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심을 잡으니 주위가 바뀌었어요!”
“내가 중심을 잡으니 주위가 바뀌었어요!”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10.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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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라이프 54편]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된 이숙희 씨

“다른 사람의 선택과 결정에 의해 좌지우지 되지 않고,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 되는 삶을 사는 기쁨은 정말 크죠.”

올해 20년 차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이숙희(44) 씨는 요즘 일상 속에서 감사함과 사랑을 체험한다. 자습시간에 피곤한 학생들에게 자가힐링 건강법인 BHP명상으로 손과 발에서 힐링포인트를 자극해줄 때면 너도 나도 줄을 선다. ‘선생님, 이마와 발에서 땀이 났어요. 머리가 맑아졌어요. 또 해주세요.’라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재잘거리는 학생들을 보면 행복하다.

올해 20년 차 고등학교 교사인 이숙희 씨는 무기력에서 탈출해 활력을 되찾게 된 원동력을 뇌교육명상이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올해 20년 차 고등학교 교사인 이숙희 씨는 무기력에서 탈출해 활력을 되찾게 된 원동력을 뇌교육명상이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지난 8일 경남 창원에서 만난 이숙희 씨는 그가 무기력에서 탈출해 활력을 되찾게 된 원동력을 뇌교육명상이라고 했다. “제가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주고, 삶의 중심을 잡는 감각을 깨워주었죠. 매일 매일 뇌교육명상을 하는 시간이 제게 소중합니다.”

그는 경남 진주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의 2남1녀 중 맏딸이었다. 가난한 살림에 생계에 바쁜 부모님은 자녀교육까지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까지 한글을 떼지 못해 방과 후 친구에게 한글을 배워야 했어요. 학교 숙제가 있어도 집에서 상의할 사람이 없어서 친구들에게 물어가며 공부를 했죠.”

항상 부족함을 느끼던 그는 독학으로 열심히 공부한 덕에 중학교 입학시험에서 전교 상위권의 성적을 거뒀다. 늘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그에게 부모님은 공장에 취직해서 살림을 도우라고 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만 살고 싶지 않았지만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었어요. 잘 노는 성격이 아니다보니 공부밖에 할 게 없었죠. 대학도 남들이 가니까 가고 싶었고, 집 근처로 사범대에 진학했어요.”라며 “어린 시절 사랑을 받고 자란 기억이 별로 없어요. 자신감이 없고 남보다 잘 해야지 보다는 남보다 못하면 안 된다는 마음이었죠.”라고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대학동기였던 남편과 부부교사로 지내던 2년 후 남편은 시댁과 합가를 결정했다. 항상 리드하는 성격인 남편은 본인이 결정할 때가 많아 그 의견에 따라야 했다. 시댁어른들과 함께 하면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시어머니는 매우 꼼꼼한 성격으로 살림살이에 철두철미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젖은 빨래는 그냥 털어 널지 않고, 차곡차곡 개어 손으로 두드려 주름을 펴고 지정된 위치에 널어야 했어요. 살림 규모도 커서 하루는 퇴근하자마자 와서 갈치 한 상자, 조기 한 상자를 다듬어야 했죠.”

숙희 씨는 퇴근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살림을 해야 했고, 자신의 시간을 전혀 가질 수 없었다. “26살 때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제 자신을 돌아본 기억이 새록새록 났어요. 오래전이지만 교육받고 다음날 버스 안에서 길가의 가로수들을 보고, 살아있는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냥 기뻤던 걸 잊을 수가 없었어요.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 답답해서 벽을 치며 힘들어하니까 남편이 명상을 다시 해보라고 허락하더군요.”

이숙희 씨는
이숙희 씨는 "마스터힐러 교육을 통해 제 자신을 이해하게 되면서 시어머니도 좀 더 이해하게 되었죠. 같은 상황도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을 키웠고요."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단월드 신마산센터에서 명상을 다시 시작한 그는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메소드)교육을 받고 변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처음에 제 자신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같은 조의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평가하고 있는 저를 보았어요. 남을 많이 의식하고 제가 자만 속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판단하던 걸 멈추고 제 자신에 몰입하니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곧바로 다음 과정인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고 싶어 남편에게 부탁하니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다. “6개월간 진행되는 과정에서 제 자신에 대한 이해와 통찰이 깊어졌어요. 제 생각과 감정을 깨어있는 감각으로 바라보게 되고, 사람을 포용하는 마음도 배웠습니다. 그리고 2차 교육을 받을 때 첫 아이를 갖는 기쁨도 있었죠.”

마스터힐러교육 이후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아졌다. “훈계하는 시어머니라는 개념이 아니라 편안하게 대할 수 있게 되었죠.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니 시어머니를 좀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시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하나하나가 제게 뾰족한 칼처럼 느껴졌는데 그게 더 이상 제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더군요.

예를 들면 제가 아삭이 고추를 좋아하는데, 시어머니께서 ‘많이 먹지 마라. 한 개만 먹으면 됐다.’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먹는 것조차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서운했죠. 아마도 아삭이 고추 하나면 하루에 필요한 영양소가 충분하니 매운 것을 많이 먹지 말라는 뜻이었을 거예요. 어른을 사랑으로 이해하고 좋은 쪽과 나쁜 쪽 해석이 가능하다면 좋은 쪽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을 키웠죠.” 섭섭함이 사라지자 고부갈등이 해소되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는 출산과 동시에 육아와 직장생활, 집안일 때문에 명상수련을 가지 못했다. “이후로도 크고 작은 갈등이 없지 않았지만 마스터힐러교육에서 체득한 것들이 꾸준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3년 만에 캐나다 명상여행을 갔을 때는 대자연 속에서 마음이 활짝 열리는 경험을 했어요. 함께 간 회원이 요청해서 밤을 새워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저도 모르게 그분의 마음과 아픔이 공명되면서 힐링을 해주었죠. 마스터힐러 교육과정에서 배웠는데, 공감하고 힐링하는 것이 제게 잘 맞는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후 오랫동안 뇌교육명상을 계속 하기 어려웠다.

시아버지가 오랫동안 병환으로 고생했고, 병간호를 하던 시어머니가 급성 암으로 2015년 돌아가셨다. 그 2년 후 시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시부모님 두 분이 동시에 아프실 때가 가장 힘든 시기였죠. 어떻게 이겨냈다고 하기보다 감정 속에서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제가 꾸준히 뇌교육명상 수련을 해서 제 중심이 확고했다면 상황이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숙희 씨는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었죠. 그리고 당시 건강에도 이상이 왔어요. 에너지가 고갈된 것 같이 기력이 없었죠. 40대를 맞았는데 오랫동안 제 몸도, 마음도 돌보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다시 뇌교육명상 수련을 시작하고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그는 바닥에서 튀어오를 준비가 되었다. “제 인생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멈춤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죠. 제게 주어지는 책임 속에서 남들의 기대에 맞추지 못하면 실망할까 두려워서 참고 애를 썼는데 나 자신을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뇌교육 명상전문가로 성장하는 이숙희 씨가 회원 지도를 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뇌교육 명상전문가로 성장하는 이숙희 씨가 회원 지도를 하는 모습. [사진=본인 제공]

올해 초 3월부터 6개월간 남은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이숙희 씨는 매일 뇌교육명상으로 충전하고 뇌교육 전문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밟았다. “심성과 PBM, 마스터힐러교육에서 배운 것들이 일상 속에서 제 것으로 만들어지더군요. 그 교육들이 도약할 계기를 만들어주었다면, 매일 매일의 수련이 제가 제 인생의 중심을 잡을 수 있게 했죠. 그 기간 동안 잃어버렸던 육체의 건강을 찾았고 의존했던 것에서 독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뇌교육에서는 ‘내가 중심을 잡으면 주위가 바뀐다.’고 합니다. 제가 내면의 힘이 생기고 중심이 서니 정말 주위가 바뀌더군요. 남편이 예전처럼 제 일정을 확인도 하지 않고 가족여행계획을 발표했을 때, 용기를 내서 제가 일정이 있고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의견을 존중해주길 원한다고 분명하게 표현했습니다. 그 후로 남편은 항상 의견을 묻고 존중해주더군요. 이제는 제 꿈을 이야기할 수도 있게 되었어요.”

이숙희 씨는 힐링 트레이너의 꿈을 키우고 있다. “얼마 전 제주에서 BHP봉사단 교육을 받았어요. 그때 68세인 김대규 회장(제주시국학기공협회)께서 BHP봉사를 통해 제주지역을 장생마을로 만드는 일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추진하는 심정을 이야기하셨죠. 저도 모르게 가슴이 뜨거워졌고 오랫동안 잊고 있던 꿈이 되살아났습니다. 저는 학교에 뇌교육과 국학기공을 보급해서 학생들에게 건강과 함께 인성을 키우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힐링 전문가로서 제가 사는 마산을 건강하게 만드는 데 제 몫을 다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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