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년대 하얼빈시 신시가지

나는 이곳에서 안창남 비행사를 역사무대에서 퇴장시키기로 하였다. 갑자기 비행기가 추락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비행기가 떨어지는 이유는 엔진이 고장 났거나 기름이 떨어졌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나는 기름이 떨어졌다고 상상하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게야?”
 
갑자기 내가 멍청하게 서있으니까 안중근 의사가 물었다.
 
“우리가 타고온 비행기가 추락했습니다.”
“어디에?”
“저 앞에 보세요.”
 
나는 밭의 한 가운데를 손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타고 오 비행기가 날개를 열십자로 펴고 머리가 밭에 꽂혀 있었다. 
 
“누가 타고 있는지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내가 기절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밭으로 뛰어갔다. 과연 예상했던 대로 조종석 뒷자리와 옆자리에 안중근 의사와 내가 앉아있는데 기절한 상태로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 혼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영계에서 보낸 우두나찰과 마두나찰이 나를 잡으러 와서 조종석 밖에 대기하고 있었다. 
 
“너무나 끈질긴 인연이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행기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밖으로 나오자 비행기가 흐물흐물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이번엔 무슨 죄를 지었기에 또 잡아갑니까?”
 
나는 나찰들에게 항의하였어.
 
“너, 말대가리를 에이스 하러 갔었나?” 
“아베에게 씌어준 말머리 말입니까?”
“그렇다.”
“한번 씌어주었으면 되었지 그걸 어떻게 에이스를 합니까.”
 
나는 불평하였다. 마누나찰이 보여주는 동영상을 보니, 아베가 말머리를 목에 걸고 있었다. 말머리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수상 의자에 앉아 있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섰다,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분위기가 산만하기 짝이 없었다. 
 
“저 말대가리를 다시 제대로 씌어주고 와. 그렇지 않으면 며칠 후에 저 꼴로 미국 의회의사당에 가서 힝힝거리며 말울음소리를 내게 될 것이다. 말울음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면 너의 나라엔 재앙이 될 것이다. 아베를 위해서도 일본을 위해서도 제대로 씌어 주어야 해.”
 
 생각해 보니 수상관저에 제대로 들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아마 지난번에 내게 뚫렸음으로 철저하게 지키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없습니다.”
“혼자서 자신이 없다면 이등을 붙여 주겠다. 이등의 묘지에 가면 이등을 데려갈 수 있을 것이다. 이등이 가면 아베가 이등의 말을 듣게될 것이다. 이번엔 제대로 씌워주도록 해.” 
“이등이라면 제가 도와야 일이 성사될 것입니다.”
 
▲ 이등박문의 묘소. 품천구서대정역(品川区西大井6-10-18)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있다(JR西大井駅より徒歩3分)
 
안중근 의사가 말했다.
 
“아무래도 비행기가 필요하겠군요.”
 
안창남 비행사가 말했다. 안창남 비행사가 말하자 흐물흐물 사라졌던 비행기가 홀로그램으로 다시 나타났다. 
 
“탑시다. 내가 이등의 묘 안으로 날아가겠소.”
 
안창남 비행사가 자신 있게 말하였다. 우리는 비행기에 타고 이등이 묻혀 있는 묘소로 날아갔다. 묘소는 굳게 잠겨 있었지만 비행기는 묘소 안으로 벽을 통과하듯이 들어가서 안착하였다.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등은 나오시오.”
 
안중근 의사가 묘를 향하여 말했다. 귀신들에게는 자기를 죽인 자를 무서워한다는 법칙이 있었다. 그래서 이등은 무수한 한국 사람을 죽였지만 그를 죽인 안중근 의사에게만은 꼼짝할 수 없었다. 이등의 혼백이 무덤 밖으로 나왔다. 
 
“이등 공이 일본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막강하니, 일본사람들을 위하여 해 주어야 할 일이 하나 있소.”
 
안중근 의사가 말하였다.
 
“말하시오.”
 
안중근 의사는 아베가 벗은 말머리를 도로 씌어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아베가 무슨 이유로 말머리를 쓰고 있습니까?”
 
이등이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나라의 재상이 된 자로서 세상을 향하여 거짓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이 내게 명령하여 내가 직접 수상관저에 가서 씌어준 말머리요.”
 
내가 말하였다.
 
“수상이 어찌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이등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믿을 수 없다는 투였다. 나는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아베가 일본 정부가 강제로 동원한 위안부는 없다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이 아시아를 발전시켰다고도 하였다.
 
“음, 명연설이군. 이 연설은 어디에서 한 연설이요?”
 
이등이 물었다.
 
“장차 미국의회에 가서 아베가 할 연설의 일부요.”
“장차요?”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수상이 미국에 가서 할 연설을 이등 공이 듣고 있는 것이요.”
 
안중근 의사가 말하였다.
 
“잘 알았습니다. 내가 아베에게 가서 말머리를 다시 씌어주고 오겠습니다.”
 
이등이 말하였다. 비좁긴 했지만 우리는 4사람이 경비행기의 조종실에 탔다. 경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경비행기가 수상관저의 마당에 불시착하듯이 내렸다. 
 
“내가 아베와 담판을 짓고 오겠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기다리십시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