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등이 말하였다. 우리는 이등이 하자는 대로 경비행기 안에서 기다리기로 하였다. 이등이 경비행기에서 내려 관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중계방송을 보듯이 관저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이등이 현관으로 들어가도 아무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등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아베(安部)”
 
이등이 아베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베가 거실을 나가 응접실로 가는 것 같았다. 나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안중근의 안, 안창남의 안, 아베의 안... 모두 다 안씨 종친들이 모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연奇緣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베는 이등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나는 실황중계를 확실이 보고 듣기 위하여 공중 모니터의 볼륨을 높였다. 정확한 목소리가 들였다. 
 
▲ 단독회담
 
“말머리가 무겁지 않은가? 그렇게 목에 달고 다니면 목 디스크가 올 걸세.”
“그렇습니까?”
“말머리를 안중근이라는 자가 수상에게 씌어주고 갔다며?”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자가 내게 와서 말해서 알고 있지.” 
“그자는 죽은 자가 아닙니까?”
“아닐세. 대한국의 마지막 후예임을 자처하는 아주 골치 아픈 자일세.”
“그렇다면 죽은 자입니다.”
“아니, 두 눈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자야. 안중근의 역사를 소설로 쓰겠다고 여기저기 들쑤시며 다니지. 몸조심하게. 수상에게 무슨 악담을 퍼부을지 모르니.”
“그런데 초대 수상님께서 무슨 일로 아베를 찾아오셨습니까?”
“충고를 하나 하러 왔네.”
“충고요?”
“이번에 미국 의회에 가서 연설을 한다며?”
“그렇습니다만.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자가 내게 와서 협박했네.”
“협박을요?”
“자기가 씌어준 말머리를 똑바로 쓰지 않으면 악담을 퍼붓겠다는 것이야.”
“하라고 하지요. 아베는 한국 사람에게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그런 협박에는 꿈쩍하지 않습니다.”
“과연 수상답군. 그런데 말일세.”
“뭡니까?”
“자네가 유사 이래 아무리 명연설을 한다고 해도 그 명연설이 힝힝힝 하는 말울음소리로만 들리면 어쩌겠나?”
“설마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닐세. 그 말머리는 마두나찰이라는 우주의 사법집행관이 쓰는 관모일세. 인간이 그 모자를 쓰면 말울음 소리 이외에 아무 소리도 낼 수 없다는 것이야. 이건 확실한 정보이니 심사숙고 하게.”
“알겠습니다.”
“나는 가네.”
 
이등이 아베와 작별하고 경비행기가 있는 곳으로 왔다. 
 
“이등 공 수고 하셨소.”
 
안중근 의사가 말했다. 공중 모니터를 열심히 보고 있으려니, 말머리를 바로 쓰는 아베가 보였다.
 
“아베가 말머리를 바로 썼습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환상이 끝날 때를 기다리며 쭈그려 앉아 있었다. 드디어 환상이 끝났다. 나는 일어섰다. 정상적인 업무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