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광복절 70년 경축도 북한의 도발로 무색해졌습니다. 광복이 곧 분단의 역사이고 그 상처는 아물지 않았습니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지금까지 30여 차례의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남북의 대치 상황에서 전역을 연기하고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군인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군복에 단 태극마크가 어느 때보다 빛나는 이유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신하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백성을 버리는 왕의 역사보다 대한의 청년들을 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조국통일에 대한 염원은 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자고 강조한 것과 같습니다.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 되면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기적을 이루자고 힘차게 외쳤습니다. 1972년 북한과 최초로 합의한 7.4 남북공동 성명을 주도한 박정희 대통령에 이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낼지 주목됩니다.

그러려면 남북 간 대화의 채널을 열고 자주 만나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은 백범 김구에게서 찾을 수가 있습니다. 당시 남북협상을 위해 북행을 시도하던 백범은 북행을 만류하던 군중에게 “북한의 빨갱이도 김일성도 다 우리와 같은 조상의 피와 뼈를 가졌다. 그러니까 나는 이 길이 마지막이 될지 어떻게 될지 몰라도 이북의 우리 동포들을 뜨겁게 만나봐야 한다”며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의 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광복 후 임시정부를 이끌고 환국한 백범의 성명을 보면 좌우파의 단결을 강조합니다. 그 중심엔 우리 민족은 한 핏줄이라는 ‘단군의 자손론’이 있습니다. 
 
“우리의 독립 주권을 창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급하고 중대한 임무이외다. 우리가 임무를 달성하자면 오직 3.1 대혁명의 민주단결 정신을 계속 발양해야 됩니다. 남북 조선의 동포가 단결해야 하고, 좌파 우파가 단결해야 하고, 남녀노소가 단결해야 합니다. 우리민족 개개인의 혈관 속에는 다 같이 단군 성조의 성혈(聖血)이 흐르고 있습니다.”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민족통일과 단군민족주의(고조선단군학2004)>에서 “이 같은 단군의 자손론은 ‘철학도 변하고 정치, 경제의 학설도 일시적이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원하다’는 관념으로 연결되고 좌우의 대결조차도 민족이라는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하게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백범의 생각은 우남 이승만 초대 대통령도 다르지가 않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상해 임시정부 시절에 단군이 승하한 어천절 기념식 석상에서 “단군 황조의 뜻을 계승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찬송사는 독립신문 1921년 4월 20일 자에 실렸습니다.
 
“우리 황조는 거룩하시사 크시며 임금이시며 스승이셨다. 하물며 그 핏줄을 이으며 그 가르침을 받아온 우리 배달민족이리오. 오늘을 맞아 기쁘고 고마운 가운데 두렵고 죄 많음을 더욱 느끼도다. 나아가라신 본뜻이며 고로 어라신 깊은 사랑을 어찌 잊을 손가. 불초한 승만은 이를 본받아 큰 짐을 메이고 연약하나마 모으며 나아가 한배의 끼치심을 빛내고 즐기고자 하나이다.”
 
당시 단군은 종교나 이념을 초월한 민족단합의 상징이었습니다.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원은 '일제하 항일운동 배경으로서의 단군의 위상(국학연구원2011)‘에서 “기독교 계열의 학교였던 만주 명동학교의 교실에는 단군 초상화를 걸고 수업을 했는가 하면, 예배당에도 십자가와 단군기를 함께 놓고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물론 백범의 단군자손론은 21세기 다문화시대에 적합하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단군의 홍익인간 정신으로 민족통일의 이념을 세우고 지구촌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밝힌 ‘한반도의 기적’은 2천년 이상 찬란한 역사를 이뤘던 단군조선의 건국이념에서 찾아야할 것입니다. 그것은 박 대통령이 휴가에 읽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한국명 이만열) 경희대 국제대학 교수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에 나오는 홍익인간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