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란 무엇인가?말모이란 말을 모은다는 뜻으로 말을 모으는 운동이자 편찬하고자 하였던 사전의 이름이다. 영화 는 엄유나 감독, 영화배우 유해진(김판수 역), 윤계상(류정환 역) 주연으로 2019년 1월에 개봉된 영화이며, 대일항쟁기 때 한글이 사라질 위기에서 조선어학회가 한글 사전을 만들었던 이야기이다.영화는 일제가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하여 민족정신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의 말과 글을 금지하였고 급기야 1942년 조선어학회를 항일독립운동단체로 몰아 관련 인사들을 대거 체포 및 투옥했던 ‘조선어학회 사건’을 배
편집자 주K콘텐츠에서 한국만의 고유한 소재로 독립운동을 다룬 영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민성욱 국학 박사가 국학의 시선으로 독립운동 관련 영화를 평합니다.산모퉁이를 돌아 외딴 우물가에 가면 한 남자가 홀로 서 있다. 그리고 그 남자는 말없이 우물을 들여다본다. 우물 속에 비친 그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듯 파란 바람이 분다. 그를 온전하게 맞이하는 것은 하늘뿐이었고 현실은 항상 모진 바람이 되어 꿈같이 사라졌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시인의 길임을 그는 굳게 믿고 있었다. 그가 바로 주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1919년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 함께 수감된 7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옥중에서도 만세 운동을 하며 조국 독립의 염원을 담아 지어 부른 노래, ‘대한이 살았다’의 가사 중 일부이다. 작곡가 정재일은 참혹한 절망 속에서도 내일의 조국 독립을 염원하며 노래했던 그들을 대한민국 모두가 잊지 않도록, 또 모두 기억할 수 있도록 남겨진 노랫말에 선율을 입혔다고 한다.서울 서대문구에 건립된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
국토교통부(장관 변창흠)는 조달청, 지자체 등과 함께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공적장부 일본이름 지우기”를 추진한다고 밝혔다.이는 토지·임야대장, 등기부등본 등 공적장부에 일본식 이름으로 남아있는 5만 6,079건에 대하여 일제히 정비하는 사업이다.광복 이후 75년이 지나도록 공적 장부에 일본식 이름이 남아 있는 이유는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 소극적으로 진행된 데다, 일제 강압에 못이겨 창씨개명한 한국인 명의 부동산에 대해 후손들이 상속 절차 등을 밟지 않았기 때문이다.“공적장부 일본이름 지우기” 사업에 따라 일본식 이름으로 등록된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한용운(1879.8.29.~1944.6.29.)선생을 2019년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였다”라고 밝혔다.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은 2019년 6월의 독립운동가 한용운 선생의 공훈을 기리는 전시회를 6월1일부터 30일까지 독립기념관 야외 특별기획전시장(제5·6관 통로)에서 개최한다. 한용운 사진 등 10점을 전시한다.서울 성북문화원은 만해 한용운 선생 입적 75주기 다례재를 6월 29일 오전 10시 서울 성북구 심우장에서 개최한다. 또 (재)선학원은 이날 오후 4시 서울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사람의 한 발자국이 더 낫다.”대일항쟁시대,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자 하였던 스토리를 담은 영화 ‘말모이’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결국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는 사람이며, 그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그 동안 ‘암살’, ‘밀정’ 등 대일항쟁을 주제로 만든 영화들이 많이 있었다. 대일항쟁기의 역사는 아프고 슬픈 역사이기에 영화 소재로는 자주 등장하였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면 흥행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다양한 관점과 새로운 해석으로 대일항쟁의 역사를 다시 쓴 영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있습니다]“민들레가 왜 민들레인줄 아니? 문밖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다고 민들레야~!”우리말 큰사전을 만들기 위해 위험천만하게 전국 팔도에서 말모이를 하던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 분)이 어린 순희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에게 이 말을 가르친 것은 그의 아버지 류완택(송영창 분)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이 말을 하는 배우 윤계상의 표정이 시렸다.누구보다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고 국민을 깨우쳐야 독립한다는 굳은 의지로 자식을 키웠던 아버지가 이제는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다. 중학교 교장으로 있으면서 자기
신명균(申明均, 1889-1940)의 호는 주산(珠汕)이다. 서울출신이다. 그의 모습은 크게 넷으로 나뉜다. 한글학자, 교원, 출판사 경영, 대종교인이다. 먼저 한글학자의 모습이다. 그는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1911년 주시경을 만나서 조선어강습원에 들어간다. 조선어강습원은 중등과와 고등과가 있었는데, 중등과는 3회(1912), 고등과는 1회(1913)
“(일본의) 왜곡된 역사교육은 다음 세대들에게 그릇된 역사상을 심어주고 그것을 통해 학생들이 민족적 편견과 우월의식을 이어가게 된다면 그것은 결코 일시적인 문제일 수 없다.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되어가지만, 일본이 지속적으로 역사 훼손을 이어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침략이 계속되는 것이다.”일본의 침략사관이 2010년 국사교과서에서
“이 땅의 판도는 오늘부터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아니라, '조선(朝鮮)'이라 부른다. '한성(漢城)'은 '경성(京城)' 이라 한다. 저들은 '조선'보다 '대한제국'에 미련이 남아 있고, 경성보다 한성에 연연하며 대일본제국의 신민(臣民)이라기보다 한민족(韓民族)이기를 원하지만 나를 믿고 지시대로 봉공(奉公)하라.”1910년 10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