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자 박사는 《일제강점기 문화재 정책과 고적조사》에서 일본 관학자에 의해 진행된 고적조사가 졸속으로 이루어졌다고 밝혔다.이 박사는 “조선총독부는 1916년부터 1920년 ‘고적조사 5개년 사업‘을 전개했는데 실제 조사기간이 길지 않다. 하나의 유적이나 고적에 대해 많게는 4~5일, 적게는 하루나 이틀 정도로 처리했다”라며 “고적 조사의 원칙은 원상태를 유지하고 그것을 고고학적으로 규명하는 것인데 일제의 고적조사는 유물수습 차원이라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라고 했다.이어 연구총서에서 밝힌 수탈의 주요내용을 살펴본다.▶ 일제가 진행한
사단법인 국학원(원장 권나은)은 제212회 국민강좌에 이찬구 박사를 초청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홍익인간 정신”이라는 주제로 개최하여 6월 10일(목) 국학원 유튜브를 통하여 진행한다.이번 국민강좌에서 이찬구 박사는 “‘홍인인간’ 정신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건국이념이 된 계기와 역사에 관해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이찬구 박사는 최근 교육기본법에 명시된 “홍익인간” 문구를 삭제하려는 법률안 개정안 사태를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 ‘홍익인간’ 정신은 가깝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헌법정신의 기초가 되었고, 1948년 대한민국 헌법 정신의
소왕릉은 선화공주와 관련된 설화를 깃들어 있는 익산 소왕릉 발굴현장에서 그와 관련된 자료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봉토나 석실의 규모와 품격은 왕릉급임을 확인했고 글자가 없는 묘표석 2개가 발견됐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의 허가를 받아 익산시(시장 정헌율)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가 시행한 익산 쌍릉(사적 제87호) 중 소왕릉에서 묘표석이 확인됐다.전북 익산시 석왕동 6-11번지 일원 익산 쌍릉(사적 제87호)은 백제 시대 무덤으로, 대왕릉과 소왕릉이 180m가량 서로 떨어져 있다. 익산 쌍릉은 문헌 기록에 의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와 함께한 만주지역 항일운동지 역사탐방 둘째 날 일정은 고구려의 유적지를 찾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고구려는 주몽이 죽고 2대 유리왕 때 수도를 환인현 졸본성에서 집안현 국내성으로 옮겼다. 우리도 그 루트를 따라 집안현으로 이동했다. 집안현에서는 광개토대왕릉비와 장수왕릉, 고구려 고분군 등을 볼 수 있어 고구려유적지를 대표한다. 또한 압록강과 접하여 북한의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다고 하니 이래저래 기대가 큰 답사지였다.광개토대왕비 입구에 다다르니 삼족오와 천마의 그림이 그려진 담벼락들이 보였다.
변한과 가야의 성립과는 어떤 관계일까? 광개토왕의 남정을 가야사의 시기구분으로 보는 것은 정당한가? 국정과제의 하나인 가야사 연구와 관련하여 가야의 기원과 시기구분, 국가적 성격, 주변국가와의 관계 등 쟁점사항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된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고학회, 한국상고사학회가 공동으로 오는 21일과 22일 양일 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제1회 가야사 기획학술심포지엄-문헌과 고고자료로 본 가야’를 개최한다.첫날인 21일 ‘가야사와 가야고고학의 연구 경향’을 주제로 강동
“하늘은 깊고 고요함에 온 누리에 막힘이 없이 가득하고, 땅을 가득 품고 있음에 그 뜻은 언제 어디에나 막힘이 없이 펼쳐진다. 겸허한 마음으로 항상 참마음을 닦아 하늘의 뜻을 살펴 정진해 나간다면 마침내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이다. 땅에 새긴 하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천제단의 건설이었으며, 참으로 성스러운 제단이라는 뜻에서 참성단이라고 한다. 그리고 항상 경천애인하라. 그러면 너희 사람들 속에 하늘과 땅은 조화를 이루어서 하나가 될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국가를 건국하신 국조 단군왕검께서는 백성을 다스리고 통치할 대상으로 여
고구려 역사연구 전문가 윤명철 동국대 교수는 오는 11월 16일 오후 1시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2층에서 광개토태왕 붕어 1605주기 기념 특강을 한다. 이날 ‘역사에서 미래로’를 슬로건으로 광개토태왕의 세계관과 국제질서 재편 정책을 논한다.이날 특강을 통해 현재까지 밝혀진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경영했던 광개토태왕을 주제로, ▲고구려는 어떤 존재인가? ▲광개토태왕의 세계관과 광개토태왕릉비의 미학 ▲ 광개토태왕의 국제질서 재편정책을 살펴볼 수 있다.윤명철 교수는 고구려를 기마민족 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대륙과 해
답사 셋째 날. 집안에서 아침이 밝았다. 시간은 한국보다 1시간 늦지만 해 뜨는 시간은 비슷했다. 일어나자마나 커튼을 열어보니 창문 밖으로 보이는 국내성 성벽이 어젯밤과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오늘은 아침 식사 전, 모두 함께 압록강 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새벽 5시 30분, 먼저 호텔 주차장에서 단전치기와 체조로 뻐근했던 몸을 풀어주었다. 둥글게 모
고조선 시대로 대표되는 우리 상고사는 그 동안 왜곡의 실체가 파헤쳐 지기도 했고, 꾸준한 연구 노력과 고고학적 발굴 성과 등으로 아직까지는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예전에 비하면 많은 성과가 있었음에는 틀림없다.역사교과서에서 고조선 역사가 부활이 되고, 고조선과 단군관련 학술성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서적들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제는 반만년 역사라는
7월 중순 중국 집안(集安)도 더웠다. 압록강 너머의 내륙에도 태양 빛은 따갑게 내리 쬐였다. 광개토대왕비를 관람하고 이제 언덕길을 오른다. 광개토대왕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太王陵’-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375~413, 재위 391~413) 능을 알리는 표지석에는 ‘태왕릉’이라 표기하고 태왕의 일대기를 간략하게 새겼다. 태왕릉은 집안에 있는 고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