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한민국 사람인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지구시민이라는 걸 알았다. (지구시민) 강의를 안 들었으면 후회하지 않았을까. 이 강의를 듣고 있다는 것이 행운이다.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는데 이런 걸 알게 되어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다.”

경기도 양주백석고등학교 영어과 권명진 교사는 지구시민 강의와 착한 미생물 EM비누 만들기 체험수업을 한 학생의 표현지에 감동했다. “인문계 고등학교는 입시가 최우선 과제죠. 하지만 지구시민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자신과 주변뿐 아니라 더 넓게 지구촌 차원에서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고 직접 자신의 행동을 통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체험을 하며 꿈을 키워갑니다. 그 모습이 정말 예쁩니다. 희망이죠.”

경기도 양주백석고등학교 권명진 교사를 지난 21일 서울 불암산 둘레길에서 만났다. [사진=강나리 기자]
경기도 양주백석고등학교 권명진 교사를 지난 21일 서울 불암산 둘레길에서 만났다. [사진=강나리 기자]

그는 5년 전 백석고등학교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부터 학기말 자기계발, 진로 등을 위한 융합교육 시간에 지구시민 교육을 제안했다. 지역 NGO와 함께 하는 활동인데다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구촌 세계시민으로서의 가치관을 키우는 교육에 교장선생님도 기꺼이 찬성했다.

NGO단체인 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 강사 10명과 권명진 교사는 1학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했다. 지구촌 문제가 지구시민으로서 자신의 문제임을 알고 직접 손으로 EM비누와 세제도 만들며, EM흙공으로 하천 살리기도 했다. 참여한 학생들은 크게 호응했고 지난 5년 간 계속할 수 있었다.

“한 아이가 ‘선생님, 제가 지금까지 꿈이 없었거든요. 뭘 해야 할지 몰랐는데 지구시민교육을 받고나니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겠다고 느꼈어요. 전 화학과에 갈 거예요.’라고 했어요.

그 학생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플라스틱 사용 보고서를 만들더니 실제 화학과 진학했어요. 이 교육이 아이들의 진로에도 영향을 주더군요. 작은 씨앗이 아이의 가슴에 뿌리내려 꽃 피울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권명진 교사는 뇌교육을 위한 과정의 하나로 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와 연계해 학생들에게 지구시민 교육과 체험 교육을 했다.  [사진=본인 제공]
권명진 교사는 뇌교육을 위한 과정의 하나로 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와 연계해 학생들에게 지구시민 교육과 체험 교육을 했다. [사진=본인 제공]

학생들은 교내 체험에 만족하지 않고 지구시민운동연합 활동가들과 지역 내 독거어르신 반찬 배달 봉사에도 참여하겠다고 나섰다. 배달을 가서 어르신의 말벗도 되어드리고 어깨도 주물러 드린 아이들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났어요.” “그동안 형식적인 봉사시간 채우기였는데 이제 진짜 봉사활동을 하는 것 같아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권명진 선생님도 학생들과 어울려 묵묵히 봉사활동을 한다. 학교 선생님이란 걸 뒤늦게 알게 된 어르신들은 “보통 학생들만 봉사를 하고 선생님은 인솔을 하던데 어떻게 직접 하느냐? 고맙다.”고 하신다.

권 교사는 “학생들이 집에 가서 봉사활동 이야기를 하면 부모님들도 ‘꾸준히 하라’고 격려하고 응원하신답니다. 아이들의 내면이 성숙해지고 인성이 밝아진 걸 보는 교사의 보람은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아이들을 잘 가르쳐 성적이 올랐을 때 보람은 제한적인 편이죠. 아이들과 지구시민 활동하면서 사제지간에 감동하고 정을 쌓게 됩니다.”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작년 5월에는 학년별로 5명, 총 15명 학생이이 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가 선정하는 장학생에 선발되어 장학금도 받았다. 그는 다른 학교에도 지구시민 프로그램을 소개했는데 학생들의 인성교육면에서 효과가 크다며 감사인사를 받았다. 주변 교사들은 그에게 “더 신이 나고 건강한 모습으로 잘 살고 있다”며 깜짝 놀란다.

백석고등학교 학생들은 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 '독거어르신 반찬배달' 봉사활동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지난해 5월 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는 15명의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정, 장학금을 지급했다. [사진=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
백석고등학교 학생들은 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 '독거어르신 반찬배달' 봉사활동에도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지난해 5월 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는 15명의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정, 장학금을 지급했다. [사진=지구시민운동연합 강북2지부, K스피릿 DB]

올해 20년 차 교사인 권명진 선생님에게도 큰 위기가 있었다. 2010년 당시 학생인권이 부각되던 초창기였다. 제대로 지침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학교는 혼란에 빠졌다. 교사와 학생 간 신뢰와 소통이 부족한 상태에서 학생 중에는 선생님들이 제재하기 어렵다는 걸 이용해 폭언을 하거나 학교폭력 사건을 일으키는 아이도 생겼다. 교사의 권위가 한없이 추락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그러던 중 담임을 맡은 학생들 간에 사고가 생겼다. 민수(가명)는 점심시간 같은 반 친구 영준이(가명)가 언짢은 말을 했다고 화가 치밀어 젓가락을 던졌고, 영준이는 눈두덩이에 맞아 크게 다쳤다.

“학교폭력 처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아직 없을 때라 나름 인성교육 측면에서 접근하려고 했죠. 그런데 민수는 ‘날 기분 나쁘게 한 그 녀석 잘못이다. 난 잘못한 게 없다.’며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더군요. 친구가 피를 흘리는 상황인데도 그 고통에 대한 공감도 없고 무엇을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민수에게 큰 충격을 받았어요.” 몇몇 교사들도 민수의 태도 때문에 크게 당황했다.

결손가정인 민수의 부모는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고, 피해학생인 영석이 부모님의 항의는 거셌다.

권 교사는 “학생이 아니라 제가 어떻게 학생지도를 해야 할지 심리상담을 받았어요. 그때 ‘요즘 그런 아이들이 많다. 일종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인다. 그런 경우 병원에서도 말썽을 부리기 때문에 주의한다. 무엇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선생님이 본인을 관찰하고 있다는 신호만 주라. 그렇게 해야 선생님이 힘들지 않다.’라는 권고를 들었죠. 처방도 받았는데 안정되지 않고 힘들었습니다. 교사로서 도대체 무슨 교육을 하고 있었던 건지 혼란스럽기만 하고.”

그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이상을 겪으며 휴직까지 고려했다. 다양한 시도가 효과가 없었을 때 문득 대학원 시절 취업고민에 힘들던 자신에게 안정감을 되찾아 준 브레인명상을 기억했다. “명상과 호흡, 체조를 하면서 치유가 많이 되었죠. 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학생이 처한 상황도 객관적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계속 있을 텐데 나는 교사로서 어떻게 해결해나갈지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그는 솔뫼중학교로 발령받았을 때 같은 학교 교사 세 명과 한국뇌교육원이 주관하는 ‘뇌교육 인성교육 교원연수’를 이수하며 그 답을 찾았다. “뇌교육은 체조, 명상 등 신체적 활동과 뇌 활용 트레이닝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찾고 우리나라 교육법에 명시한 인재상 ‘홍익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인성교육법이더군요. 교육을 받고 ‘지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홍익인간으로 성장시키는 게 교사의 본분이구나.’라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교육을 받은 네 명의 교사가 학교에서 수업 전 5분 뇌체조와 명상을 지도했다. 아이들은 “국어선생님도 하던데 영어선생님도 하시네요?”라고 신기해했고, 나중에는 “오늘은 왜 5분 뇌체조, 명상 안 하고 바로 수업에 들어가요.”라며 서운해 했다.

1년 간 지도한 결과 학생들이 안정되고 밝아지자 교장, 교감선생님도 관심을 두어 학교 전체에서 추진하게 되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한국뇌교육원 등과 학교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해피스쿨 캠페인’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권명진 교사는 그가 뇌교육 인성교육 교사 연수를 통해 교육의 희망을 찾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권명진 교사는 그가 뇌교육 인성교육 교사 연수를 통해 교육의 희망을 찾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진=강나리 기자]

권명진 선생님이 다음 발령받은 덕정중학교는 체육연구학교여서 아침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체력증진 체조를 했다. 그의 제안으로 뇌체조를 도입했고, 뇌교육 콘텐츠인 국학기공을 도입해 기공무예반을 만들었다. 또한 뇌체조를 활용한 ‘바숨댄스 동아리’도 만들어 다양한 접근을 했다.

그는 현재 뇌교육 교원연수를 받고 홍익인성교육을 학교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사들의 모임인 홍익교원연합에서 활동 중이다. 또한 경기도 지역 교사들과 뇌교육연구회를 결성해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교육법을 연구해 실현하는 활동을 했다. “교사들과 만나면 기공, 명상 등으로 충전하고 체력도 기르죠. 매시간 1분씩 푸시 업, 싯업, 플랭크, 단전치기 등 운동을 하고 인증샷이나 인증영상을 ‘단톡방’에 올려 서로 격려합니다. 제가 아는 교사들도 함께 참여하며 건강해지고 보람을 찾게 되었죠.”

얼마 전에는 30여년 교직에 몸담은 선생님이 ‘아이들이 너무나 힘들다’며 당장 조기 명예퇴직을 하겠다고 그에게 털어놓았다. 권명진 교사는 경기도 뇌교육 교사연구회에 초대했다. “그 선생님은 연구회 교사들과 함께 뇌체조, 명상 등을 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충전하셨죠. 1년 간 더 학교를 다니며 안정적으로 준비하고 명예퇴직을 하셨어요. 아마도 1년 전 힘든 상태에서 퇴직하셨다면 30여 년 자신의 청춘을 바친 교직을 안 좋은 기억으로 끝맺음을 하셨을 거예요. 건강하고 행복하게 교직을 마무리하실 수 있게 도울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권명진 교사는
권명진 교사는 "뇌교육을 학교현장에 접목하여 아이들의 가슴에 뿌리내린 작은 씨앗이 꽃 피우는 과정을 보는 기쁨이 크죠. 이게 바로 교사로서 추구했던 철학과 가치관이란 걸 깨닫게 됩니다."라고 했다. [사진=강나리 기자]

그는 뇌교육을 알게 되어 교육현장에서 실천한 이후 교직선택을 잘했다는 걸 자주 경험한다고 한다. “학기 초에 항상 ‘올해는 이 아이들과 어떻게 행복하게 1년 간 성장해나갈까?’라고 자긍심과 긍지가 솟아납니다.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하고 교류하려면 교사가 건강해야 합니다. 연말쯤이면 학생도 교사도 번 아웃되어 힘들어하는데 늘 웃으며 조회, 종례를 하는 저를 아이들이 좋아해주니 저도 학생들에게 감사하고 보람 있죠.”

권명진 교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3년 전 가르쳤던 학생에게서 편지를 받은 것이다. “편지에 ‘선생님을 정말로 인생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는 게 느껴져요. 진정으로 인생을 즐기고 스스로 사랑하기에 저희에게 그 사랑을 나눠주고 좋은 말씀과 함께 좋은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주시는 것 같아요.’라고 적혀 있었죠.

뇌교육연수 후 지구시민활동을 하면서 이게 바로 ‘교사로서 내가 추구했던 철학과 가치관이었구나.’ 깨닫게 되었죠. 성숙한 그 아이 덕분에 제 자신을 다시 발견하고 앞으로 어떻게 교직생활을 해 나갈지 성장을 위한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권명진 교사와 서울 불암산둘레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가 무척 행복한 교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