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석어당 2층에서 본 풍경. 사진 문화재청 궁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덕수궁 석어당 2층에서 본 풍경. 사진 문화재청 궁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올봄 살구꽃이 활짝 핀 덕수궁의 주요 전각을 내부까지 관람하며 궁궐에서 봄날을 보낼 기회가 왔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소장 권점수)는 봄을 맞아 3월 22일부터 28일까지 매일 2회(오전 10시, 오후 3시 30분) 덕수궁 주요 전각 내부를 관람하며 살구꽃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덕수궁은 조선시대의 궁궐로서 처음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었다. 덕종(德宗)의 맏아들 월산대군(月山大君)의 사저(私邸)였다. 선조(宣祖)가 임진왜란 뒤 환도(還都)하여 경복궁이 불타 없어진 바람에 이곳에 머물면서 궁으로 사용되었다. 광해군 때에는 경운궁, 인조 때에는 명례궁(明禮宮)으로 불리다가 순종 때 덕수궁(德壽宮)으로 개칭하였다. 고종황제가 1907년 왕위를 순종황제에게 물려준 뒤에 이곳에서 계속 머물게 되면서 고종황제의 장수를 빈다는 뜻의 덕수궁(德壽宮)으로 고쳤다.

덕수궁 석어당 봄. 사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덕수궁 석어당 봄. 사진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덕수궁관리소

1904년의 큰불이 나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다.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들을 지으면서 본래 궁궐 공간의 조화를 잃어버렸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정문이 바뀐 것이다. 덕수궁의 정문은 남쪽에 있던 인화문이었다. 화재 후 다시 지으면서 동쪽에 있던 대안문을 수리하고 이름도 대한문(大漢門)으로 고쳐 정문으로 삼았다.

덕수궁은 구한말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전통목조건축과 서양식의 건축이 함께 남아있는 특이한 조선왕조의 궁궐이다.

‘덕수궁 전각 내부 특별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전문 해설사의 깊이 있는 해설을 들으며 덕수궁의 5개 주요 전각인 중화전, 함녕전, 석어당, 즉조당, 준명당에 직접 들어가 궁궐 내부 공간을 관람할 수 있다.

석어당(昔御堂)은 궁궐에서 보기 드문 2층 목조 건물로, 참여자들은 석어당 2층에 올라 만개한 살구꽃을 감상하며 덕수궁의 봄을 흠뻑 느낄 수 있다. 석어당은 당시 선조가 주로 사용하였고 이러한 연유로 ‘옛날 임금의 집’이란 뜻인 석어당(昔御堂)이라 하였다. 영조는  ‘석어당(昔御堂)’ 세 글자를 직접 써서 써서 즉조당(卽阼堂)에 현판에 걸게 하였다.  유서 깊은 이 건물은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불타버렸고, 지금 석어당은 1905년에 중건하였다.

중화전(中和殿)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이나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하고 공식적인 의식을 치르는 전각이다. 함녕전(咸寧殿)은 고종의 침전으로 1919년 고종이 승하한 장소이기도 하다. 즉조당(卽阼堂)은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난갔던 선조가 난이 수습된 뒤에 돌아와 시어소(時御所)로 사용하였던 건물이다. 1623년(인조 즉위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이곳에서 즉위한 뒤부터 즉조당이라 불렀다. '임금이 즉위한 곳'이라는 의미이다. 대한제국 초기 잠시 정전으로 사용되었고 후에는 집무실인 편전으로 활용되었다. 준명당(浚明堂)은 1904년 덕수궁 대화재 이후 재건하는 과정에서 세운 건물이다. 고종은 준명당을 간택을 위하여 드나드는 처자들의 출입 장소나 영정이나 능을 봉심한 신하들을 만나는 장소로 사용하였다. 나중에 고종의 외동딸인 덕혜옹주의 유치원으로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특별해설은 1시간 30분가량 소요된다. 중학생 이상의 일반인이면 누구나 무료(덕수궁 입장료 별도)로 참여할 수 있다.

3월 15일 오전 11시부터 궁능유적본부 통합 누리집에서 선착순으로 회당 15명씩 신청 가능하다.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전화(02-751-0740)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