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조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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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부엌

                                                       시인 조재도

 

 

대낮에도 어머니의 부엌은 어두컴컴하다
질그릇 빛 그늘에 깊이 잠겨 있다

 

아침 해 발끈 떠 방안에 환히 비쳐올 때
달고 슴슴한 밥 짓는 내음이
문틈을 헤집고 올라도 오던 곳

 

솥뚜껑 여닫는 솰그랑 소리
똑똑똑 마늘 다지는 분주한 소리
먹이고 거두느라 노역의 나날 끊일 새 없던
그곳에서 나는 여러 번 보았다

 

매캐한 솔가지 연기 가슴 앞섶에 스미면
눈 깜작이며 지우던 눈가의 물기를
수심의 빛 눈썹 끝에 서려
재처럼 가라앉던 긴 긴 한숨을

 

귀 떨어진 종구락과 김칫독이 놓여도 있던 곳
찬장 밑 생쥐가
입가심할 무 조각 물어도 가던 곳

 

한나절 밥때 되어 밥 먹으란 소리에
앉을개 놓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점심밥 먹던

 

그곳, 감자도 고구마도
어쩌면 우리 육남매까지도
알맞게 구워낸 태반(胎盤)과도 같은.

 

출처  :  조재도 시집 《어머니 사시던 고향은》(열린서가, 2023)에서.

 

 

저자 조재도 시인 소개

조재도 시인
조재도 시인

 

 

 

 

 

 

 

조재도 시인은 1957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어려서 청양으로 이사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전학 가 홍익중학교와 서라벌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7년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입학했다. 1981년 졸업과 함께 대천고등학교에서 근무한 이후 1985년 <민중교육>지 사건에 이어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두 차례 해직되었다. 1994년 복직 후 2012년 조기 퇴직하기까지 충남의 여러 학교에 근무하면서, 15권의 시집과 다수의 책을 펴냈다.

시인은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농촌의 생활 문화와 정서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해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이 ‘고향 시편’ 연재하게 되었다. 우리가 아무리 기계문명의 시대를 산다고 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의 삶의 자취가 애틋하게 남아 있다.

조재도 시인은 이 연재가 앞서 살다 간 사람과 뒤따라 오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