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겨울에 추위가 와서 우리나라는 지구온난화와 거리가 멀다 싶었더니 그것이 아니다. 지구온난화로 매서운 추위가 왔다는 것이다. 청년 실업자가 느는 것도 유럽에 중동 난민이 몰려드는 것도 모두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하니 과학기술이 발전했다고 하여 좋아할 일이 아니다. 수제 드론을 만들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요즘 중동에서는 회교도 극단주의자(IS)들이 자폭 테러 전쟁을 벌이고 있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자폭의 원조는 제2차 대전 때 일본의 특공대였다. 중국의 임시수도 중경을 맹폭하여 5만 명 이상이나 죽인 일을 극비에 부치다가 요즘에야 문서가 발견되어 또 하나의 남경대학살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 짓을 생각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데도 시치미를 떼고 잘못이 없다는 것이 아베 정권의 파렴치다. 그런 일본이 중동의 IS에 혀를 말고 놀라고 있다. 아니 놀라는 척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에게는 우리의 선비정신과 전혀 다른 사무라이(싸움아비) 정신이 있어서 배를 가르는 자폭 행위 근성이 있다. 그래서 지금 또다시 세계 전쟁에 끼어들려고 하고 있다.
 
그런 주제에 일본이 중동의 자폭테러에 놀라고 있는 것은 중동이 일본과 다른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중동의 IS는 상대에게 죄가 있건 없건 가릴 것 없이 죽인다. 그러니 IS의 자폭은 그야말로 무차별공격이니 일본과 다르다고 변명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 아니 어린이 늙으니 할 것 없이 죽이는 것을 지금 자행하고 있는 것이 IS는 아니다. 이것을 소프트 공격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병사가 아닌 비전투인을 죽이는 것이 오히려 하드공격이기 때문이다. 테러로 죽는 사람으로서는 왜 자기가 죽는지 모르고 죽는다. 그래도 사람이라면 자신이 누구에게 죽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테러로 억울하게 죽는 피해자는 하늘에 가서도 “당신은 왜 왔는가. 돌아가시오(요)” 라는 하느님의 명령에 놀랄 것이다. 이런 죽음이 지금 우리에게도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6.25를 비롯한 베트남 전쟁 등 온갖 무서운 전화를 겪으면서 요행히 살아왔다. 그러나 막판에 가서 테러에 죽게 되었으니 정말 억울하다. 
 
바로 며칠 전 식구들을 데리고 일본에 다녀오는데 돌아올 때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멈춰서 기름이 새어 이륙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평생 처음 당하는 일이라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갑자기 테러가 머리에 떠올랐다.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만일 비행기를 탄 채 바닷물 속에 떨어져 죽었다면 어떻게 되는가. 우리 식구 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죽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그래서 오히려 하느님에게 감사했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테러가 아니더라도 돌연사가 항상 불시에 찾아온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노상에서 교통사고로 죽는 것도 테러전에 죽는 것이나 이유는 마찬가지다. 한동안 한국이 교통사고로 죽는 비율이 세계 제일의 나라였다. 그런 나라가 지나고 나니까 잊어버리고 다시 자살률도 세계 제일이라는 시대에 살게 되었다. 그러니 얼마나 우리는 무서운 시대에 태어났는가 모른다.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후보로 나온 트럼프란 사람은 미국이 북한의 한국침략을 막아주었는데 그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무임승차한 나라라고 폭언하였다. 도대체 남북을 분단시킨 자는 루스벨트가 아니고 누구인가. 우리는 아무 실수 없이 분단당하고 남북전쟁을 치러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가. 6.25때 죽은 동창들 이름을 대라면 댈 수가 없다. 그들이 만일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살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국이었다면 미국을 남북으로 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베트남전쟁 같은 남(미국)의 전쟁에 한국을 끌어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라는 요구를 받고 고민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밤새 소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면서 재떨이를 다 채웠다고 한다. 그리고 죄 없는 한국군이 베트남에 가서 죽었다.
 
“트럼프, 너는 그것을 아는가?” 
 
단지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미국이 6.25에 참전해준 일에 충분히 보답하였다. 그것도 모르고 트럼프가 어쩌다가 돈을 벌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호강에 겨워 인종차별 발언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
 
2001년인가 아니면 그 다음 해인가 세계자살의 날이 제정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12년에 한국은 한해에 1만 5,566명이나 자살하는 나라로 전락하였다. 미국이 가르쳐 준 과학기술 탓으로 그렇게 된 일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미국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그때는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경제가 세계 10위라 자랑하던 나라가 창피하게 자살률이 세계 제일이라고 하니 이런 부끄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하루에 평균 43명이나 자살로 죽는 나라,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자살자가 많다는 영광(?)을 안았던 것이다. 자살로 훈장을 받은 것이다. 훈장도 훈장 나름이다.
 
얼마 전 아내가 “당신은 나라에서 문화훈장을 두 개나 탔는데 기념으로 사진이나 하나 찍어둡시다. 후손이 사진을 보고 할아버지를 본받아야 하겠다. 고 하게요!” 라는 것이 아닌가. 족보를 남겨서 무얼 하는가. 사진으로라도 남겨 둡시다. 고 해서 사진사를 불러 서재에 앉아 사진을 찍어 바라보니 반짝반짝 빛나는 훈장에 웃는 내 얼굴이 밉지가 않았다. 아니 보기 좋았다. 그러나 자살률 세계 제일의 나라란 훈장만은 절대 달거나 공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자랑스러운 대통령님(?)들에게 누가 되기 때문이다.  특히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미안하지 않는가. 농담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IS의 자폭 전쟁은 남이야 어떻게 죽든 간에 자기만 영광스러우면 된다는 죽음이니 절대 영광의 죽음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민간인과 전투병을 가리지 않고 덮어놓고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 들어가서 총을 난사하고 가슴에 품은 폭탄을 터트리는 자들이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죄악이다. 그런데 사람들과 대결하여 싸우는 미국은 위대한 정의의 나라다. 그런데 미국이 드론 전쟁으로 맞서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 이 사실을 폭로한 사람이 다름 아닌 미국 공군병사들이다. 
 
그들은 그들이 맡은 임무가 단지 스마트폰으로 장난하는 것으로만 알고 입대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실무를 맡고 보니 장난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특수부대 임무였다는 것이다. 자폭과 드론(무인기)의 전쟁 야만과 문명 첨단기술의 전쟁이 지금의 중동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한쪽에서는 자기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는데 다른 한 편에서는 단추 하나를 누르면 상대를 몇 명이나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다. 날마다 젊은이들이 배우고 훈련받고 있는 스마트폰의 게임은 다름 아닌 사람을 죽이는 연습인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즉각 금지하면 되지 않느냐 하지만 절대 금지시킬 수 없다.
 
휴대전화를 눌러 자기가 실제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을 알고 대통령에게 충고한 사람은 네 사람의 미군 병사였다. 그들은 자기가 단추 하나를 눌러 몇 사람이나 되는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는다는 영상을 보고 정신병에 걸렸다. 드론 조종사는 드론을 발사하고 드론이 목표물에 접근하면 미사일을 발사하라는 명령을 받드는 병사와 명중 여부를 확인하는 병사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사일은 날아서 목표물에 맞으면 죄 없는 어린이가 흔적 없이 사라지는 현장을 본다는 것이다. 날마다 이런 처참한 영상을 보고 네 사람은 참다못해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냈다. 내용은 이렇다.
 
당신은 중동에서 지상군을 철수하여 전쟁을 끝낸다는 것을 국민에게 공약하고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당신은 공약대로 지상군을 철수시켰으나 드론으로 무죄한 양민을 죽이는 잔혹한 일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살상의 현장을 보고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무서워서 두문불출해야 하는데 당신은 우리를 구출하는 데 어떤 조치도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래도 됩니까?
 
드론의 평화적 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은 드론을 세계화하면 지구는 지상낙원이 되리라 믿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망한 꿈이다. 드론의 군사적 활용이란 어두운 배후가 숨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만일 드론을 이대로 발전시킨다면 장차 드론에 맞아 죽지 않고 사는 사람이 없을지 모른다. 드론에서 발사되는 미사일에 죽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닐 것이다. 드론에 핵폭탄이 실려 날아온다면 어떻게 되는가. 지구가 없어지는 것이다. 드론에 실린 핵폭탄 하나에 수십만 수백만이 죽는데 미국에서만 2천 개가 넘는 핵폭탄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우리는 결국 시체로 뒤덮인 지구를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교회에 가서 그런 날이 오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스마트폰을 만들어 억만장자가 된 미국의 모 씨는 “아들에게 이건 절대 만지지 마라!” 고 소리 질렀는데 지금 대통령 당신은 그럴 권리가 없습니다. 과학기술이 이 세상을 낙원으로 만든다고 노벨이 노벨상을 만들어 놓고 죽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과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돈이 남았다면 소설이나 역사를 써서 평화를 노래하는 인문학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으면 한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