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전승되는 '마고(麻古)' 이야기는 그 뿌리가 어디인가. 최근 미국인 작가 레베카 팅클이 한국의 창세설화 '마고성'을 소재로 '마고성의 비밀'(한문화)이라는 소설을 펴내 마고 이야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마고 이야기는 신라 박제상의 '징심록'에 전한다. 마고 신화의 뿌리는 찾으려면 이 징심록'을 연구해야 한다.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국학과 교수가 '징심록'을 연구하여 마고신화의 뿌리를 찾고 있다. 그 내용을 다음 순서로 소개한다.

1. 신라선도의 정수, '징심록' 연구의 배경, 2. 신라 실성왕대 박제상의 '징심록' 편찬, 3. 근대 이전 영해 박씨의 '징심록' 전승, 4. 근대 이후 박재익과 '요정징심록연의', 5. '징심록' 속의 기학과 '천부조화사상', 6. '징심록의 사론과 복본사관.  <편집자 주>

1.  신라선도의 정수, '징심록' 연구의 배경

‘선도문화(밝문화, 배달문화, 천손 문화)’에 기반을 두었던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새로운 시대 이념으로서 불교가 등장하여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5~6세기 무렵까지는 사상적으로 무려 600~700년 정도에 이르는 긴 과도의 시기가 있었다. 이 시기 선도는 여전히 한국사회의 주된 사상으로서 기능하였으나 시대 조건의 변화 속에서 그 성격이 적잖이 달라진 측면도 있다.
필자는 한국선도의 기학氣學, 수행법 등에 관한 연구에 기반을 두고 한국선도의 역사적 전개 과정 및 시대적 특징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근래에는 특히 고조선의 선도 전통이 신라로 이어지는 측면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신라의 건국 과정에서 고조선의 선도가 전승된 면모는 확연하다. 사로6부斯盧六部가 조선 유민, 곧 고조선의 유민들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전승과 함께 6부의 선조들이 하늘天에서 내려왔다고 하는 천손사상의 전통이 확인된다. 특히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서기 전 69 ~ 서기 4년)의 성씨인 ‘박朴’은 한국선도의 핵심 표제어인 ‘밝, 밝음’의 한자식 표기이다. 이름인 혁거세赫居世 역시 우리말로는 ‘밝, 불구내弗矩內’, 의미는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림(光明理世)’이라는 점이 적시되었는데 밝사상으로 신라 건국을 주도한 사제왕司祭王으로서의 면모가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필자는 박혁거세에서 비롯된 박씨왕족이 신라초기 국가선도의 주역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던 중 특히 신라의 제 5대 왕인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112년, 재위 80~112년)에서 비롯된 파사왕계 박씨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파사왕계 가문에서 아도갈문왕阿道葛文王, 물품파진찬勿品波珍飡(물계자勿稽子), 박제상朴堤上,, 백결선생百結先生 등 신라 상고기를 대표하는 선가들이 대거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삼국사기』‧『삼국유사』에 별도의 전기가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기록의 편린이 있는 물품파진찬(물계자, 2세기 후반~3세기 전반 무렵, 생몰년 미상)에서부터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품파진찬의 가계와 관력에 나타난 선가적 면모 뿐 아니라 가야 화친 외교 및 포상팔국浦上八國의 난亂 참전 시에 보인 선도 정치론 및 선도 윤리관을 통해 2세기 후반~3세기 전반 신라 지배층의 선도적 삶을 살필 수 있었다.

물품파진찬에 관한 연구를 이어 그 다음 세대인 내물왕~눌지왕 초의 관인 박제상( 362 ~ 418) 또한 선도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해 보았다. 박제상 역시『삼국사기』‧『삼국유사』에 별도의 전기가 있으며 대체로 ‘충절’의 관점에서 조명되어왔지만, 필자는 박제상이 보여준 충절의 덕목 이면에 자리한 선도적 소양에 주목해 보았다. 박제상의 가계와 관력에 나타난 선가적 면모뿐 아니라 특히 만년의 대표적 행적인 삽량주歃良州 은거와 눌지반정訥祗反正, 왕제귀환王弟歸還  등에서 보인 선도 장로長老로서의 면모 및 선도 정치론을 살필 수 있었다.

박제상의 선가적 생애 전반에 관한 연구를 이어 그의 만년 실성왕(實聖王, ?~ 417, 재위 402~417년)대 삽량주 은거기의 주요 행적인 선도서仙道書『징심록澄心錄』의 편찬 및 전승 문제를 고찰해 보았다. 박제상은 실성왕 즉위 후 실성의 고구려 종속 노선에 반발하여 관직에서 물러나 실성 치세기 내내 향리 삽량주에 은거하는데 이때 방대한 선도서『징심록』을 편찬하였다. 이후 박제상을 시조로 하는 영해박씨 가문에서『징심록』을 전수해 가게 되는데, 삼국시대 이후 한국사회 내에서 선도의 위상이 점차 낮아지면서 선가로서의 박제상의 면모가 잊혀지고, 충절의 면모만이 남게 되었듯이 선도서『징심록』의 존재 또한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박제상의『징심록』이 다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징심록』을 비전해오던 영해박씨측에서 1950년대초『징심록』의 부분 복원본인『요정징심록연의要正澄心錄演義』(이하『연의』)를 공개하면서부터였다.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연의』는『징심록』원본이 아닌 부분 복원본이라는 한계가 있지만『징심록』의 편찬 및 전승 과정, 체제 및 대략적인 관점과 내용 등『징심록』전반에 관한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어, 『징심록』연구에 가장 핵심적인 자료가 된다. 이에『연의』를 중심으로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징심록』의 편찬 및 전승 과정,『연의』의 등장 및 내용 등을 살펴보게 되었다. (계속)

▲ 정경희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