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7일 아침 9시.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핵실험을 네 차례나 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성공한 것이다, 그에 대항하여 우리 정부가 개성공단 운용을 중단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필자는 러시아 모스코바 대학에서 그곳 고려인들과 만나 한국사와 우리 민족의 장래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로 되어 있었으니 걱정이 태산 같은 것이다. 한마디로 할 말을 잃었다는 기분이었다. 잔뜩 좋은 소식을 알리려고 원고를 써놓았는데 이 미사일 사건으로 발표하기 어려운 내용이 되고 말았다. 역사에 이미 여러 차례 속아온 세대이므로 아까짓것 가지고 놀랄 일이 아니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역사란 항상 일회적이 아니라 반복되는 것이 많다. 신문을 뒤적거려 보고 TV 채널을 돌려 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정치학을 공부했다는 사람들의 말은 어제 오늘의 일과 내일의 일은 알아도 그저께 일과 모레 일을 모른다. 그러니 그들이 지껄이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거짓말이다. 조금도 도움이 안 될 수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일본의 NHK 방송을 틀어보니 1945년 일본이 패전하였을 때 이야기가 나왔다. 어제까지 신으로 모셨던 일왕(천황)이 보통 인간으로 격하당한 이야기이다. 필자는 “바로 이거다!” 이 프로를 김정은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제는 오랫동안 국민에게 천황이 신이니 그를 위해 죽어라. 목숨을 바치라 했었다. 오늘의 IS 원조다. 그러나 미국과의 전쟁에 져 일왕이 전쟁의 책임을 지고 죽게 되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일본인들로서는 신이 죽는다는 것이니 큰 문제였다. 매일 집안에 모시고 절하는 신이 죽는다는 것이니 어떻게 하여야 좋을까. 천황을 살리는 것이 일본을 살리는 길이다. 그러자면 천황이 맥아더를 찾아가서 빌어야 한다. “나는 신이 아니요 인간이라.” 실토하게 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그런 말을 천황에게 가서 할 것인가? 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문제와 같은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 누군지 모르지만 천황에게 가서 말했다. 그래서 천황이 맥아더 장군을 찾아가서 “인간선언을 할 터이니 나를 살려 주시오”라고 빌었다. 맥아더는 “오케이! 그럽시다” 하고 쾌히 응낙했다. 일본은 물론 미국으로서도 다행한 일이었다. 일본은 그 뒤 천황과 함께 살아났다. 일본은 미국이 시키는 대로 모든 교과서에서 황국사관과 관련된 구절을 먹으로 검게 칠해서 지웠다. 때마침 한국에 6.25 전쟁이 터져 미국이 일본에 군수물자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하게 되었다. 이렇게 천황의 인간선언을 전화위복(轉禍爲福: 화가 오히려 복이 됨), 아니 천우신조(天佑神助:하늘과 신령의 도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적이 한국에서도 다시 일어난다는 보장은 절대 없다.
 
지난 2월 7일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나서 여러 매체에 나온 김정은의 얼굴을 보니 한결 같이 활짝 웃고 있었다. 김정은이 과연 웃어야 할 때인가. 김정은의 속은 포항제철의 불가마처럼 뜨겁게 타고 있을 것이니 얼굴을 찡그러야 한다. 그는 지난 4년간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을 포함한 100명이 넘는 온건파 세력을 기관총으로 쏘아 죽였다. 이미 남북은 70년이 넘는 전쟁을 하고 있다. 그러기에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했던 북한이 새삼 선전포고를 한다고 해서 놀랄 사람이 없다.
 
유엔은 물론 세계 여러 나라가 북한의 전쟁 도발 행위와 반인권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여야는 그런 국제사회의 공통된 여론을 모른 척하고 반정부 언론의 음악을 틀고 있을 것이다. 만일 이번 일로 인해 동북아에 전쟁이 나서 북한이 패전국이 된다면 전쟁 책임은 당연히 김정은 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그런 의미에서도 네 차례에 걸친 핵 실험을 한 것과 거기다 더해서 미사일 발사에 도장을 찍는 사진까지 공개했으니 책임자는 반드시 수갑을 차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동서냉전이 끝나지 않았던 1980년 동유럽의 공산주의 국가 루마니아(수도 부카레스트)에 가서 세계역사학자대회에 참석했다. 그때 집권자는 유명한 공산 독재자 차우세스크였다. 차우세스크는 북한의 김일성과 같이 소련의 위성국가 괴뢰정권을 맡아 온갖 호강을 다 했다. 그런데 필자가 루마니아에 가 보니 그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그 죄로 차우세스쿠는 1989년 동유럽공산주의 국가가 줄줄이 무너져 갈 때 제1차로 몰락 처형당하였다. 부인과 같이 총살당하는 끔찍한 장면을 사진으로 보고 한때 당당했던 그의 최후가 안타까웠다. 김일성은 용케 무사했다. 그러나 그 손자의 운명은 절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부자는 3대를 못 간다고 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잘 아는 독일 사학자 한 분이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 넌지시 물었다. “히틀러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랬더니 의외의 답이 나왔다. “히틀러는 독일인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인입니다. 그러니 히틀러가 저질은 죄는 독일인이 지어야 할 것이 아닙니다.” 필자는 이렇게 역사가는 도망가도 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자서전『마인 캄프Mein Kampf(나의 투쟁)』를 읽어 보니 히틀러가 어릴 때 배운 한 역사 선생님의 강의를 두고 자신의 정치철학은 모두 역사 선생님에게서 나왔다고 했다. 히틀러가 집권한 뒤 독일군을 이끌고 고향을 지나가는데 그 역사 선생님을 만나 감격의 해후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히틀러는 낙제생이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의 선생들은 모두 병신 같은 것들이었다.”고 회고하면서 원망했다. 다시 말해서 히틀러를 독재자로 만든 사람은 역사 선생이었다는 것이다. 
 
최근 한 흑인 아가씨가 자신의 외할아버지가 유태인 학살의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알고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고민 끝에 나에게는 책임이 없고 단지 나는 태어난 죄인일 뿐이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장차 언젠가 그에게 운명의 날이 찾아 올 것이다. 그날 그는 절대 웃지 못  할 것이며 울지도 못할 것이다. 만일 독일 사학자가 그 자리에 있다면 그는 말하기를 그는 독일인이 아니다 할 것이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