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 Behold Medusa at the forest of the blind, 2020, oil on canvas ,  194x260cm. 이미지 K&L미술관
눈먼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 Behold Medusa at the forest of the blind, 2020, oil on canvas , 194x260cm. 이미지 K&L미술관

대학 시절부터 40년 가까이 한 차례도 붓을 놓지 않은 작가 권여현은 회화, 영상, 퍼포먼스, 입체, 설치에 이르는 다양한 작업으로 실험과 도전을 지속하면서도 ‘회화의 본질’인 물성과 감각을 깊이 탐구해왔다.

K&L미술관은 2024년 1월 9일부터 3월 17일까지 개최하는 권여현 개인전 《권여현, 춤추는 사유》전에서 권여현의 열정적 작업 여정의 미술사적 의미와 그 독자적 가치를 다시 한 번 짚어보고 전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깊은 사유의 세계를 새롭게 가늠해보고자 한다. 회화, 드로잉, 영상 등 8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 주제인 ‘춤추는 사유’는 존재를 제한하는 언어적 의미 규정의 덫을 넘어 ‘오염되지 않은 사유의 터’를 향한 권여현의 치열하면서도 초월적인 사유의 과정을 나타낸다. ‘춤’은 신체적 영역에, ‘사유’는 정신적 영역에 존재하여 춤과 사유의 언어적 결합은 다소 역설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권여현의 작업 세계는 두 영역의 결합을 상상하도록 한다. 권여현은 현실의 세계에 닻을 두면서도 초월적 상상의 세계를 향한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이성, 합리적 분석, 언어의 의미망을 지속적으로 탈주하는 작가의 작업 과정과 사유는 신체가 표현하는 춤처럼 유연하고 자유로우면서도 실존적이다.

낯선곳의 일탈자들 Deviators in Uncanny place,2023-4O1A1771,  oil on canvas ,  73x91cm. 이미지 K&L미술관
낯선곳의 일탈자들 Deviators in Uncanny place,2023-4O1A1771, oil on canvas , 73x91cm. 이미지 K&L미술관

또한 ‘춤’은 권여현 회화의 본질인 ‘회화적 물성’과도 연관되어 생각해볼 수 있다. 권여현은 실존적 감각의 표상으로 회화의 물성을 지속적으로 연구해왔다. 자유로운 표상을 향한 작가의 속도감 있는 붓질, 우연함을 허용하는 화면 구성, 작가의 신체적 제스처는 춤의 자유로움과 비정형성, 유동성을 떠올리게 한다. 권여현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유와 꿈,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감각의 세계, 비언어적 춤과 같은 원초적인, 초월적 사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메시지를 담아왔다.

이번 전시는 시공간의 지층 같은 작품 세계의 중요 개념들을 한 화면에 압축한 듯 펼쳐지는 대형 회화 신작들을 새롭게 선보인다. 이를 중심으로 주요 근작들과 모태와 같은 초기 대형 회화를 한 자리에서 펼친다. 욕망과 억압, 자유에 관한 주요 근작 〈일탈자들〉(2020-)작업 군, 원초적 숲과 실존적 감각에 관한 〈눈먼자의 숲에서 메두사를 보라〉(2018-20) 연작, 권여현 작품 속 사유의 근원이 되는 <내가 사로잡힌 철학자들>(2020), 90년대 대작 <비논리적 삼각형> 등 권여현 작업의 핵심 지점들을 살펴본다. ‘연작마다 치열한 변화와 폭발적 확장을 이어온 권여현의 사유의 흐름은 어떤 지점을 향해 가는가?’에 대한 대답들을 이번 K&L미술관의 전시는 그의 드라마틱한 작업 여정의 궁극적인 지향점과 그 깊이를 가늠해보고자 한다.

낯선곳의 일탈자들 Deviators in Uncanny place, 2023-4O1A1495,  oil on canvas , 227x181cm. 이미지 K&L미술관
낯선곳의 일탈자들 Deviators in Uncanny place, 2023-4O1A1495, oil on canvas , 227x181cm. 이미지 K&L미술관

권여현은 80-90년대 초기 작업에서부터 ‘인간과 세계’라는 실존적 화두를 지속하면서 자아탐구와 집단 기억, 인간과 사회에 대해 고민한다. 90년대 주요 소재인 ‘물맷돌’과 ‘깔때기’는 집단적 기억과 삶의 방식에 대한 심오한 표상이자 권여현의 실존에 대한 작업 여정의 뿌리가 되는 소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물맷돌에서 구체화된 소재인 ‘깔때기’는 규칙과 규율의 세계와 상상과 광기의 세계, 현실 세계와 초월적 세계의 경계를 이어주고 균형을 이뤄주는 중요한 소재로서 권여현의 깊고 넓은 작업 세계와 사유의 출발 지점이자 근원점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맷돌을 개념적으로 표상한 90년대 대형 회화 <비논리적 삼각형>을 다시 선보이면서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의미들을 그 출발 지점에서부터 다시 짚어본다.

낯선곳의 일탈자들 Deviators in Uncanny place, 2023, oil on canvas,  194x390cm. 이미지 K&L미술관
낯선곳의 일탈자들 Deviators in Uncanny place, 2023, oil on canvas, 194x390cm. 이미지 K&L미술관

 

신작 <낯선 곳의 일탈자들>(2023)은 낯선 시공간과 여러 형상이 다층적으로 병치된 대형 회화이다. 화면 속 다양한 요소들은 마치 가장 자유로운 세계 어느 곳에서 각자 자신만의 리듬 속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인다. 디오니소스와 오이디푸스, 오르페우스, 프로메테우스로 이어지는 신화 속 인물들과 60년대 영화와 하드 록과 관련한 대중문화 속 이미지 등 다양한 맥락과 시공간의 형상들이 한 화면에 펼쳐진다. 권여현은 이 작품에서 특히 196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야기되는 사회, 문화적 거대한 변화의 흐름 속 대중문화 소재들을 통해 ‘자유’, ‘욕망과 억압’, ‘탈출구’를 표상함과 동시에 신화에 내재한 좌절의 결말과 이중적 의미 등을 통해 자유와 구속, 욕망과 사회적 억압, 변화와 안주 등 우리의 현실과 깊이 연관된 실존적 주제들의 다층적 의미에 대해 생각하도록 이끈다.

비논리적 삼각형, 1991, Mixed media, 213x303cm. 이미지 K&L미술관
비논리적 삼각형, 1991, Mixed media, 213x303cm. 이미지 K&L미술관

권여현 개인전 《권여현, 춤추는 사유》는 K&L미술관(경기도 과천시 뒷골 2로 19) 전관에서 3월 17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