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가 진행하는 문화재청 현장체험 답사지는 한양도성 인왕산구간과 사직단이었다. 40명의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과 학부모가 다소 바람이 부는 4월 19일 토요일에 경복궁역에서  일정을 시작하였다.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과 함께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한 후 북악산, 목멱산(남산), 인왕산, 낙산을 내사산으로 삼으며 한양을 첫 도읍지로 정한다. 법궁인 경복궁을 지어 그 오른쪽에 사직단을 왼쪽에 종묘를 둠으로써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태조 4년에 '도성축조도감'이라는 기구를 설치하여 4개의 산을 연결하는 약 18Km에 이르는 성곽과 4개의 대문, 그 사이사이에 4개의 소문을 갖추어 놓았다. 우리는 숙정문(북대문)과 돈의문(서대문) 사이에 자리한 4소문중 하나인 창의문(자하문)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방향인 인왕산 성곽 길을 올랐다.
 
▲ 네모 반듯한 국사단과 국직단은 비의 기운을 받기 위해 북쪽을 향해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한양도성은 누가 쌓았을까? 태조 때 전국 각지에서 약 12만 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당시 한양의 인구는 약 10만 명이었다. 농한기를 이용해야 했기에 태조 5년 1월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약 18km의 성곽을 97구역으로 나누어 천자문 순서로 구역 이름을 붙이고 담당 군, 현을 성돌에 새겨 놓았다. 공사기간을 49일로 정해놓고 각자 먹을 것을 싸와 산에서 먹고 자며 작업을 했다 한다. 부상자와 동상자뿐만 아니라 때론 죽는 사람도 있었다.
산에는 돌로 석성을, 평지에는 흙으로 토성을 쌓은 태조 이후 세종 때와 숙종 때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였다 한다. 후기에는 주로 석성으로 교체하게 되는데 태조 때는 자연석을 거칠게 갈아 쓰고 성곽 옆면이 볼록하다면 세종 때는 직각사각형의 돌들을 자연스럽게 잇되 철이나 석회와 같은 부재료도 사용하였으며 숙종 때 이르러서는 정방형 (정사각형)으로 반듯하게 잘라 더욱 견고하게 쌓고 옆면이 평평해지는 날로 발달하는 성곽 축조술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또한 숙종때는 백성의 부역이 아닌 군사들의 군역으로 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성돌에 그 책임자의 이름을 새겨 오늘날의 실명제와 같은 기능을 하였다. 
▲ 시기마다 다른 성벽의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양 성곽.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성곽 안에서 볼 때 보이는 성곽부분을 여장이라 하는데 길쭉하게 바깥을 볼 수 있는 부분을 타구라하고 나머지를 타라고 한다. 타에는 보통 3-4개의 구멍이 있는데 아래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을 근총안(성벽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평평하게 뚫린 것은 원총안이라 하여 좀 떨어져 있는 적을 공격하기 위한 구멍이었다. 성곽을 덮고 있는 지붕과 같은 돌을 옥계석이라 한다.  이는 유사시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군에게 밀어 떨어뜨리는 공격 무기이기도 했다.
 
▲ 조상의 땀과 지혜가 깃들어 있는 한양도성 앞에서 답사에 나선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우리 조상들에게 한양도성은 방어벽이며 한양 안과 바깥의 경계선이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이기도 하였다. 죽은 사람의 시신은 성문 밖에 묻어주었다 한다. 옛 도성 안과 바깥을 번갈아 보며 인왕산 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성곽 안 한양사람이 되었다가 어느 구간에서는 성곽 밖 외지인이 되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한양도성 성곽은 평평한 옆면과 정방형의 돌로 후기에 쌓기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한양도성은 세계 현존 도성 중 가장 오랜 기간 (514년)동안 그 역할을 하였고 능선을 따라 자연 친화적으로 축조되었기에 현재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올라있다. 잠정목록에 오르면 1년 후 세계유산 등재신청 자격이 주어진다고 한다.
 
서울시는 2012년 한양도성도감을 만들어 선조가 남긴 문화재의 가치를 더욱 잘 보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내려와 우리 일행은 사직단으로 향했다. 사직단은 농업국가였던 조선시대에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국가에 가장 중요하고 격이 높은 제사였으므로 왕이 직접 행차하였다. 사직단은 한성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세워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그 규모를 축소시켜 지금은 국사단과 국직단, 그리고 신실만이 남아있다. 서울시는 옛 모습을 찾을 복원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답사에 나선 학생들이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며 역사를 배웠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답사를 마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서울에 이렇게 의미 있는 문화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고마움과 그동안 무심했다는 미안함이 남았다. 이제 8회가 남은 문화재청 현장답사도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기며 잘 진행되리라 확신한다.
▲ 북악산을 뒤로 하고 단체사진을 찍었다. 북악은 '백악'이라고도 하며, 내사산중 주산에 해당한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