 

모두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고, 조화를 가져야 존재한다는 큰 철학이 홍익

우리 동양화의 이론과 실기를 제대로 배운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영혼과 육신, 형이상학과 형이하학 이걸 둘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 모두가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고, 조화를 가져야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은 철학입니까. 그래서 홍익이에요. 큰 철학이죠.

지금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케케묵은 낡은 사고를 말한다고 그럽니다. 그건 우리 지도하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어요. 그 옛날 케케묵은 학문을 그냥 꺼내서 시대에 맞지 않는, 업그레이드가 안 된 어떤 소프트웨어를 가르치듯이 지도해 가지고는 절대로 퍼져나갈 수가 없습니다. 업그레이드도 되고 새로 나오는 앱도 생각해야 돼요. 그냥 옛날 말을 그대로 쓰면서 하면, 우리 자생문화가 소멸문화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시대 감각에 맞지 않으면 자생문화는 소멸돼 버려

시대 감각에 안 맞으면 문화는 소멸됩니다. 자생문화라는 것은 스스로 그 환경에서, 그 자연에서 또 이웃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그 시대상에 맞게 연결해 가기 위해서 생긴 게 자생문화예요. 거기서 계속 생활하고 살아가려면 그 자생성을 살려야죠. 그 자생성을 알아야 외부 문화를 소화를 시킬 수 있어요.

빈 속에다 술을 먹으면 건주정을 해요. 지금 건주정하는 화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시죠. 우리말 좋은 거 얼마든지 있는데 그거 다 두고서 영어 조금 한다고 툭하면 영어를 가져다 써요. 간판 보세요. 이게 건주정하는 거예요. '문화적 건주정'이라고 제가 합니다.

그런 건주정을 하지 않으려면 우리 문화의 뿌리인 자생문화로부터 발달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앞으로 발전이 없습니다.

그러려니까 미래를 앞에 두고 100년 앞을 내다보면서 과거를 먼저 습득해서 그 과거에 기초한 다음, 거기에 시대 감각, 미래 감각, 창조 감각을 가미해야 고부가가치 창출을 하는 사업도 이득을 낼 수 있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도 다 문 닫아요. 망해요.

[사진=김경아 기자]
[사진=김경아 기자]

우리가 '한'이라는 글자를 많이 씁니다. 한국, 대한민국, 한강, 한가위, 북한산, 한글. 이렇게 전부가 '한' 자를 써요. 얘기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런데 그 '한' 자는 한문을 빌려다가 ‘한’이란 음만 표기한 거예요. 한나라 漢자에 물 江자를 쓴 한강도 그렇고 내가 사는 곳 근처의 북한산도 한나라 漢자를 썼죠.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닙니다.

'독도'는 외로운 섬 하나 떠 있다고 하죠. 그런데 독도가 왜 외롭습니까? 홀로 독獨자를 썼다는 거죠. 내가 독도 운동을 하며 전 세계에 독도를 알렸는데 독도가 왜 외롭습니까? 외롭다면 울릉도가 더 외롭겠죠. 그 '독'이라는 게 옛 백제 지역이었던 충청도, 전라도에서는 돌멩이를 독이라고 그래요. 독착, 독작섬. 그래서 독섬이에요. 음을 한문으로 표기하면서 외로울 독자를 쓴 거예요.

서울대학교 바로 뒤 관악구에 독산동이 있습니다. 그 독자는 외로울 독자가 아니에요. 대머리 독禿자에요. 그러면 독산동에 사는 사람들은 대머리들이 모여서 사는 동네라는 의미이겠어요? 그것도 음만 빌려서 표기한 것입니다. 관악산 그쪽이 바위가 있고 돌멩이가 많다고 해서 대머리 독자를 쓴 거예요. 저는 한학을 했으니까 한문 표기를 보면 원래 우리말의 내용을 음만 따서 어쩔 수 없이 한자로 표기한 것을 알죠.

 

우리나라가 한恨의 문화라는 건 일본 야나기 무네요시 미학론의 잔재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라는 일본 미학자가 우리나라에 처음 왔을 때 경복궁을 보고, 우리 국악 소리 들어보고, 우리 동양화를 보니 전부가 다 자기가 생각했던 거와는 다른 겁니다.

일본에서는 대한민국이 일본 문화를 훔치고 일본 문화를 모방한다고 배웠는데, 우리나라에 와보니까 일본이 오히려 우리 자생문화를 훔쳐갔고, 우리 자생문화에서 얻어갔고 빌려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야나기 무네요시가 우리나라에 미학을 처음 퍼트릴 때 그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우리를 가르친 1세대 교수들입니다. 그 세대들이 유종열이라는 일본 미학자에게서 배울 때, 그가 우리나라 문화가 위대한 이유를 이론화 하면서 큰 실수를 한 게 있어요.

"대한민국은 일본 식민지가 되어 수탈당하고, 중국으로부터도 자주 침략당해왔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사는 사람들은 서러움이 많고 원한이 많다. 그 때문에 일본보다 곡선도 아름답고 노래도 더 멋진 곡을 만들어낸다." 착각을 한 겁니다.

그 '한'이라는 말이 순수한 우리말이고 한문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 야나기 무네요시도 알고 나서 자신의 이론을 취소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취소하기 전에 그에게서 배운 당시 신학문을 했다는 우리 스승들은 해방이 되고 10년, 20년, 30년, 지금도 우리 문화를 한恨의 문화라고 합니다.

침략당했다고 한이 맺혀서 자살하고 죽은 사람 봤나요? 폭탄 던지다가 사형은 당했어도. 우리가 그런 못난 민족이 아닙니다. 우리 자생문화는 그런 한심한 문화가 아닙니다.

 

'한'은 순수한 우리말로 '크다'의 의미

한이라는 그 말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겁니다. 발음은 다르지만 굉장히 크다는 큰 대大자의 의미예요. 그 뜻을 전하기 위해 '대''한'민국이에요. 앞의 큰 대大자는 뜻을 얘기한 것이고, 뒤쪽에 있는 韓자는 나라 한 자를 썼어요. 음만 빌려온 겁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인 거예요. 원한 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원 장승업을 다룬 영화 '취화선'의 자문위원도 하셨습니다.

취화선은 우리나라 영화가 처음으로 깐느에서 감독상을 받은 작품입니다. 취화선 전에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 영화를 만들어 깐느에 출품했어요. 임권택 감독이 보내준 필름으로 서편제를 봤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거예요. 서편제를 보셨으면 아실 거예요. 얼마나 때려서 원한이 맺혔습니까. 그 영화가 깐느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줄 알았지만 그리 호평을 받지는 못했어요.

 

3년 뒤에 있을 동북공정 막기 위해 아차산 고구려 유적전 열어

그이듬 해에 내가 북한에 다녀와서 박물관장이 되었습니다. 북한에 가서 동북공정이 3년 뒤에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우리 문화가 중국의 아류가 아니라는 걸 빨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강 유역의 고구려 유적전을 기획했습니다. 국립박물관도 못하고, 전국 아무데서도 못하고 있었어요. 뭐가 있어야 전시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아차산을 개발해서 고구려 유물이 많이 나왔다는 것을 당시 발굴에 관여했던 김원룡 박사(전 국립중앙박물관장)를 통해서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도 서울대 박물관장을 하셨는데, 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 내가 박물관장이 되었을 때, 그 아차산 유적을 생각했죠. 그런데다 3년 뒤에 동북공정이 발표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동북공정은 우리나라 문화를 모두 중국의 속국문화로 만드는 것

동북동정이란 뭐냐? 우리나라 문화를 아리랑이고 뭐고 할 거 없이 다 속국문화로 만든다는 겁니다. 찌안集安에 있는 고구려 벽화도 중국의 둔황敦煌 벽화의 아류문화라는 거죠. 기분이 나빠서 소름이 끼칩니다. 우리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예요. 동이족인 우리가 윤리, 도덕, 문화도 그렇고, 역사도 더 위대해요. 한나라 문화라는 건 우리처럼 그렇게 깊지 못합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전시를 하고 세미나도 했습니다. 그 세미나에 중국 학자들이 참석하기로 했는데 오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학문적으로 제일 우수하다는 서울대 박물관에서 3년 후에 발표할 동북공정을 어떻게 알고 고구려 유적전을 하느냐는 거였죠.

그러면 아류 문화로 만들지 못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중국에서 학자들을 못 보낸 거예요. 그 때문에 세미나에서 나 혼자 강의를 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자리에 임권택 감독이 와있었습니다.

 

아차산 고구려 유적전 세미나에 온 임권택 감독을 만나

임권택 감독이 쉬는 시간에 내게 와서 그러는 겁니다. 강의를 듣고 비로소 서편제를 잘못한 걸 깨달았다고. 한恨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영화 하나를 더 만들고 싶어 했어요.

"그러면 오원 장승업의 스토리가 좋은 게 많으니 나와 관련 있는 장승업 화가를 테마로 하자. 그런데 절대로 원한과는 무관하게 해야 된다." 그렇게 시작이 된 겁니다.

주연 배우는 누구냐고 물으니 최민식이가 한다고 하더군요. "그럼 그 배우는 나한테 와서 강의 듣고 하라고 해라. 그렇지 않으면 안 하겠다"라고 했죠.

 

취화선 화가 엑스트라는 랑우회 제자들이

그리고 화가가 나오는 영화 보세요. 손 따로 얼굴 따로 나옵니다. 그게 너무 싫었어요. "여기선 절대로 그러지 말자. 주연배우 하나만 손 따로 해라. 내가 손 노릇을 일일이 해줄 수 없고 얼굴도 그 사람이 나와야 되니까, 그 손 노릇 할 수 있는 좋은 제자를 소개해주겠다. 주연만 손 따로 얼굴 따로 하자."

화가 영화니까 엑스트라 화가도 많이 나오겠죠. "그림 모르는 엑스트라는 한 명도 쓰지 말아라. 앞에서 먹 갈고 바로 그림 그려서 도장 찍는 것까지 잠깐 1분이면 되니까 그냥 다 찍어라. 그러면 칸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보고 놀라서 기절할 거다. 엑스트라들이 어떻게 다 그렇게 훌륭한 화가들이냐고 궁금해할 거다. 그렇게 만들어라."

그런 엑스트라는 돈을 많이 줘야 되지 않느냐고 걱정하길래, 내 제자들이니까 그냥 다 오라고 할 테니 콧수염만 잘 붙여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내 랑우회 제자들이 전부 엑스트라 화가로 나온 겁니다. 그러니 좀 잘 그리겠습니까? 용모도 수려하지 손 따로 촬영할 필요가 없었죠.

 

장승업 그림과 함께 선생님 내외분, 임권택 감독, 최민식 배우가 찍은 사진을 보았습니다.

우리 집에 오원 장승업 작품 진본이 여러 점 있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최순우 관장님이 나라에 돈이 없어서 못 산다고 다른 데로 가면 다시 살 수 없으니 다른 곳으로 사라지기 전에 일랑 선생이 사주면 어떠냐고 자꾸 나한테 보내서 하는 수 없이 사둔 그림들이었어요.

 

(왼쪽부터) 임권택 감독, 이종상 화백, 성순득 부인, 배우 최민식 [사진제공=이종상]

그중 하나를 유리를 빼고 그림 위에 최민식의 손을 얹게 했습니다. 그러고 내가 기도도 하고. 그게 말하자면 '신굿'을 한 겁니다. '주연 배우가 되려면 오원 장승업의 영혼을 당신이 받을 줄 알아야 된다.' 이 얘기죠.

그건 미신이 아닙니다. 자기의 영혼을 정제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주연을 해야지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주연만 하면 됩니까? 그리고 그림을 좀 배우라고 했어요. 아무리 손 따로 얼굴 따로 해도 화가의 마음을 알아야 되니까. 그래서 중앙대 교수하는 랑우회 내 제자를 연결해주었어요.

또 주연 배우의 스승은 랑우회의 나이 많은 원로 제자에게 하게 하고, 영화 대사는 도올 김용옥이 하나하나 살펴보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참 많았어요. 평창동 우리 집이 본부이고 아지트가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오우가를 지은 해남 윤 씨 윤선도 영정을 그릴 때입니다. 거기에 영화일까지 겹쳐서 피로가 매우 심했어요. 영정을 한 번 그리면 병원에 입원을 하거든요. 그때도 윤선도를 다 그려놓고 병원에 입원을 했어요.

곁에서 딸이 TV로 칸 영화제를 보는데 나도 관심이 있었죠. 처음으로 영화제 자막에 내 이름이 나오는데 망신이라도 하면 어떻게 합니까. 상을 받아 오기를 기대하는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로 감독상을 받더군요. 그럼 성공한 거죠.

 

작품은 인품이다

자신부터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내 삶의 철학입니다. 그래서 미술 대학에서 그림을 가르치면서도 입만 열면 '작품은 인품이다'를 가르쳤어요.

하나도 다르지 않아요. 인품이 돼 있지 않으면 아무리 연출을 하고 아무리 화장을 해도 작품을 보면 대번에 압니다. 무엇을 그렸든 그건 다 자화상이에요. 인품은 작품입니다.

 

얼빠진 거, 꼴값 떠는 거

'꼴값한다'는 이야기 들어보셨습니까? 얼굴이 왜 얼굴인가를 많이 생각했어요. 이건 한자가 아니죠. 얼굴은 한자가 없어요. 그냥 얼굴이에요. 처음에는 얼과 꼴이라는 소리로 불렸는데 바로 부르기가 힘드니까 얼굴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생각합니다.

한문만 어원이 있는 게 아니에요. 우리말의 어원은 몹시 다양한 뜻글자입니다. 우리 한글처럼 뜻글자가 없어요. 소리글자라 하고, 부호처럼 소리만 있다고 하는데 아니에요.

종교에서는 영과 육, 육체와 영혼,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나누지 않습니까. 그것을 한꺼번에 얘기한 것이 얼굴, 얼꼴이에요. 그중에 하나가 빠지면 "너 왜 그렇게 얼 빠져 보이냐?"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얼은 없고 겉모습만 있다는 말이죠. 육체는 껍질이니까. 꼴값한다. 껍질 값만 한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런 문자가 어디 있습니까? 얼빠진 거하고 꼴값 떠는 거를 한문으로 쓸 수 있어요? 우리는 그런 표현을 할 수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조상님께 고맙다고 해야 합니다.

이 국학원에 이런 것을 전공한 출신들이 교사 자격을 받아서 초중고등학교, 대학교에 가 철저히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이대로 두면 안 돼요.

3편에 계속

[인터뷰] 일랑 이종상 화백(1) "인간이 되는 게 아니면 홍익인간 정신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