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명옥 경기 동안고등학교 교사

작년에 고2 담임을 할 때였다. 아침에 뇌체조와 명상을 진행하고, 감사 일기장을 쓰게 하면서 반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아이들은 5분이 아까운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 중학생이나 할 법한 인성교육을 시킨다고 담임을 싫어하는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 속에서 나도 많이 지치고 힘든 1년을 보냈다. 

그런데 순자(荀子)는 “제자는 인생에서 이익을 얻게 되면 스승을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올해 현실이 되었다. 지난 5월 스승의 날에 작년 담임 반 아이들이 거의 다 찾아와서 진심어린 감사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께서 작년에 저희와 함께 해주신 활동 때문에 자기소개서를 쓰는 데 매우 좋아요. 정말 감사해요. 작년에는 정말 죄송했어요.”
 
올해도 교과 시간에 뇌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이 싫어하는 감정과 싸우기가 싫어서 ‘그만둘까?’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년 아이들이 나의 뇌를 깨우고 간 것이다. 진정한 교사라면 현실의 작은 충돌을 두려워 말고 교사의 교육 철학을 당당하게 펼치라고 무언의 압력을 주고 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입시 위주의 학교 체제에서 시험 보는 기계로 전락해 있거나, 물 묻은 솜처럼 축 처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악만 남은 상태를 보여준다. 그 속에서 교사 또한 상처를 받고 흔들린다. 그렇다면 이러한 흔들림 속에서도 교사로서 바로 설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바로 교사의 교육철학이다. 사람의 척추가 반듯하면 바르게 서 있을 수 있듯이 교사에게 교육의 중심 철학이 있으면 이처럼 혼란스러운 교육현실에서도 바르게 서 있을 수 있다.  
 
최근 학교 내외에서 교사들로 구성된 각종 연구회가 많이 운영되고 있다. 경기도에는 ‘전문적 학습공동체’라는 연구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방과 후에는 끊임없이 교과, 상담, 생활지도 등 다양한 형태의 교수기법들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전문역량을 키우려고 애를 쓰고 있다. 나는 이러한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교사들의 모습에 존경심을 느끼며 신뢰를 보낸다. 
 
한편으로는 교사들이 밤낮없이 교수기법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에 묻히는 것이 과연, 잘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스승이 되려면 ‘교육의 목적’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사색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 침전물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담아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육학자 파커 J. 파머는 <가르칠 수 있는 용기>에서 “훌륭한 가르침은 교사의 정체성과 성실성으로부터 나오며, 스승의 힘은 정체성과 교수방법이 일치할 때 가장 강력하게 발휘한다”라고 하였다. 단순히 국어와 영어, 수학을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스승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어 교과 속에 녹여내는 것이다. 즉, 스승은 교과를 넘어 자신이 가진 삶에 대한 태도와 정체성을 드러내어 가르친다. 제자는 스승의 정체성에 감동하여 보고 배우며 체험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스승이 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승은 자신이 미친 영향에 대한 책임을 안다. 그러하기에 스승은 훌륭한 정체성을 가져야 하고, 정체성은 스승이 갖고 있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스승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양심을 밝히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의 가치와 타인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즉 교사 자신이 먼저 인성회복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이러한 것을 알고 인성회복이 되어 실천하는 사람을 ‘홍익인간’이라고 하였다. 
 
홍익철학 속에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관, 인생관, 행복관이 들어 있다. 홍익철학은 ‘인간 모두에게 선택하면 이루어지는 힘이 있다’고 본다. 모든 인간은 순수한 양심을 가진 존재로 인간 본래의 마음은 순수한 사랑이다. 그런데 우리의 뇌는 습관적으로 생각 작용을 하고 우리는 그 상태를 체험하고 있어서 평소 그것을 인식하기가 어렵다. 
 
교사 스스로 그것을 인식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수양이 필요하다. 자신의 말과 행동, 생각을 바라보고 무엇이 양심을 밝히는 것인지. 참다운 행복이 무엇인지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교사 자신의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가다듬고 생활하는 것이 습관화되어야 한다. 호흡이나 명상처럼 내 몸과 마음을 평화롭게 만드는 실천이 도움 된다. 그리고 내 안의 부정적 가치관, 관념 바라보기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순수한 자신과 만나고 교사의 존재가치를 빛나게 하는 꿈과 희망을 그릴 때 아이들과도 편견과 오해가 없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스승이 되어가는 것이다.   
 
인생관이 달라지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우리 뇌의 정보가 달라진다. 이기적인 삶의 목적, 성공과 경쟁의 삶의 목적을 갖고서는 좋은 인성이 생길 수 없다. 홍익의 인간관, 인생관을 기초로 할 때 진정한 행복관이 생긴다. 어떤 직업을 갖든지 내가 그 직업에서 홍익의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본래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 선택하면 이루어지는 힘을 갖고 ‘내가 꿈꾸는 목표를 이뤄나가는 삶이 정말로 행복한 삶’이라는 행복관이 정립된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 누군가를 누르고 성공해서 몇 퍼센트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두 행복할 가능성이 있는 철학이 바로 홍익철학이다.      
  
진정한 교육의 본질은 아이 안에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자신감을 갖고, 공부를 못해도 꿈과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교육을 해주어야 한다. 아이들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바로 홍익철학이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인성이 회복되어 깨어있어야 한다. 나는 교사들부터 <홍익철학이 있는 스승>이 될 수 있도록 길을 안내 해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교육을 살리는 길이라고 본다. 지금 시도되는 많은 인성교육은 모두 다 의미 있고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핵심은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에게 홍익철학을 알려주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사들의 인성회복이 이루어지고, 스승으로 거듭난 생활 문화를 창조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스승의 인품에 물들어 인성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우리민족의 교육이념인 ‘홍익정신’을 살려서 교사부터 바뀌어야 한다. 내가 바뀌고, 동료 교사들과 통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 통할 때 행복하다. 아이들과 통하고 아이들에게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을 가르쳐야한다. 교사가 인성영재가 되어 우리 사회에 유익한 인성영재를 길러낸다는 큰 꿈을 갖게 된다면, 스승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교단에 부끄럽지 않게 서 있을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