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제4대 세종대왕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의 별서 무계정사의 활터자리에 세워진 '무계원'. 사진 종로문화재단 제공. 인왕산 자락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인 부암동의 한 골목 봄철 철쭉이 핀 담장길을 따라가면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무계원(武溪園)’이 나타난다. 무계원은 조선 4대 세종대왕과 소헌황후 심씨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아들 안평대군 이용李瑢이 당대 문신, 학자들과 교류하던 별서인 무계정사의 활터 자리에 세워진 한옥형태의 문화체험공간이다. 무계원 인근에는 불과 몇 미터 위쪽에 근대 단편소설의 선구자로 ‘운수 좋은 날’을 쓴 현진건 선생의 집터가 나오고, 그 위로 ‘몽유도원도’를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두어 칸 무계정사를 세우고 1천 그루의 복숭아나무를 심은 안평대군의 집터가 나온다. 무계원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계단을 따라 올라간 경사진 부지 위에 팔작지붕에 홑처마로 소박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가장 큰 건물인 사랑채를 따라 오른편으로 돌아서면 숨은 듯 작은 공간이 펼쳐진다. 꽃들과 여러 종류 나무로 가꾼 작은 정원에 놓인 낮은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사랑채의 툇마루가 있다. 무계원의 사랑채. 사랑채를 따라 뒤뜰로 가면 소담한 정원이 나온다. 사진 강나리 기자. 이 툇마루에 앉아 눈을 감으면 숲속인 듯 새소리와 고요함이 밀려오고 책을 읽다가 기대어 깜빡 졸음에 빠지면 더없이 평안해지는 곳이다. 비 오는 날 들른다면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에 복잡한 뇌 속, 가슴 속이 씻겨나갈 수도 있겠다. 다시 대문 앞쪽으로 돌아와 계단 위 핵심 공간으로 들어서면 왼쪽 행랑채 상설전시관에서 무계원 이름의 기원이 되는 조선 초기 산수화 ‘몽유도원도’의 영인본과 디지털 아트를 만날 수 있다. 몽유도원도는 대표적인 해외 반출 문화재로 진품은 현재 일본 덴리대학 부속 덴리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현재 무계원은 조선 초 안평대군 당시의 한옥 형태가 아니다. 어린 임금 단종을 둘러싸고 권력의 대척점에 있던 형 수양대군(세조)에 의해 역모죄로 사사된 안평대군의 집터는 흔적 없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역모죄 죄인의 집터는 반역의 기운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하여 그 누구도 살지 못하도록 파훼하여 저수지를 만들거나 수풀로 만들었다. 일례로 양반, 상놈, 노비, 스님 모두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조선시대 최초의 공화주의자 정여립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선조는 정여립을 반역으로 몰아 기축옥사를 일으켰고 조정에서는 혈맥을 끊어 버린다고 정여립의 집터를 파헤치고 숯불로 지졌으며, 이후 제비산에 어떤 건물도 지을 수 없도록 했다. 그런데 무계정사를 지은 안평대군은 시와 글씨, 그림에 능한 예술가로 조선은 물론 명나라 황제와 사신들에게서 명필로 칭송받았다. 게다가 아버지 세종의 명으로 북방에서 확보한 4진 중 회령을 맡아 함경도에서 문제를 일으키던 야인들을 토벌한 문무에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그런 이유로 안평대군이 머문 무계정사 터에는 왕기가 서렸다는 이유까지 덧붙여져 집터가 완전히 사라졌다. 오로지 남은 흔적은 무계정사 안 바위에 ‘무계동’이라고 새긴 것인데 현재는 안평대군의 집터가 사유지되어 그 안에 있는 바위를 쉽게 볼 수 없다. 현재 무계원은 1910년대 서화가 이병직이 지은 한옥 '오진암'을 이축한 것이다. 사진 종로문화재단. 지금 무계원 건물은 1910년대 종로구 익선동에 지어진 유서 깊은 한옥으로, 조선말 서화가이자 미술애호가였던 송은 이병직의 집 ‘오진암’을 이축한 것이다. 오진암은 1970년대 삼청각, 대원각과 더불어 제3공화국 정치사의 중요 장소로 한 시대를 풍미한 한정식 요정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한 논의가 이루어진 역사적 장소이기도 했다. 2010년 오진암 자리에 관광호텔이 신축되면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김영종 종로구청장의 노력과 각 분야 장인들의 참여로 현재 무계원 자리로 옮겨 복원했다. 무계원을 찾은 이들 중 옛 오진암을 기억하는 이들도 있어 “예전 오진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가 영화 ‘장군의 아들’을 촬영한 곳이다”라며 추억했다고 문화해설사는 설명한다. 안평대군의 꿈 속 무릉도원 무계정사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가 당시 왕실 최고의 화원 안견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세계는 ‘몽유도원도’에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2편 계속) ▶ 대중교통으로 무계원(종로구 창의문로 5가길 2)을 가려면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 5호선 광화문역 2번 출구,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부암동주민센터 또는 무계원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부암동 주민센터 오른편 골목으로 3분 정도 걸어 오르면 무계원에 도착한다.
자신의 하루를 매일 기록하는 일은 삶을 그냥 흘려보내는 게 아니라 오늘의 경험을 내일의 성장으로 이끄는 발판이 된다. 특히 청소년기 일기를 쓰는 시간은 중요한 성장의 순간이 된다.자신만의 꿈을 찾기 위해 갭이어 과정을 밟는 열여섯 살 조이현 학생(벤자민인성영재학교 경기학습관) 학생은 지난 10월 21일 인간성회복운동추진협의회가 주최한 전국 건강한 가정, 건강한 나라 만들기 ‘2023 사랑의 일기 큰잔치 세계대회’에서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수상했다.다음은 일기가 ‘나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소
비비안초이갤러리에서 9월 1일 개막한 김연수ㆍ로지박ㆍ임진실 작가의 3인전 《수집된 순간들(Collection of Moments)》은 회화의 기법 면에서 서로 상이한 세 작가가 과거의 시공간에서 기억된 내면속 정경을 작가 특유의 시각적 언어로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기억과 무의식의 경계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조명한다. 김연수ㆍ로지박ㆍ임진실 작가는 무심히 지나친 공간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저장된 순간을 작품에 담는다. 무의식 속에 존재했던 공간과 사물은 그 순간과 함께 기억된 작가의 미묘한 감정과 현재의 내면 의식과 교차되어 몽환
신사동 갤러리LVS는 11월 24일(목)까지 김동준 작가의 달항아리 개인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LVS 본관에서 15점, 종로구 부암동 응운당(鷹雲堂)에서 5점을 선보인다. 달항아리는 조선 후기 17세기 말부터 18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조선 백자로 온화한 백색과 둥글게 곡선을 이루는 모습이 보름달을 닮았다 하여 달항아리로 불렸다. 또한, 고고한 자태가 느껴지는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가 가장 잘 살아있는 예술품이다. 달항아리의 백색은 아무것도 없는 듯 하지만 모든 것을 가득 머금은 듯한 여유로움과 품
서울미술관이 개관 10주년 기념전 《두려움일까 사랑일까 Fear or Love》를 4월 13일부터 9월 18일까지 약 6개월간 약 800평의 전시 공간에서 한국 근현대 거장 31명의 주요 작품 140점을 선보이는 개관이래 최대규모 전시로 개최한다.지난 2012년 8월 29일, 안병광 회장이 서울시 종로구 부암동에 개관한 서울미술관은 개관 후 3600여 일의 기간동안 누적관람객 100만 명을 기록했다. 한국 근현대를 대표하는 명작을 포함하여 소장품 전시부터 동시대에 왕성하게 활동하는 젊은 현대미술작가를 소개하는 전시까지, 서울미술관은
사람의 체온을 일반적으로 36.5도라고 한다. 그럼 사랑하면 체온도 변할까? 서울 부암동에 있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연애의 온도 두 번째 이야기-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전展은 흥미롭게 사랑하면서 변화하는 감정을 온도로 표현하여 전시하였다.일상에서 설레는 사랑을 시작해 끝내고 다시 시작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표현한 온도에 따라 전시는 마치 영화를 관람하거나 소설을 읽는 듯 흘러간다. 28팀 작가들은‘일상의 온도’를 시작으로 ‘설렘의 온도’, ‘사랑의 온도’, ‘애증의 온도’, ‘이별의 온도’, 다시 ‘시작의 온도’까지 6
“풀이며 벌레여, 그 모양 너무 닮아 부인이 그려 낸 것 어찌 그리 교묘할꼬. 그 그림 모사하여 대전 안에 병풍 쳤네. 아깝도다. 빠진 한 폭 모사 한 장 더 하였네.”조선 19대 왕 숙종이 화가 신인선의 그림을 흠모하여 쓴 글이다. 조선의 화가로 안견, 김홍도, 신윤복, 장승업 등은 널리 알려졌으나 신인선(1504~1551)의 이름은 낯설다. 우리에게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이 훨씬 더 익숙하다.서울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 서울미술관 3층 단편전시회 공간 가장 안쪽에서 ‘화가 신인선-신사임당 특별전’을 하고 있다. 전시는
나무 위 따지 않은 감을 쪼는 까치와 함께 물들어 가는 늦가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석파정石坡亭에도 초겨울을 향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물과 구름이 감싸 안은 집’이라 불리는 석파정은 조선의 왕 고종의 공간이었다. 나이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노송 ‘천세송’과 흥선대원군이 묵란도를 그리던 ‘석파정’, 노부부에게 자식을 선물해 소원을 이루어주었다고 하여 웨딩촬영 명소가 된 너럭바위. 곳곳에 단풍은 아쉽게 남고 낙엽이 쌓이면서 더욱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석파정은 주변에 난 도로와 길이 고도가 낮아 어디에서 봐도 쉽게 눈에
조선시대 세속의 영화와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에 귀의한 선비들이 전원이나 산속 깊은 곳에 따로 집을 지어 유유자적하며 글을 짓거나 책을 읽고 때로 벗을 초대해 즐기기 위해 만든 정원을 ‘별서정원’이라고 한다.양산보가 지은 담양 소쇄원, 예천 선몽대 등이 대표적인데, 최근 별서정원에 대한 역사성 논란이 일어났다.2019년 명승으로 지정된 서울 성북구 소재 별서정원으로, 200년 만에 개방된 비밀정원으로 조명받은 ‘성락원’이 문제가 되었다.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이 지었다고 했으나 그런 인물이 없었으며, 연대도 1903년 이전으로
숨 막히는 폭염이 지나가고 있는 서울의 도심 속. 그래도 북한산, 인왕산 등 잠시 산자락에 접어들면 숲이 펼쳐져 휴식을 선물한다.그중 부암동 석파정은 외부에서 짐작할 수 없는 숨은 비경이다. 석파정 서울미술관 4층에 올라 밖으로 나가는 유리문을 열고 나서면 이런 장관이 숨어있을 수 있었을지 놀라게 된다.‘물과 구름이 감싸 안은 집’이라고 명명된 석파정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흥근의 별서였다. 흥선대원군이 절경에 반해 소유하고자 했으나 김흥근이 거절하자 고종을 머물게 함으로써 임금이 머문 곳에 신하가 거주할 수 없어 김흥근이 넘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