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
거사
  • 노중평 작가
  • culture@ikoreanspirit.com
  • 승인 2016.03.07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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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들의 회의 8편
▲ 우덕순 동지. 안중근 의사와 함께 이등박문을 저격하려 하였다.

“나는 이등이 오는 것이 사실인가 확인하기 위하여 신문사로 이강李剛이라는 사람을 찾아갔네. 그러나 그 사람이 자리에 없어서 그냥 나오고 말았어. 나는 이등이 나타나면 거사를 해야 하겠다고 결심했어, 지금이야말로 절호의 기회가 아닌가. 거사를 하려면 비용으로 쓸 돈이 필요했어, 내 주머니엔 친구로부터 변통한 여비 30여원과 권총 1정이 있었어.”

권총은 부로우닝 8연발로 탄환에 +형상이 그어져 있지. 윤치종尹致宗 동지가 제일은행권 40원을 주고 사서 5월경에 회령에서 준 것이야. 당시에 나는 중국인 복장을 하고, 신발은 구두를 신었고, 넓적한 모자를 쓰고 있었지. 이러한 복장으로 러시아 인을 속이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일본인으로 보이기 위하여 일본사람들이 입는 옷을 사 입어야 하였지. 이것저것 생각해 보아도 비용이 너무나 부족했어. 하얼빈으로 가야 할 기차표 값, 의복 값, 음식비 등... 돈을 얻을 상대를 생각해 보았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지.  
 
마침 황해도 의병대장인 이석산(李錫山, 李剛山)이 1주일 전에 블라디보스토크에 와 있었어. 그는 나보다 나이가 연상으로 34세 정도 되는 사람이야. 얼굴
이 예쁘장한데, 키는 나와 비슷했고, 수염을 기르고 있었어. 나는 그가 도착했을 때 만났어.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자, 한인들의 실태를 파악하러 왔다고 하더군. 나는 그를 찾아갔어. 그는 밥을 파는 한인 집에서 머물고 있었지. 그가 숨어 다니는 몸이라 그곳에 머물고 있었어. 그 집은 나도 밥을 먹은 집이었어. 내가 묵고 있는 여관에서 400보쯤 떨어진 거리에 있었지. 이석산은 마침 행장을 꾸려가지고 다른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어. 
 
“이유를 묻지 마시고 급히 쓸 데가 있으니 100원만 꾸어 주시오.”   
 
내가 말했지.
 
“내게 무슨 돈이 있다고 꾸어 달라는 것이요?”
 
이석산은 냉정히 거절했어. 나는 권총을 꺼내 들고,
 
“돈을 꾸어주지 않는다면 공을 쏘고 나도 죽겠소.”
 
진짜 쏠 것처럼 하였어. 이석산은 날강도를 만났다고 생각하며 마지못해 돈 100원을 넘겨주었지. 러시아 화폐로 25원짜리 지폐 2장, 10원짜리 지폐, 1원짜리 지폐와 은화 약간이었어. 나는 일이 반이나 이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네. 내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귄 사람으로 우덕순禹德淳(連俊)이 있었네. 충청도 출신으로 경성에서 성장했고, 천자문과 동몽선습 등을 읽었어. 그는 제대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들은 풍월로 상식이 많은 사람이었지. 결혼을 했으나 소생이 없었어. 그는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수찬에 가서 살고 있었어. 
나는 이 고장에 살고 있는 한인들 중에서 상식과 기개와 의협심이 그를 따를 자가 없다고 생각하였네. 믿을만한 사람이었어. 
 
그는 박근식朴根植의 집에 머물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엽연초를 팔았지. 그렇게 장사하는 것이 그의 생계수단이었어. 그 외에 대동공보사의 신문대금 집금계集金係의 일을 맡아 보았지. 그는 하얼빈 사건이 나면서 대동공보사에서 해고당했어. 
 
나는 그를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되어, 서로 뜻이 맞았네. 이번에 내가 나의 생각을 그에게 말한다면 따라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나는 이석산에게서 돈을 빌린 후에 일단 숙소로 돌아왔다가 우덕순이 묵고 있는 고준문高俊文이라는 사람의 집으로 갔지. 우덕순은 집에 있었어. 
 
“우 동지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내 집으로 갑시다.”
 
내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지.
 
“무슨 일입니까?”
 
우덕순이 나를 만난 이후에, 내가 웃는 얼굴을 보지 못하다가 웃는 얼굴을 보게 됨으로 의아해하며 물었지. 
 
“하여간 좋은 일이 있으니 어서 집으로 갑시다.”
 
그는 나를 따라 나섰네.
 
“가족이 도착했소?”
 
우덕순은 내 처자가 온 것이 아닌가 싶어서 물었지. 내가 엥치우를 떠나서 블라디보스토크에 온 것이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가족이 오는 것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요.”
“그렇소?”
 
날이 저물어 어두운 후였지. 시간은 8시경이었어. 나는 그를 데리고 내 집으로 들어갔어. 
 
“우형은 이등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소?”
“들었습니다. 그건 왜 묻습니까?”
“내가 이등과 관련하여 우형에게 비밀리에 할 이야기가 있소.”
 
내가 하는 말에 우덕순은 놀라는 기색을 보였어. 우덕순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를 채었지. 
 
“결국...”
“이번에 그자가 하얼빈에 오니 급히 할 일이 생겼소.”
“할 일이 무엇이요?”
“나는 그를 살해할 작정인데 우형의 생각은 어떻소?”
“그런 자는 대한의 2천만 국민이라면 누가 죽이든 죽여야 합니다.”
 
우덕순은 서슴지 않고 말했어. 
 
“우리 함께 일을 하지 않겠소? 내가 평소에 우형을 대하여 보니, 강개심慷慨心이 있음을 알게 되었소. 이번에 나라를 위하여 진충盡忠합시다. 이러한 기회는 다시 오지 않소.”
“그렇게 합시다.”
 
우덕순은 주저하지 않고 승낙했어. 
 
“우리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하면 일은 반드시 성사될 것이요. 하늘의 뜻이 우리에게 있음을 나는 믿소.”
“그런데 내게 한 가지... 여비가 없어서 걱정이요.”
 
우덕순은 내가 빈털터리임을 잘 알고 있었지. 자기도 담배 행상으로 입에 풀칠이나 하고 있으니, 나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걱정할 것 없소. 여비는 내게 충분히 있소.”
 
내가 안심시켰지. 
 
“동지가 돈 없는 떠돌이라는 것을 내가 잘 아는데.”
“내가 다 준비했소.”
“그렇다면 다행이요.”
 
우리는 정거장으로 갔지. 그러나 하얼빈으로 가는 열차는 없었어. 
 
“오늘은 글렀소. 내일 출발합시다.”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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