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어천절 기념식, 단군 통해 민족 정체성 확인 구심점 마련
일제강점기 어천절 기념식, 단군 통해 민족 정체성 확인 구심점 마련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0.10.19 2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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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 논문집 ‘선도문화’ 제29권 발간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은 일제강점기 어천절의 제정, 행사, 중요 참여인물, 어천절 기념사와 강연 등으로 고찰한 “일제강점기 어천절 기념식과 독립운동”이란 논문 등을 게재한 논문집 ‘선도문화’ 제29권을 최근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한 논문집 ‘선도문화’ 제29권에는 ▲동아시아 적석단총에 나타난 삼원오행론과 선도제천문화의 확산(정경희) ▲곰의 변환과 결합에 관한 상징적 의미에 관하여(송현종)▲한국민족종교사상의 글로컬리티(Glocality)에 관한 연구(민영현)▲동녕부 자비령(慈悲嶺)과 고려 서북 경계(김영섭)▲고려시기 단군 역사기업의 변화와 도선국사 양계론 영향(이경룡)▲일제 강점기 어천절 기념식과 독립운동(조남호)이라는 6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일제 강점기 어천절 기념식과 독립운동”이라는 논문에서 조남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일제강점시기 어천절은 개천절과 함께 단군과 관련한 중요한 기념일이었다. 어천절 기념식은 국내뿐만 아니라 상해와 만주에서도 거행하였다”며 “개천절이 단군이 조선을 개국하고 문명화를 이루었다는 것을 기념하였다면 어천절은 단군이 죽어 소멸하지 않고 하늘로 돌아간 것을 기념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은 논문집 "선도문화" 제29권을 최근 발간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연구원은 논문집 "선도문화" 제29권을 최근 발간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다시 말해 어천절은 삼신의 영원성을 종교적 신앙으로 믿었고,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고 만들어가는 역할을 하였다고 덧붙였다.

어천(御天)이라는 말은 『주역』 건괘 단전의 “해(태양)는 시간에 맞추어 여섯 마리 용이 끄는 수레(龍車)를 타고 하늘을 운행한다(時乘六龍以御天)에서 나온다. 이것은 해가 용거를 타고 하늘을 운행한 것을 묘사한 것이며, 여기에서 천자가 용거를 타고 다니면서 천하를 통치하였다는 전설에서 나왔다.

조 교수는 “중국 전설에서는 어천이라는 말뜻은 용거를 타고 다니면서 천하를 통치한 것으로 묘사하였는데, 이와 달리 한국의 대종교에서는 어천이라는 말뜻이 인간 세상을 떠나 하늘로 되돌아갔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대종교에서 단군은 환인 환웅 단군의 삼신일체이고 하늘로 돌아가신 것은, 신이 되었다는 것을 뜻하고, 그것은 곧 삼신의 영원성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대종교는 어천절에 관하여 단군이 승천한 날을 기념하는 명절이라고 인식하였고, 어천한 연도를 『신사기』에 경자년 3월 15일이라고 기록하였기에 대종교에서는 경자년(B.C. 2241)을 채택하고 날짜를 3월 15일로 확정하였다. 대종교는 1910년 음력 3월15일(양력 1910년 4월24일)에 첫 어천절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조 교수는 “어천절 기념식은 대종교 또는 단군교 신도들만의 행사는 아니었다. 상해에서는 이승만을 비롯한 많은 임시정부 요인들이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였다. 이들의 기념사는 단군의 은총과 자손들의 잘못, 자손들의 국가를 되찾겠다는 책임의식을 강조하였다”고 말했다.

1921년 4월 22일 상해임시정부 의정원 건물에서 열린 어천절 기념식에서는 대통령이 이승만이 찬송사를 발표하였는데, 대체로 단군의 은덕을 칭송하고 계승하겠다고 하면서 자손들의 죄를 인정하였다. 또한 단군을 “인류의 스승”이라고 인식하였다.

또한 “국내에서도 이병기의 국학 연구에 대한 다짐은 단군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만주지역을 갔다 온 신명균은 만주를 비롯한 북방영토가 우리민족의 영토임을 주장한다. 어천절에 벌어진 마산 창신학교 학생들의 선전운동, 만주지역의 대한독립단이 어천절에 독립단체를 결성한 것과 한족노동당이 국어교과서에 어천절을 넣은 것은 일본에서 맞서서 단군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마련하고 한 것이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어천절은 현재 연변지역에서 조선족의 중요한 명절 가운데 하나로서 내려오고 있고 한족과 중국 정부에서도 이를 기록하고 있다”며 “앞으로 어천절에 관하여 폭넓게 연구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경룡(하곡연구원) 씨는 ‘고려시기 단군 역사기억의 변화와 도선국사 양계론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기억은 동이족 공동의 정체성이며 동이일가(東夷一家) 인식의 기초가 되었다. 요나라와 금나라도 고조선 역사기억을 계승하여 동이족이 일가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동이족 국가들은 고유문화의 제천의식을 실행하였는데 서로 유사하였다.”며 “그런데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화를 위하여 중국의 호천상제를 수용하여 제천하였고 고유문화의 최고 신격과 공존시켰다. 한족정권 북송은 왕권 강화를 위하여 국가 제사에서 호천상제에 도교의 옥황대제를 더하여 신격을 향상 수정하였다”고 말했다.

고려시기에 단군의 신격과 고조선의 역사기억이 변화하였다. 이경룡 씨는 “고려 성종은 왕권 강화를 위하여 유교의 국가제사를 수용하여 호천상제에 제사지냈다. 원종은 지배층의 요구를 받아들여 원나라의 압박을 극복하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마니산에서 도교의 초제를 지내고 혈구사에서 밀교의 대일왕 법회를 열었다. 따라서 단군의 최고 신격이 잠시 홀대되었다. 그러나 단군 신격은 소멸된 것이 아니고 호천상제와 대일왕 등 최고 신격과 병존하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고려 후기에는 오히려 단군의 신격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더욱 커졌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기억이 고려시기에 기록되었지만 강화도의 마니산과 혈구산 지명을 보면 고구려시기까지 기록을 소급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시기에 한정하여 연구할 필요가 없다. 또한 고려와 조선시기에는 고조선의 역사적 유적지를 고려와 조선의 판도 안에서 찾았으나 이러한 태도는 북방정권과 고려 사이에 전략적 완충지역이 있었다는 것을 외면한 것이다. 완충지역에는 여전히 고려인과 조선인이 거주하였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라면서 “판도 안에서 찾으려는 입장은 도선국사의 양계론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양계론은 화이(華夷)를 구별하는 화이론이었다. 그러나 동이족 일가 인식과 완충지역의 존속에 근거하면 동북아시아 전역으로 확대하여 연구하여야 한다. 거란족의 목엽산 제천의식은 단군의 제천의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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