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가 독도를 품은 섬이라고 하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들로 보면 교통의 최고 오지라 할 수 있죠. 울릉도 사람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살았습니다.”

새벽녘 울릉도 사동항에 입항 중인 울릉크루즈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 강나리 기자.
새벽녘 울릉도 사동항에 입항 중인 울릉크루즈에서 바라본 전경. 사진 강나리 기자.

울릉도 도민에게 겨울은 단절의 계절이었다. 동해 평균 수심은 약 2,000m. 무시무시한 동해의 너울성 파도 때문에 육지와 울릉도를 잇는 항로의 여객선은 연평균 120일 정도 결항 되었다. 특히, 겨울철은 4~5m의 파도 때문에 11월 중순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작은 배들은 휴업에 들어갔고, 육지와 연락선을 끊을 수 없으니 8대 중 1대만 다니는데 열흘씩 고립되기도 했다.

그러다 울릉도민이 비로소 기나긴 단절에서 벗어난 것은 2021년 9월 16일 약 2만 톤급 대형 카페리 여객선 울릉크루즈 ‘뉴시다오펄’이 첫 취항을 하고, 10월 정식 운항하면서부터이다. 다른 선박들이 모두 결항하게 될 때도 태풍이 아닌 한 매일 자정 경북 포항시 영일만항을 출발해 새벽 울릉군 사동항에 입도하고, 오후에 사동항을 출발해 초저녁 포항에 도착하면서 1일 생활권이 유지되었다.

매일 안정적으로 울릉도와 육지를 이어준 울릉크루즈 조현덕 대표(왼쪽)와 크루즈에 탑승한 윤형주 가수. 사진 울릉크루즈 제공.
매일 안정적으로 울릉도와 육지를 이어준 울릉크루즈 조현덕 대표(왼쪽)와 크루즈에 탑승한 윤형주 가수. 사진 울릉크루즈 제공.

매일 1억 원씩 경비가 발생하고 겨울철 적지 않은 적자가 발생함에도 군산항과 중국 웨이하이시 스다오(石島 석도) 간 국제여객선을 임차해 운항토록 만든 이는 울릉크루즈 조현덕 대표(58세), 그리고 조현기 상무(61세) 두 형제이다.

“될 리가 없다. 저 배가 성공한다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며 열패감에 찌들었던 도민들은 ‘뉴시다오펄’호가 사동항에 첫 입항을 하자 천여 명이 몰려 “대대로 가슴에 맺힌 한이 풀렸다. 감개무량하다”라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 안정적으로 사계절 배가 다닐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에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울릉도와 육지 사이에 다리가 놓였다”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그동안 섬에 발이 묶인 도민들이 겪는 고통은 어떠했을까? 가장 문제는 응급환자 발생과 초상이 났을 때였다. 맹장수술처럼 육지에서라면 쉽게 치료할 사고나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부모의 상을 당해도 육지에 사는 자녀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섬에 들어오지 못해 쓸쓸한 장례를 치르기도 했다. 실제 두 형제가 크루즈 선박을 구하던 2021년 3월 사촌 형이 나물을 캐다 산비탈에서 추락해 사망하면서 같은 일을 겪었다.

울릉도의 교통 암흑기가 가중된 것은 2020년 경이었다. 그나마 2천 톤급 쾌속선 ‘썬플라워’호가 다녔는데 세월호 사건 이후 선박 사용 기간인 선령이 30년에서 25년을 줄면서 후속 조치없이 운항이 종료되었다. 더욱 결핍감을 겪은 도민들이 육지의 시내버스 공영제처럼 육지와 연결할 공용 선박을 마련하고자 모금 운동을 통해 1,400만 원 정도를 모았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고립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던 도민들도 “경제대국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버려둘 수 있느냐?”고 들끓었다. 경상북도가 나서서 대형 선박 업체를 공모하고 겨울에 이용자가 적어 적자가 나면 70%를 지원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니 불발되었다.

연 평균 120일 고립되던 울릉도민의 한恨, 기나긴 단절에서 벗어나다

도민들의 발이 된 크루즈 도입을 추진한 조현덕 대표는 울릉도 토종호박을 이용한 호박빵을 개발한 벤처농업인이다.

조현덕 씨는 울릉도 토종호박으로 만든 호박빵, 호박엿, 호박조청 등 특산품으로 성공한 벤처농업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조현덕 씨는 울릉도 토종호박으로 만든 호박빵, 호박엿, 호박조청 등 특산품으로 성공한 벤처농업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조선 고종 때 입도한 울릉도 개척민의 후손으로서 대대로 이곳에 살아온 그는 도민들이 비탈에 심은 호박들을 다 가져오라고 하여 수매해 호박엿 공장을 운영했고, 호박빵을 개발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조 대표는 울릉도에서 호박이 과잉생산되더라도 주민들의 납품을 다 받아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도 지켜가고 있다.

농사를 짓던 그가 크루즈를 임차할 대금을 마련한 것은 2010년도부터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이 크게 늘면서 오른 땅값 덕분이었다. 그것을 조현덕 씨는 “내가 노력하지 않았는데 생긴 불로소득”이라며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 내가 울릉도에 살면서 얻은 혜택이니 이걸 주민들에게 돌려주자”라고 용단을 내렸다.

호박빵으로 성공한 벤처농업인, “땅값이 오른 것은 불로소득, 도민 위해 써야”

땅을 팔아 자금을 마련했으나 선박사업에 초보인 조현기 씨는 국립해양대를 졸업하고 10년간 배를 탄 경험이 있던 형 조현기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독도가 바라다보이는 언덕에 명이나물 농사와 유통사업을 하던 형은 옛 학창시절 인맥을 찾아 현역 선장과 해양공무원, 선박업을 하는 지인들에게서 도움을 얻고 인재를 섭외했다.

울릉크루즈 사업을 함께 출발한 형 조현기 상무. 그는 독도가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명이나물 농사와 유통사업을 한다. 사진 울릉크루즈 제공.
울릉크루즈 사업을 함께 출발한 형 조현기 상무. 그는 독도가 바라다보이는 곳에서 명이나물 농사와 유통사업을 한다. 사진 울릉크루즈 제공.

크루즈 사업은 워낙 비용부담이 크고, 위험요소가 많은 사업이라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두 형제는 “대한민국 학생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한 번 와야 할 것이고, 대한민국 기업체나 기관에서도 많은 사람이 독도에 보고 연수를 온다면 가능하다”라고 뜻을 모았다.

형 현기 씨는 경주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장 김영기 씨를 찾아가 “울릉도 주민이 배가 필요하다. 땅을 팔아 배를 준비할 테니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오고 단체에서 연수를 올 수 있도록 고객을 유치해달라”고 도움을 구했다.

호텔 총지배인과 기업연수원 기획실장, 학교와 기업 등 교육 마이스시장에서 활약하던 김영기 이사가 운영을 맡으면서 울릉크루즈 사업은 현재까지 순항 중이다. 어떠한 날씨에도 안정적으로 출항하는 울릉크루즈에 대한 호응은 컸다.

울릉크루즈 '뉴시다오펄'호의 영업을 책임지는 김영기 이사. 사진 강나리 기자.
울릉크루즈 '뉴시다오펄'호의 영업을 책임지는 김영기 이사. 사진 강나리 기자.

김 이사는 “독도를 찾는 우리 국민이 크게 늘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낸 수익으로 겨울철 적자를 보전할 수 있어 손해는 안 보고 있다”라며 “하루 운항하는데 기름값만 4천만 원이 들고 고용유지와 임대료까지 1억 원이 넘는 경비가 든다. 이제 2년이 넘었지만, 그동안 유지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어려웠다”라고 했다.

조현덕 대표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 돈을 벌면 1/10은 부모에게 보답해라”

김 이사는 조현덕 대표나 조현기 상무 두 형제 모두 평소 해오던 농사와 유통사업에 전념할 뿐 울릉크루즈에서 어떠한 급여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두 형제 모두 인품이 훌륭하다. 자신들이 이루어낸 성과를 굳이 알리려 하지도 않는다. 평소 조현덕 대표를 보면 매우 검소하고 자식들에게는 어떤 면에서 냉혹한 편이다.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주는 것은 화가 될 수 있다. 공부를 시키고 난 후에는 일절 돈을 주지 않고 오히려 돈을 벌면 그중 1/10은 부모에게 가져 오라’는 철칙을 지킨다. 본인도 모친에게 똑같이 실천한다. 조 대표의 사업가 정신을 존경한다.”

조현덕‧조현기 형제는 도민 중 경로회원들 100명을 모집해 자비로 전국 여행을 시켜주는 등 사업수익을 주민이나 승객에게 환원하는 사업을 다방면으로 펼친다. 올해는 지난해 매몰된 광산에서 커피믹스를 먹으며 기적적으로 생존한 광부를 초청해 “바다를 보고 싶다”는 소원을 이루어주기도 했다.

점차 승마, 요트, 크루즈 산업 발달, 울릉 신공항과 크루즈 상승효과 낼 것

현재 울릉도는 2028년 운항을 목표로 공항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울릉크루즈의 미래는 어떨까?

2028년 운항을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울릉도 신공항. 사진 강나리 기자.
2028년 운항을 목표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울릉도 신공항. 사진 강나리 기자.

김영기 이사는 “소득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문화 트랜드나 여행 트랜드가 바뀌고 있다. 앞으로 승마나 요트, 크루즈 산업이 발달할 것”이라며 “비행기와 크루즈가 서로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이다. 짧은 시간에 울릉도와 독도를 만끽할 이들도 있겠지만, 여유롭게 선상 문화를 즐기며 힐링 여행을 원하는 이들은 크루즈의 매력에 빠질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울릉도가 그리는 미래를 이야기했다. “울릉도를 힐링과 친환경을 테마로 난개발이 아닌 체계적인 개발을 한다면 충분히 동양의 산토리니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한 해 2,5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산토리니 면적이 73㎢이고, 울릉도 면적도 72.99㎢로 비슷하다. 게다가 바위섬이 발달한 천혜의 보고이다. 산토리니도 공항이 있지만 크루즈산업과 경쟁보다는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과 700만 해외 동포는 버킷리스트처럼 죽기 전에 독도를 한번 가보고 싶은 로망이 있다. 이곳 동해에는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선부’라는 오늘날의 해군을 두었던 문무왕 전설이 깃들어있다. 울릉도로 가는 길 자체가 여행문화가 되고 다양한 해양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고급스러운 크루즈여행 문화를 만들고 싶다”라고 했다.

겨울 내내 흰 눈꽃으로 뒤덮힌 울릉도 나리분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설국이다. 올해 말레이시아 관광청에서 눈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사진 울릉크루즈.
겨울 내내 흰 눈꽃으로 뒤덮힌 울릉도 나리분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설국이다. 올해 말레이시아 관광청에서 눈 투어가 예정되어 있다. 사진 울릉크루즈.

아울러 울릉도의 아름다운 설국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울릉도 나리분지에는 겨우내 흰 눈이 쌓여 설국이 펼쳐진다. 올해 겨울에는 말레이시아 관광청에서 눈 투어를 올 예정이다. 우리가 일본 홋카이도로 눈 여행을 가는데 남쪽 지방에 있는 사람들이 울릉도를 찾게 할 것이다. 아직은 울릉도 눈 여행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한번 온 분들은 매년 예약을 하고 찾는다”라고 자부심을 나타냈다.

인터뷰를 마치며 김영기 이사는 “울릉크루즈 사업은 부를 축적하기보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본래 목적대로 기업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궁극적인 목적은 도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