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귀부인들은 금 향낭을 많이 찰수록 자랑으로 여겼다.”

고려를 방문한 송나라 사절 서긍(1091~1153)이 지은 《고려도경》 속 기록으로, 우리나라에서 향낭을 오래전부터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향낭은 향을 담은 주머니로, 향은 용도에 따라 다양한 배합 재료와 약재를 섞어 각각 특유의 냄새를 풍겼다. 일반적으로 옷을 보관하거나 노리개를 삼아 몸에 지니고 다녀 해충의 접근을 막기도 했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란불수문 향주머니.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모란불수문 향주머니.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은 2월 큐레이터 추천 왕실유물로 ‘모란불수문 향주머니’를 선정해 1일부터 공개했다. 박물관 2층 왕실생활실에 전시한 이 유물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1897~1970)의 것으로 추정된다. 영친왕은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 본명은 이은이다.

모란불수문 향주머니는 왕실 공예품의 높은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유물로, 주머니 한쪽은 홍색, 다른 쪽은 황색의 무문단(無紋緞) 즉, 문양 없이 짠 비단으로 표면이 매끄럽고 광택이 풍부하다.

모란불수문 향주머니는 남색끈목에 연한 자색 유리구슬을 꿰고 위아래 남색과 흰색 가락지를 끼워 아름답게 장식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갈무리.
모란불수문 향주머니는 남색끈목에 연한 자색 유리구슬을 꿰고 위아래 남색과 흰색 가락지를 끼워 아름답게 장식했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갈무리.

금실과 은실로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장수와 행복을 상징하는 불수감(부처님 손모양의 감귤류 열매)을 진금수로 수놓아 왕실의 번영을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이 주머니 안에는 한지로 싼 고급 향이 담겨 있었다.

주머니 입구를 15개의 모주름을 잡아 꿰뚫어 남색끈목을 연결하고, 연한 자색의 유리구슬 한 개씩을 끼운 위아래로 흰색과 남색 가락지를 몇 개씩 끼워 마무리해 양쪽으로 늘어뜨렸다.

해당 유물은 영친왕비가 소장하던 ‘영친왕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333점 국가문화재)’중 하나이다. 관리가 어려워져 1957년 일본 도쿄 국립박물관에 보관시켰던 유물들을 1991년 한일 간 협정을 체결하고 그해 10월 반환되었다.

호주머니가 없는 우리 전통 옷에 차고 다닌 주머니들. 모양이 둥근 두루주머니와 각진 모양의 귀주머니.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갈무리.
호주머니가 없는 우리 전통 옷에 차고 다닌 주머니들. 모양이 둥근 두루주머니와 각진 모양의 귀주머니.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 갈무리.

왕실생활실에는 모란불수문 향주머니외에도 다양한 주머니들이 전시되어있다. 우리 전통 옷에는 호주머니가 없어 따로 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주머니는 모양에 따라 둥근 모양의 두루주머니, 양쪽 모서리가 각진 귀주머니로 나뉘며, 용도에 따라 향낭, 약낭, 필낭, 수저집, 안경집으로 사용되었다.

주머니에는 금박이나 수를 놓아 장식하기도 했는데 문양마다 고유한 의미가 있다. 박쥐무늬와 문자무늬는 복과 다산, 모란과 연꽃무늬는 부귀를 상징한다. 십장생 무늬와 불로초 무늬, 수壽자 무늬는 장수를 뜻해 운수가 좋아지도록 길상吉祥을 기원했다.

해당 유물은 국립고궁박물관 유튜브와 문화재청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