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있었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과 함께 뙤약볕이 내리쬐는 목화밭에서 온종일 목화솜을 땄다. 학교는 다니지 않았고 일은 고되었지만 하루종일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어서 그는 기뻤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집 남자가 그의 어머니를 겁탈했다. 아버지는 이에 맞서다가 그 남자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 상심이 컸던 그의 어머니는 그날 이후로 말을 하지 않았다.

 상황을 알게 된 주인집 할머니가 그를 가엽게 여겨 일하는 곳을 목화밭에서 집 안으로 옮겨주었다. 일은 훨씬 편하고 좋았다. 주인집 사람들의 음식을 나르는 일이 그가 하게 된 일이었다. 단, 조건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화내지 말 것, 방에 들어가도 없는 듯이 행동할 것.

 그렇게 시간이 흘러 그도 성인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여전히 정신이 온전치 않았고 주인집에서 하는 일은 음식을 나르고 시중을 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어찌보면 평화로운 그 생활을 박차고 나오기로 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목화밭과 그 집을 떠나 큰 도시로 떠났다.

▲ 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의 주인공 '세실'은 철저하게 자신의 진짜 얼굴과 목소리를 숨긴 채 백인을 위한 말과 표정으로 살면서 백악관에 입성해 34년간 총 8명의 대통령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당장 먹을 것도 잠잘 곳도 입을 것도 없었다. 그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곳에서의 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힘든 시간이었다. 결국 그는 어느 호텔 주방으로 몰래 들어가 케이크를 훔쳐 먹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주인집에서 음식을 나르고 시중들어주었던 경험이 바탕이 되어 그는 그 호텔 웨이터로 취직하게 된다. 호텔에서 그에게 요구한 조건이 있었다. 진짜 얼굴을 숨기고 살 것, 그들의 마음을 읽어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

 그를 눈여겨 본 한 남자가 있었다. 백악관의 인사담당자였던 남자는 그를 백악관의 버틀러(Butler, 집사, 하인)로 고용한다. 손님들이 어떤 말을 하든 그들의 마음을 읽어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하고 원하는 행동을 했던 그를 지켜봐 왔던 것이다. 그날부터 백악관의 버틀러가 된 그에게 상관은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안 듣고 안 보는 것이다.

 그가 백악관의 버틀러로 34년을 일했다. 1957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시작으로 1961년 케네디, 1964년 존슨, 1969년 닉슨, 1974년 닉슨의 두 번째 임기, 1974년 포드, 1977년 카터, 1986년 레이건 대통령이 그의 시중을 받았다.

 그가 목화밭을 떠난 이후로 사람들은 그에게 다양한 조건을 걸었다. 하지만 그에게 요구한 것은 한 가지였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말 것.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말과 원하는 표정, 원하는 행동을 하는 것뿐이었다.

▲ '세실'의 아들 '루이스'. 루이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이다. 흑인에 대한 각종 차별정책에 정면으로 맞서며 아버지인 세실과 전혀 다른 모습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의 아들은 달랐다. 그의 품을 떠나 남부에서 대학을 다닌 아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세상을 향해 목청 높여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아들의 안전을 걱정한 그는 언제나 그런 아들이 불안했고 못마땅하여 오랜 시간 연락마저 끊고 살았다. 아들 역시 자신의 목소리를 숨긴 채, 그들이 원하는 말과 행동만 하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부인으로부터 백악관의 만찬에 버틀러가 아닌 게스트(Guest, 손님)로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의 권리를 위해 애쓴 점을 대통령이 높이 평가한 것이다. 만찬장에서 그는 생존을 위해 진짜 얼굴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얼굴을 만찬장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다른 버틀러들을 통해 보게 되었다. 그, 본인의 얼굴을 본 것이다. 평생 버틀러 일을 좋아하며 일에만 매진해서 살았던 그였지만, 그날 그 얼굴들을 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는 백악관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은 '세실', 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의 주인공이다. 세실은 자신이 흑인이기 때문에 숨겨야만 했던 자신의 진짜 얼굴을 되찾고 싶었다. 백인이 원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말을 자신의 목소리로 내고 싶었다. 흑인이기에 피해왔던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로 한 것이다.

▲ 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의 세계 각국 포스터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세실의 실존 인물은 '유진 엘렌(Eugene Allen)'. 실제로 34년 동안 8명의 대통령(닉슨 대통령은 재선했다)을 모셨다. 유진 엘렌은 1950년대 남부에서 태어나 대규모 목화농장의 노예에서 인생을 시작해 권력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대통령에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탄생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미국은 언제나 가장 중요한 국가의 가치로 '자유'와 '평화'를 내세운다. 하지만 미국에서 모든 국민에 대한 진짜 '자유'와 '평화'가 이뤄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1960년대만 해도 식당과 버스를 비롯한 공공장소에는 WHITE(백인)와 COLORED(유색인종)가 앉는 구역이 구분되어 있었다. 백인우월주의를 내세우는 집단 KKK는 흑인에 대한 광기 어린 무차별 폭력을 일으키기도 했다. J.F.케네디 대통령은 "공공장소에서 흑인 차별은 없다"며 완전히 평등한 나라 미국을 외쳤지만 그 연설 후 한 백인 남성에 의해 총살당했다.

 뿐만 아니다. 1980년대 세계 최대 음악 전문 방송이었던 MTV는 당대 최고의 스타였던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빌리 진, 1983)' 뮤직비디오를 방송 금지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흑인이 '인간'으로서 백인과 동등한 대접을 받은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미국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민주주의가 미국에서 탄생했음을 자랑스러이 여기며 자유와 평등의 나라라고 외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미국이 자랑하는 민주주의도 자유도 평등도, 온 국민이 아니라 백인을 위한 것이었다. 흑인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서는 안 되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200년 동안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미국이 자행해 온 그 범죄의 역사가 영화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에 담겨있다. 그리고 그 범죄의 역사는 '세실'을 통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역대 대통령의 모습을 보게 하고, 세실의 아들 '루이스'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찾고자 처절하게 싸워온 흑인들의 모습을 보게 한다.

 미국 내에서 인종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다만 그 차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 뿐이다. 흑인, 인디언, 히스패닉, 아시아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우월의식은 미국 사회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지점에서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대한민국 교육법에 명시된 교육이념이 떠오른다. '홍익인간 이화세계(弘益人間 理化世界)' 널리 모든 인간이 이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한 선조들의 철학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바로 홍익을 기준으로 하는 민주주의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