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마음에 홍익을 심어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아이들 마음에 홍익을 심어줄 수 있어 행복합니다”
  • 신미조 기자
  • mjshin05@naver.com
  • 승인 2018.05.23 09: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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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주 감포중, 감포고 학교스포츠클럽 담당 전준식 교사

2007년에 해피스쿨 뇌교육 강의 때마다 등장하는 사진이 있었다. 남학생들이 단체로 물구나무를 서서 학교 교정을 걸어가는 사진이었다. 학생들이 점심 먹으러 식당으로 가는 중이라는 사진 설명이 있었다. 뇌교육 프로그램 중 하나인 HSP12단을 통해 학교폭력과 결석을 없애고 학업성취도를 높인 경북의성공고의 사례였다. 당시 의성공고의 기적을 만든 선생님이 전준식 교사다. 요즘은 감포 바닷가에 있는 작은 학교에서 갈매기를 닮은 꿈 많은 학생들과 행복한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는 전준식 선생님을 만났다.

▶ 선생님은 교육자로서 의미 있는 도전을 많이 하신 분이세요.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의성공고 학생들의 물구나무서서 걷는 모습이 제 눈에 선하네요.

저도 그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때 제가 처음으로 전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하게 되었어요. 당시 그 학교는 대도시의 변두리 학교로서 학생들의 빈번한 일탈행동들과 무기력한 학습 의욕으로 생활지도 및 전반적인 교육활동에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저도 그때가 교사로서 최대 위기라고 느꼈고 제 능력을 의심했습니다.

전준식 교사는 경주 감포중학교 감포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국학기공을 지도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전준식 교사는 경주 감포중학교 감포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국학기공을 지도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선생님은 어떻게 학생들과 소통하고 변화를 이끌어 내셨나요?

저는 당시에 뇌교육을 배우고 연구하고 있었고, 학교에는 적용하지는 못한 단계였어요. 마침 교장 선생님이 뇌교육 연수를 받고 오셔서 같이 한번 학교를 바꾸어 보자고 의지를 내셨어요. 그래서 뇌교육 프로그램 가운데 푸시업부터 물구나무서서 걷기를 12단계의 과정으로 만든 HSP12단을 도입했습니다. 제가 체육교사니까 충분히 지도할 수 있었고요.

학생들이 푸시업을 서로 경쟁적으로 했어요. 푸시업을 하면 막힌 가슴이 열리고, 자세가 바르게 되었어요. 당연히 팔다리와 허리의 힘이 좋아지고요. 학생들이 학교에 와서 집중해서 할 일이 생기니까 시비도 줄어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물구나무서고, 물구나무를 서서 걷기까지의 과정은 혼자서는 할 수 없어요. 서로 다리도 잡아주어야 하고, 넘어질 때 안전하도록 보조도 해 주어야 하고요.

자연스럽게 서로 스킨십이 되고 친해졌어요. 도움을 주고받으니까 서로 필요한 존재가 되고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고요. 힘쓸 곳이 생기니까 힘자랑하는 싸움은 안 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들은 6개월이면 물구나무서서 걷습니다. 아이들은 유연해서 한 학생이 걸으면 그 다음 날에 몇 명이 또 걷고 금방 확산이 돼요. 6개월 만에 학교에서 폭력이 사라지고 평화가 왔어요. 그게 소문이 나서 신문에도 나고, 방송국에서 연락도 오고요. 학생들도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커지고 스스로 자신감도 커졌습니다.

전준식 교사는 국학기공이나 뇌교육을 활용해서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꿈을 찾고 성장하도록 지켜보고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전준식 교사는 국학기공이나 뇌교육을 활용해서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꿈을 찾고 성장하도록 지켜보고 도와주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 선생님이 학생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깊으신 것 같습니다.

정말 학생들을 살려보고 싶다는 마음뿐이었어요. 학생들이 자신이 변하는 걸 스스로 느낄 때 가장 기뻤습니다. 학생들이 졸업하면서 돈을 모아서 양복 선물을 해 주더군요. 선생님 덕분에 사회에 나가서 잘 살 수 있는 큰 힘을 얻었다고요. 학생들의 인생에도, 교사로서의 제 인생에도 가장 큰 위기가 오히려 함께 성장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제게 깨달음의 기회를 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 속에 순수하고 밝은 본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잘못된 교육제도와 어른들의 편견과 강요로 어두워지고 삐뚤어지기도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 안에 있는 소중한 것을 발견하면 누구나 다시 밝아지고 환해집니다.

▶ 교사로서 홍익인간의 교육이념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홍익인간의 개념을 관념적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교육현장에 있으면서도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명상수련을 하고, 뇌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60시간 연수를 받았습니다. 그때 “홍익인간이 이런 거구나!” 하는 교육적인 개념을 마음으로 크게 느꼈어요. 어떤 위대함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자기 성찰의 개념을 가지고 보니까, 홍익인간 교육이념의 가치가 크게 다가왔어요. 내가 터득하고 배운 것을 더 키워서 전체를 위해서 쓴다는 것이 홍익이라고 느꼈어요. 전체와 공익을 위해서 자신의 가치와 쓰임을 크게 하는 것이 사람의 마땅한 도리이고,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추구해야 할 가치이고요.

▶ 30여 년 교직 생활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세요.

저도 어려서 시골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농사를 지으셨어요. 가난해서 열심히 공부해야만 대학에 갈 수 있었고요. 당시 시골에서는 고등학생 10명 중에 두어 명 대학을 가던 때였으니까요. 상대적으로 학비가 싼 국립대학교 사범대학을 목표로 했어요. 대학 졸업 후 31년을 교직에 있었습니다. 첫 부임 학교가 포항에 있는 중학교였고요. 지금 감포중학교가 8번째 학교입니다.

전준식 교사가 지도한 경북 의성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정에서 물구나무서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전준식 교사]
전준식 교사가 지도한 경북 의성공업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정에서 물구나무서기 시범을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전준식 교사]

 

처음 부임했던 포항 대도중학교와 가장 많은 변화를 경험했던 의성공고가 크게 기억에 남습니다. 첫 학교는 교사로서 첫발을 내디딘 거니까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2년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모든 순간순간이 즐거웠어요. 아이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던 시간입니다. 그 다음에 의성공고는 교사로서 정체성이 조금 생겼을 때 큰 부딪힘을 통해서 성장했던 곳입니다. 아이들과의 적응과정에서 힘들었지만 조금씩 소통하면서 교사로서 성장했던 학교였던 것 같습니다. 교사로서 밥값은 좀 하지 않았나 하는 뿌듯함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 학생들도 많이 달라졌지요?

학생들이 많이 변했다고 하는데, 교사의 눈에는 항상 사례에 따라 보여요. 교사가 항상 멘토의 자세로 학생을 대하고 상황을 잘 극복하면 창조가 일어나지요. 과거에는 인간적인 측면이 강했고, 학생들의 교사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컸으니까 이끌기가 좀 편했다고 할까요. 근데 요즘 학생들은 요구가 섬세해지고 학부모들도 그렇습니다. 교사의 권위는 예전보다 떨어졌지만, 교사의 책무는 더 막중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사가 변해야 하고, 교사가 현재의 요구에 따라 변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에게 학생들은 존중해야 할 대상입니다. 젊은 교사 시절에는 자신감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더 구체적으로 섬세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제가 가진 어떤 틀로 아이들을 다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요. 인격체로서 존중의 대상으로 섬세하고 지켜보고 기다리면서 경외의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30년 경력의 교사이지만 지금이 더 어렵습니다. 어쩌면 제가 이제 어른이 되어서 가치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피는 꽃마다 아름답습니다.

전준식 교사가 지도하는 감포중학교 감포고등학교 국학기공팀은 지난해 10월  전국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대회에 나가서 고등학교는 전국 1위, 중학교는 전국 3위의 실적을 올렸다. [사진=코리안스피릿 자료사진]
전준식 교사가 지도하는 감포중학교 감포고등학교 국학기공팀은 지난해 10월 전국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대회에 나가서 고등학교는 전국 1위, 중학교는 전국 3위의 실적을 올렸다. [사진=코리안스피릿 자료사진]

 

▶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은 언제부터 도입하셨습니까?

감포중학교로 오기 전에 경주 시내에 있는 화랑중학교에서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을 도입해서 했어요. 방과 후 활동으로 했는데, 학교에 적응하기 좀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모아서 했어요. 처음에 아이들과 연습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는데, 전국대회를 준비하고 참가하면서 하나가 되었고, 아이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이 상당히 커졌던 것 같습니다. 그 학교를 떠나온 지 4년이 지났는데도 학생들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감포중‧고등학교에서 학교스포츠클럽 국학기공을 실시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교생이 400명인 학교에서 40명인 학교로 오니까 학생들이 품 안에 쏙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하늘이 준 기회 같았죠. 학생들도 잘 따라와 주었어요. 첫해는 중학교만 했고 그다음 해 고등학교에서 시작했어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교문을 같이 씁니다.

작은 학교라 학업이라는 면에서는 조금 의기소침할 수 있지만, 국학기공을 통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습니다. 국학기공의 동작을 연습하면서 목표를 갖고 한 동작 한 동작을 익히고 그것을 친구들에게도 전달하면서 아이들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목표를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3년째 학교폭력이 한 건도 없는 ‘클린학교’입니다. 선후배 모두 소통하고 서로 공감하는데 국학기공이 도움이 되었어요.

▶ 학생들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겠네요.

2016년과 2017년에 고등학교는 전국국학기공대회 고등부 금상을 받았고, 중학교는 중등부 동상을 받았습니다. 전교생 40명씩의 작은 중학교, 고등학교가 전국대회에 나가서 수상하니까 소문이 나고 동네에 현수막이 걸렸어요. 경주장학회 우수스포츠 장학생으로 2016년에 3명, 2017년에 1명이 선발되었어요. 어떤 분들은 체육중학교, 체육고등학교냐고 물어보는 분도 있었어요. 대회 수상을 계기로 교육청 행사에서 초청을 받아 시범공연을 했습니다. 애국가 리메이크곡에 맞추어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나라사랑 기공을 했는데, 보는 분들이 다 감동하셨어요. 청소년들이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기공으로 표현하니까 마음이 뿌듯하고 대견하셨던 것 같습니다.

국학기공에는 정신이 들어있습니다. 그냥 무예나 체조가 아니라, 한민족의 홍익정신과 기상을 펼쳐 나와 민족과 인류를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있어요. 학생들이 기공 수련을 통해 절로 그 정신을 체율체득하는 것 같습니다. 국학기공은 전체를 하나로 모으는 가치가 들어가 있습니다.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 아이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면 정말 자존감이 커지고,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인생의 진로를 고민하는 고등학생들에게 그 효과는 대단합니다.

▶ 앞으로 교사로서 꿈이 있다면?

처음 10년 차까지는 교사가 좋고, 나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 두문불출 열심히 뛰었던 것 같아요. 교사로서 나를 알리고 포장하는 10년이었던 느낌입니다. 그러다 지친 몸과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명상수련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뇌교육으로, 교사로서의 나와 연결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 20년은 뇌교육을 하면서 가치를 창조하는 시간이었어요. 전체를 위해서 헌신하는 때를 보냈어요. 교육의 방향이 좋아지고 교육의 가치가 커지고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 헌신한 시간이었어요. 그래서 학교를 옮길 때도 제 가슴 속에 있는 홍익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학교를 원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교사로서 마무리를 잘 하고 싶어요. 아이들과 소통하고, 교육의 가치를 알리고, 교사로서 자랑스럽게 활동하다가 떳떳하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앞으로 남은 교사로서의 시간 동안에도 홍익의 가치, 홍익교육의 가치를 중심으로 아이들을 잘 바라보고 싶어요. 그 가치를 물 흐르듯이 제대로 아이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어요. 국학기공이나 뇌교육을 활용해서 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꿈을 찾고 성장하도록 지켜보고 도와주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그 가치를 위해 도전하는 교사가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진정한 홍익교사로서 기억되고 싶습니다.

▶ 몇 년 후면 퇴직하시고 인생 후반기에 접어드실 텐데요. 후반기의 인생계획은 있으세요?

‘나는 120살까지 살기로 했다’ 책을 여러 번 읽었고 내용에 공감이 컸어요. 제가 인생 후반기를 선택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제 마음속에서 그 준비가 서서히 되는 것 같습니다. 30년을 교사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 시간이었다면, 교사로서의 30년은 뇌교육을 만나 교사로서의 자존감을 마음에 품고 살 수 있었습니다. 이제 퇴직 후에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에 가서 교육 봉사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홍익정신과 뇌교육으로 그곳 아이들에게 인성 회복과 창의성을 함양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교육자로서 초심으로 돌아가 제 인생의 2막을 여는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건강해야 하겠지요. 건강하게 자신을 단련하면서 꿈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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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곤 2018-06-07 21:49:34
항상 매사에 긍정적으로 학생들과 함께 하시는 선생님은 홍익교사의 표상이십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