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도선 동지

나는 신문 1장을 사서 읽었어. ‘이토오 공이 12일 밤 11시에 장춘을 출발하여 13일 아침에 하얼빈에 도착한다’는 기사가 났더군. 나는 하얼빈과 장춘 2곳 중에서 어디가 거사하기에 성공률이 높을 것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아야 하였지. 실수를 하면 아니 되었기 때문에 우덕순의 의견이 필요하였지.

“우 동지, 거사지가 하얼빈과 장춘 2곳 중에서 어디가 좋겠소?”
“글쎄요... 경계야 다 삼엄하겠지요.”
“내가 하얼빈을 맡고 우 동지가 장춘을 맡는 것이 좋겠소. 우 동지가 실패하면 내가 성공하도록 해야지요.”
“그렇게 합시다.”
 
우덕순이 동의하였어. 나는 하얼빈이 장춘보다 거사하기에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게 하려면 상등 칸에 타야하니까 비용이 증가하지. 비용이 모자라기 때문에 어디에선가 또 꾸어야 하였어. 그런데 돈을 꿀 수 있는 사람이 김백성 밖에 없었어. 
 
“돈을 빌려와야 하겠다. 김백성 씨에게 가서 50원만 빌려와라.”
 
나는 유동하에게 말했지. 
 
“언제 갚으시려고요?”   
“곧 갚아 준다고 해.”
“갚을 돈을 어떻게 마련하지요?”
“너도 알지 않느냐?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이강 씨에게 편지를 보내겠다.”
 
이강은 대동공보의 주필이었어.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었어. 
 
“그러면 편지를 쓰세요.”
 
그러나 나는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 돈을 빌려달라고 해 보았자 빌려줄 리가 없었고, 미친 짓이라고 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야. 그러나 나는 유동하가 원하므로 편지를 쓰기 시작하였어. 그러나 유동하가 읽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 담겨 있었지. 
 
▲ 이등박문은 대련大連에서 기선을 하선下船하여 열차를 타고 합이빈哈尒濱에 와서 하차下車하도록 일정이 잡혀 있었다. 하차시간이 1909년 음력 9월 13일(양력 10월 26일) 09시 30분이었다.
 
“돈 50원만 보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여비가 모자라서 그럽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다음부터 무슨 뜻인지 내용이 알쏭달쏭하였지. 
 
“이가伊哥가 이달 12일 관성자발 특별열차를 타고 오후 11시에 하얼빈에 도착합니다. 동생 등은 조도선과 가족을 마중하러 관성자로 간다고 했으나, 관성자에서 10여리 떨어진 앞쪽 모 정거장에서 기다렸다가 일을 결행할 생각입니다. 일의 성공 여부는 하늘에 있으니, 다행히 동포의 착한 기도를 순응하여 도움을 받을 것을 복망합니다. 금일 오전 9시 발 열차로 남쪽으로 갑니다. 근간에 포브라치니야를 떠나서 이곳에 도착했습니다. 향후의 일은 본사에 통지하겠습니다. 대한독립만세 안중근 날인 우덕순 날인 ”
 
- 이러한 편지는 유동하가 읽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었고, 내가 한문으로 썼기 때문에, 한문은 모르고 러시아말만 아는 유동하는 그 내용을 읽을 수 없었지. 
 
이 편지는 후일에 검사나 판사가 보았을 때, 이강이 이 거사에 가담했다고 의심할 내용이 되지 않을 수 없었어. 나는 편지에 날인하였고, 우덕순에게도 날인을 하라고 하였지, 우덕순은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도장을 내게 주어 내가 날인하였지. 고마운 일이었어. 유동하는 돈을 꾸러 김백성의 집으로 갔지. 그러나 김백성은 집에 없었어. 나는 돈 꾸는 일을 포기하였어. 또 하나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지. 유동하가 떠나면 통역으로 쓸 사람이 필요  하였어. 생각해 보니, 조도선曺道先이라는 사람이 머리에 떠오르더군. 
 
조도선은 정대호와도 아는 사이였어. 조도선은 함경도 태생으로 나이는 36세, 러시아 여자와 4년 전에 결혼하여 살고 있었지. 15년 동안 광부와 통역으로 일하면서 야쿠츠크, 이루크추크, 블라디보스토크를 전전하다가 8월에 하얼빈에 와서 세탁업을 하려고 가게를 물색 중이었어. 지난 7월이었어. 나는 포브라니치아의 유동하의 집에서 조도선을 만났지. 나는 조도선을 만나기 전에, 일본인으로 변장하기 위하여 이발하였어. 물론 우덕순도 이발을 시켜 주었지.  
 
다음에 양복을 사 입었어. 청색 신사복이었어. 무늬는 없었고, 달린 단추가 2줄이었어. 변장을 하고 나니 일인처럼 보였어. 
 
“어떠냐? 일본사람 같으냐?”
 
내가 유동하에게 물어보았지. 
 
“일본사람 같군요.”
 
유동하가 그렇게 보니 다행이었지.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