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연의』는『징심록』의 부분 복원본이기에 이것만으로는『징심록』전체의 내용을 온전히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인 서술 방향이나 내용 은 알 수 있다. 여기서는『연의』의 본문이자『징심록』의 제1지로 알려진「부도지」에 나타난 선도사상을 통해『징심록』의 선도사상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부도지」에는 한국선도의 존재론과 역사인식이 긴밀히 연동되어 있기에 이 두 부분을 중심으로 하였다.

▲ 정경희 교수
「부도지」는 적은 분량이지만 기존의 선도서들과 차별화되는 관점과 내용들로 가득찬 대단히 이채로운 자료이다. 「부도지」가 다루고 있는 시기는 마고성시대麻姑城時代부터 신라초까지로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1부는 마고성시대, 제2부는 마고성 이후~고조선시대, 제3부는 신라건국사이다. 제1부 마고성시대는 신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속에 한국선도의 ‘존재론’ 및 ‘사론史論’이 잘 나타나 있다. 다음 제2부 및 제3부에서는 제1부에서 제시된 사론에 입각하여 마고성시대 이후부터 신라건국초까지의 역사가 개관되어 있다.
제1부의 첫머리에는 한국선도 고유의 존재론이 마고신화의 방식으로 제시되어 있다. 마고신화의 주인공은 마고나 이희二姬(궁희穹姬·소희巢姬)와 같은 여성신, 그리고 그들의 자녀인 사천녀四天女·사천인四天人, 또 사천녀·사천인의 후예이자 인간의 시조(인조人祖)인 천인天人들로서 신화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先天에는 麻姑城이 實達城 위에 虛達城과 나란히 있었는데, 애초 햇볕만이 따뜻하게 내려 쪼일 뿐 눈에 보이는 물체라고는 없었다. ‘朕世以前’에 律呂가 몇 번 부활하자 별들이 출현하였다. 先天이 끝난 다음 ‘朕世’에 이르러 八呂의 音에 의해 다시 虛達城·麻姑城(麻姑)·實達城이 나왔다. 朕世가 몇 번 끝나자 ‘後天’이 시작되었는데, 먼저 마고성의 麻姑가 二姬(穹姬·巢姬)를 낳아 五音七調의 절도를 담당하게 하였다. 二姬(穹姬·巢姬)는 각기 二天人·二天女씩 총 四天女·四天人을 낳아 마고성에서 나오는 地乳로써 양육, 四天女에게는 呂를, 四天人(黃穹氏·白巢氏·靑穹氏·黑巢氏)에게는 律을 담당하게 하였다. 四天女·四天人에 의해 律呂가 작용하게 되자 마고는 實達城을 끌어다 天水지역에 떨어뜨렸고, 이에 實達의 몸체가 열려 陸·海, 山·川이 생겨났다. 또 氣·火·水·土가 섞이어 草木·禽獸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四天人은 기·화·수‧토의 조절 작용을 담당하였다. 곧 黃穹氏는 土, 靑穹氏는 水, 白巢氏는 氣, 黑巢氏는 火를 맡아 담당하였다.(縮譯)

언뜻 보기에 대단히 난해해 보이는 상기 내용은 한국선도의 존재론을 신화의 형식으로 표현한 것에 다름아니다. 한국선도에서는 모든 존재의 본질이자 우주의 근원적 생명에너지로서 ‘일一(일기一氣, 하느님)’을 제시하고 이를 이루고 있는 세 차원(삼三, 삼기三氣, 삼신三)으로 천·지·인 삼원三元을 제시한다. 기에너지의 3대 요소인 천‧지‧인 삼원은 현대에 이르러서는 현대인들의 안목에 맞추어 천(정보, 무無·공空, 빛光), 지(물질, 파동波), 인(기에너지, 소리音)로 설명되기도 한다. 천·지·인 삼원중에서 특히 ‘인’ 차원이 삼원을 ‘조화調和’하는 중심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듯 ‘일(일기, 하느님)’과 ‘천·지·인 삼(삼기, 삼신)’은 존재의 본질로서 불가분리성을 띠기 때문에 ‘일(삼), 일기(삼기), 삼신하느님’〔이하 ‘일기(삼기)’〕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 ‘일기(삼기)’의 속성은 ‘무선악無善惡’으로 설명되는데, 이는 다시 ‘사私적인 치우침이 없다’는 의미에서 ‘무아無我, 무無, 공空’ 또는 ‘공公(전체全體 의식)’으로도 해석되니 선도 기학氣學의 심오한 깊이를 짐작해보게 된다.

한국사 전통에서 이러한 ‘일기(삼기)’가 시작되는 곳, 곧 우주의 한 점은 ‘하느님나라(신국國)’ 또는 ‘천궁天宮’으로 표현되어 왔으며 구체적으로는 북두칠성 근방으로 적시되어 왔다. 이러할 때 선도 기학과 민간의 북두칠성(칠성)신앙이 동일한 계통임을 알게 된다. 선도 기학의 ‘일기(삼기)’ 사상이 민간신앙화한 것이 바로 북두칠성신앙(칠성신앙)인 것이다.
상기한 바 한국선도 존재론은「부도지」에 이르러 매우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다. 먼저 ‘선천先天·(짐세朕世)·후천後天’이라는 주기 구분 속에는 존재계가 끝없이 생멸을 반복한다는 주기론적 인식이 나타나 있다. 선천과 후천의 양대 주기 중에서도「부도지」가 주목하고 있는 시기는 후천으로 후천의 시작을 설명하면서 한국선도 일반의 천‧지‧인 삼원론을 가져오되, ‘천(허달성虛達城)·인(마고성麻姑城)·지(실달성實達城) 삼원’이라는 새로운 표현법을 사용하였다. 천(정보, 무無·공空, 빛光)이 갖는 ‘무·공’의 성질을 범주화하여 ‘허달성’으로, 지(물질, 파동波)가 갖는 ‘물질성·구체성’을 범주화하여 ‘실달성’으로, 인(기에너지, 소리音)이 갖는 ‘삼원의 조화점調和點으로서의 운동성·창조성’을 ‘마고’라는 여신으로 의인화하고 또 ‘마고성’으로 범주화한 표현법이다.
또한 ‘천(허달성)·인(마고성)·지(실달성)’ 삼원 중에서도 ‘인(마고성)’ 차원에 무게중심을 둔다. 삼원 중에서도 ‘인(마고성)’ 차원에 대표성을 부여, ‘인(마고성, 마고)’가 계속 자손을 낳아 세상을 창조하는 것으로 설명한 것이다. 천·지·인 삼원 중에서 인차원이 삼원을 조화하는 역할을 하기에 같은 맥락에서 ‘천(허달성)·인(마고성)·지(실달성)’ 삼원 중에서 인(마고성) 차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처럼 한국선도의 천‧지‧인 삼원론과「부도지」의 천(허달성)·인(마고성)·지(실달성) 삼원론은 꼭같은 ‘일‧삼론’의 논리 구조를 공유하고 있다. ‘일기(삼기)〔삼신하느님, 북두칠성〕’이 곧 ‘마고(마고여신, 마고할미, 삼신할미)’인 것으로, 기왕에 별개의 것으로 이해되어온 ‘일‧삼론, 삼신하느님사상, 북두칠성신앙, 마고할미(삼신할미)신앙’이 동일한 논의의 다른 표현임을 알게 된다.
한국선도의 존재론에서 ‘일·삼론’은 언제나 ‘일·삼·구론’으로 확장되곤 한다. 존재의 본질인 ‘일기(삼기)’가 펼쳐져 현상의 물질세계로 화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일·삼·구론’이기 때문이다. ‘일기(삼기)’는 명백한 삼원적 구조를 갖고 있지만 이것이 현상화하는 과정은 ‘여呂‧율律(음·양의 한국선도적 표현)’ 이원적 분화 방식에 의한다. ‘일기(삼기)’는 이원적 분화 과정, 곧 ‘1기(3기) → 2기 → 4기 → 8기’의 과정을 거쳐 물질로 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창조의 출발점인 ‘1기(3기)’와 창조의 결과 생겨난 8기를 합하면 9기가 되니 이를 ‘일·삼·구론’으로 이름한다.

‘일‧삼론(일·삼·구론)’은「부도지」에 이르러 ‘기‧화‧수‧토‧천부론, 삼원오행론三元五行論, 천부조화론天符調和論’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곧 ‘1기(3기) → 2기 → 4기 → 8기’의 과정은「부도지」에 이르러 ‘마고 → 궁희·소희 → 4천녀 단계(려 단계) → 4천녀·4천인 단계(려‧율 단계)’로 설명된다. 최종 단계의 ‘4천녀·4천인’(4쌍의 ‘려‧율’)은 물질계를 구성하는 4대 원소인 ‘공기(기氣)·불(화火)·물(수水)·흙(토土)’으로도 설명된다. ‘일기(삼기)’를 ‘천부天符’로 개념하고 ‘기·화·수·토 4대 원소’를 합하면 ‘기·화·수·토·천부 5기’(‘5행’)이 된다. (‘기‧화‧수‧토‧천부론’)
이처럼「부도지」에서는 존재의 본질이자 근원적 생명에너지인 ‘일기(삼기)’를 ‘천부’로 명명하여 여타 물질계를 구성하는 원소인 기‧화‧수‧토의 차원과 분명히 구별하였다. 본질인 ‘일기(삼기)〔천부〕’에서 현상의 물질세계를 구성하는 ‘기·화·수·토 4대 원소’가 파생되고 이들이 어우러져 물질세계가 만들어진다는 것으로 이를 ‘삼원오행론’으로도 개념화할 수 있다.(‘삼원오행론’)
이처럼 ‘일‧삼론(일·삼·구론)’은「부도지」에 이르러 ‘기‧화‧수‧토‧천부론’ 또는 ‘삼원오행론’으로도 표현되고 있는데, 여기에서 특히 ‘일기(삼기)〔천부〕’가 지닌 ‘무선악(무아, 무, 공空) 또는 공公(전체 의식)’의 속성은 ‘조화調和’의 속성으로도 발현되고 있다.

▲ <자료1-1>「부도지」속 존재론의 표상화 - 입체 구형

앞서 존재의 본질인 ‘일기(삼기)〔천부〕’는 ‘려‧율(음‧양)’ 이원적 분화 방식에 의해 현상(물질)의 ‘8기(또는 기·화·수·토 4기)’로 화하게 된다고 하였다. 현상(물질)은 음·양 이원의 원리에 의해 작동되므로 ‘분리와 대립’의 속성을 갖는데 이때 현상(물질)의 이면에 자리한 본질인 ‘일기(삼기)〔천부〕’는 ‘무선악(무아, 무, 공) 또는 공公(전체 의식)’의 속성을 발현함으로써 현상(물질)의 ‘분리와 대립’을 ‘조화’시켜가게 된다. 곧 본질인 ‘일기(삼기)〔천부〕’가 지닌 ‘무선악(무아, 무, 공) 또는 공公(전체 의식)’의 속성은 ‘조화점’이 되어 현상인 ‘8기(또는 4기)’의 ‘분리와 대립’적 속성을 조화해가게 된다는 것이다.(‘천부조화론’)
‘천부조화론’은 한국선도의 수행론 및 실천론의 요체를 담고 있기에 더욱 주목되는 논의이다. ‘일기(삼기)〔천부〕’는 대우주의 본질이자 소우주인 사람의 내면(구체적으로는 인체의 척추선을 따라 존재하는 3대 에너지 결집체로서의 머리 상단전‧가슴 중단전‧배 하단전)에 자리한 본질이기도 한데 이것이 현상화(물질화)하여 몸과 몸을 통한 구체적인 삶으로 드러나는 방식이 ‘조화’라고 할 때 이를 방해하는 여러 장애 요소들을 넘어서 ‘조화’를 획득하는 것은 선도수행의 궁극적인 지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곧 한국선도 ‘지감‧조식‧금촉’ 수행의 목표이자 수행의 결과 드러나게 되는 덕목은 ‘조화’, 곧 자신과 세상을 조화롭게 만드는 것으로 이는 선도의 사회적 실천론인 ‘홍익인간弘益人間‧재세이화론在世理化論’의 요체이기도 하다.

요컨대 한국선도 존재론의 핵심인 ‘일·삼론(일·삼·구론)’은「부도지」에 이르러 ‘기‧화‧수‧토‧천부론, 삼원오행론, 천부조화론’으로도 표현되었다. ‘일·삼론(일·삼·구론)’의 직절성과 단약성은「부도지」를 통해 그 다면적인 의미까지 충분히 표현됨으로써 그 내밀한 의미까지 풍부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부도지」는 신화적 형태로서 풍부한 부연설명이 가해짐으로써 한국선도 존재론의 섬세한 측면까지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부도지」속의 존재론인 ‘일‧삼론(일·삼·구론), 기‧화‧수‧토‧천부론, 삼원오행론, 천부조화론’을 표상화해보면 입체 구형球形이 된다.(<자료1-1>) 한국선도의 핵심 표상인 이것이 역사학적으로도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류의 표상이 동아시아 상고문화의 원류인 배달고국倍達古國 홍산문화紅山文化에서 제천의기祭天儀器나 사제왕司祭王의 권장류權杖類 등으로 등장한 이래 배달고국을 직접적으로 승계한 한반도‧만주 일대는 물론 중원 일대, 일본 열도 일대를 막론하고 동아시아 일원으로 널리 전파, 동아시아 신성神聖 표상의 원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부도지」속의 존재론을 반영하고 있는 배달고국 홍산문화의 대표적인 신성 표상을 제시해보면 아래와 같다.(<자료1-2>)
<자료1-2> 「부도지」속 존재론을 반영한 배달고국 홍산문화의 신성 표상
1. 대표적 ‘1기(3기)’ 표상 - 삼태극옥벽 4종

▲ 1. 대표적 ‘1기(3기)’ 표상 - 삼태극옥벽 4종

2. 대표적 ‘5기’ 표상 -渦形玉佩 2종

 

▲ 2. 대표적 ‘5기’ 표상 -와형옥패渦形玉佩 2종

 

 

 

 

 

 

3. 대표적 ‘9기’ 표상 - 八葉玉斧

▲ 3. 대표적 ‘9기’ 표상 - 八葉玉斧

이처럼「부도지」의 존재론을 통해 동아시아 상고문화의 원류인 배달고국 홍산문화 이래 동아시아 일원에 전해진 수많은 신성 표상의 제작 원리 및 의미를 이해해 보게 된다. 「부도지」의 존재론은 선도사상 방면에서도 대단히 가치롭지만 동아시아 상고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고 있기에 더욱 주의깊게 천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