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검인정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문제로 여야가 시끄럽다. 세월호 사건 이후 단 하루도 쉴 날이 없다 할 정도로 시끄러웠으니 이제는 좀 조용히 지냈으면 좋겠다. 그러나 교과서 문제가 갑자기 불거져 나와 나라 안이 또다시 시끄럽다. 우리 역사의 머리인 고조선이 망가지고 없다는 사실부터 챙겨야 할 일을 엉뚱한 곳에 초점을 맞추어 언성을 높이고 있다. 문제는 근현대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행 국사교과서가 좌편향이란 것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검인정제도 자체가 잘못되어 있었다. 좀 더 엄격히 교과서를 검정했어야 하는데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제도 때문에 그만 이념 교과서가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교과서 문제의 핵심은 근현대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을 죽인 데 있는 것이다.  

고조선역사를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고친 지 얼마 되었나. 우리나라 국사는 단재 신채호의 역사학을 따르지 않고 이병도 사학을 따른 데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제도를 고쳐도 교과서 내용에 변화가 없었다. 문제는 강단사학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단군을 어떻게 하면 되살리느냐라는 데 달려 있는데 단군은 여전히 죽고 살리지 못하고 있다. 한동안 단군 대신 기자를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잡아 가르쳤다. 이제 그 기자까지 없애고 나니 고조선 2천 년이 송두리째 없어지고 만 것이다. 우리 상고사가 이리 찍히고 저리 찍히는 바람에 그 귀중한 머리가 잘리어 나갔다. 단군이 건국한 사실을 신화로 돌리고 고조선의 강역이 압록강 이남에서만 찾으니 캄캄한 밤중에 장님이 길을 찾는 격이 되었다. 지난날 윤리를 가르치라고 국민윤리란 과목을 신설해 주었더니 윤리는 선반에 올려놓고 정치만 가르친 일이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국사 문제 가운데 가장 크고 시급한 문제가 바로 고조선 문제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만리장성이 뉘 것이냐?」(조선일보 1932)라는  논문을 써서 우리에게 단군조선이란 전성시대가 있었다고 가르쳐 주었다. 단군이 조선을 건국한 것은 신화가 아니요 사실이라 하였을 뿐 아니라 그 강역이 동서로 3만 리요 중국의 중심지인 중원까지 우리 영토였다고 갈파했으나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이 말을 지금까지도 믿지 않고 있다. 어떤 교과서를 들춰보아도 만리장성은 우리가 쌓은 성이란 말을 한 책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단재는 지금의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중국이 쌓은 장성이라 하면서 그 시원은 우리 고조선이 쌓은 장성이었다고 했다. 1년에 수백만 수천만 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만리장성은 우리가 쌓은 작품이었다.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이었다. 고조선시대라면 서기전 2000년이며 그때 만리장성이 자리한 곳은 우리 고조선의 강역 속에 있었다. 그 땅은 중국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지역으로 중국은 성곽을 쌓을 권리도 없고 쌓을 힘과 기술도 없었다. 
 
명나라 시대라면 지금으로부터 겨우 500년 전이다. 그보다 10배나 이전에 장성을 쌓은 나라는 고조선밖에 없었고 성은 돌로 쌓는 석성石城이었다. 지금의 만리장성은 대다수가 석성이지 북경 근교의 장성만 벽돌로 싼 장성이었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여 전국의 산성 터를 조사해보았더니 무려 2,000곳이나 되는 읍성과 산성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자빠졌다. 그리고 우리 산성을 비로소 조선식 산성이라 이름 붙이고 일본까지 뻗어 간 사실을 확인하였다. 한국은 고조선 때부터 성곽 전을 위주로 하여 적과 싸웠다는 것을 그들이 알아내 준 것이다. 그런데 일본 고고학자들은 모든 산성을 중국에서 배운 기술이라 왜곡하였다. 청동기 만드는 기술도 중국에서 배웠다고 왜곡했다. 성곽이라 할 때 도읍을 에워 싼 읍성과 산에다 쌓은 산성의 두 종류로 나뉜다. 적은 적들이 침략해오면 읍성에서 막았지만 많은 적은 반드시 산성에서 막았다. 먼저 적을 막고 다음에 적을 공격하여 섬멸하는 작전을 선수후공(先守後攻)이라하는데 고구려 이전인 고조선 때부터의 우리 고유의 전법이었다.  
 
고조선군(軍)은 압록강을 건너 요동을 지나 중원을 공격하였다. 그때 만리장성은 없었다. 고조선 역사가 무려 2,000년에 달한다. 그때 중국은 원시시대였다. 그런  황무지대에 진출한 고조선군은 먼저 한족漢族과 싸워 제압한 뒤 산성을 쌓아 지키게 했다. 치우가 헌원과 싸워 백전백승한 사실을 중국은 후대에 역사를 왜곡하여 자기네 시조 헌원(황제)이 이긴 것으로 만든 것이 사마천의 『사기(史記)』였다. 이렇게 고조선군이 쌓은 석성이 지금도 도처에 남아있다. 그리고 고조선족의 후손이 지금도 우리와 같은 김치를 비롯한 우리의 식생활을 하면서 중국에 살고 있다. 그들은 다시 남진에 남진을 거듭하여 식민지를 개척하였다. 그것이 중국사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름이 바뀌어 고조선 산성이 아니라  진장성秦長城과 위장성魏長城와 조장성趙長城 그리고 연장성燕長城이란 중국 이름으로 개명되고 있다. 중국의 장성은 거의 모두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성이니 중국 것이 아니란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투박하게 보이지만 한 번 쌓아놓으면 천년만년 가는 군사시설이 곧 우리의 석성이었다. 
 
중국사로 말하면 고조선시대는 춘추전국시대다. 성곽전은 우리나라 고유의 전법이어서 어느 마을이나 산성이 없는 마을이 없었다. 중국의 만리장성 고지도를 보면 최초의 만리장성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 가는 장성이다. 그러나 한 참 가다보면 구원九原이란 곳에서 남으로 꺾이어 가는데 양자강 상류까지 닫고 있다. 이 성은 동쪽을 보지 않고 서쪽을 보고 있다. 이름은 위장성魏長城이지만 위의 장성이 아니라 고조선의 장성이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장성을 위대한 성(Great Wall)이라 부르면서 자랑하고 있으나 누가 어느 시대에 쌓은 성인 줄을 모르고 있다. 기록이 없는 것이다. 최근 발견된 토용군단土埇軍團도 그 군사들이 중국인이 아니라 상투를 튼 고조선인이란 것을 보고 중국인들은 놀라고 있다. 누가 쌓아 만든 성인줄도 모르고 흙벽돌로 만든 군사들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상투 하나로만으로도 고조선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 왜곡의 명수인 중국인들은 둘 다 진시황의 작품이라고 주장한다. 토용군사들의 상투 튼 머리는 그들이 고조선인이란 절대적인 증거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결발 즉 상투만은 한국인이란 증거요 주민등록증이다. 그러니 중국이 자랑하는 토용군단 그리고 만리장성은 그 소유주가 고조선 인이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헌원(황제)과 진시황 자신이 고조선인이란 설까지 있다. 설이 아니라 사실이다. 진시황은 열심히 태산泰山을 찾아가서 자신이 천명을 받은 황제란 사실을 과시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자신이 조선족이란 것을 자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학자로서 단군조선을 사실로 믿는다던지 고조선의 강역이 중국에까지 뻗어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학자가 없다. 그러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중국을 점령한 고조선족 가운데 서(徐) 씨(氏)가 세운 나라가 한때 중원을 통일한 일이 있었다. 만일 서 씨 제국이 중국에서 좀 더 버티어 주었더라면 고조선은 동양의 로마제국이 되었을 것이다. 중국은 고조선제국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입증해 주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만리장성에는 세계사를 뒤바꾼 또 하나의 비밀이 숨어 있다. 그것은 고조선이 결국 내란으로 망해 중원의 식민지를 버리고 압록강 이남으로 후퇴하였으나 고조선의 종속국 흉노(일명 훈)는 저 멀리 서양으로 이동하여 이태리를 점령하여 로마를 멸망시켰으니 이처럼 큰 사건은 없다. 그 뒤 몽고군이 서양을 재침하였으니 모두 고조선이 했어야 할 일을 대신한 것이다. 서양의 역사는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재출발하여 문예부흥 종교개혁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등 변화를 통해 근대화하고 세계를 제패했다. 동양에서도 만리장성을 넘어 들어가 고조선처럼 중원을 점령한 나라가 있었으니 우리와 사촌 간인 여진족의 금나라와 청나라였다.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삼천리금수강산을 지키느라고 고생했으나 발전하지 못하고 길고 긴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깨어나서 새로운 고조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해야 한다. 아무리 천운이 온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깨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천운을 잡아야 한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