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묘년 설 연휴가 지나고 본격적인 검은토끼의 해가 시작되었다. 지혜로우며 다산과 풍요, 장수를 의미하는 동물, 둥근 보름달 속에서 방아를 찧어 불사약(不死藥)을 만드는 동물로 알려진 토끼를 국립중앙박물관 곳곳에 놓인 유물 속에서 찾아보자.

국립중앙박물관 3층 청자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사진 강나리 기자.
국립중앙박물관 3층 청자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사진 강나리 기자.
크기가 작지만 섬세하게 표현된 세 마리 토끼가 향로를 받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크기가 작지만 섬세하게 표현된 세 마리 토끼가 향로를 받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 아름다운 고려 비색으로 빚은 토끼

12세기 고려시대 경기도 개성에서 출토된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를 등에 받치고 있는 동물은 세 마리 토끼이다. 음각과 양각, 투각, 철화, 상감, 첩화, 상형 등 청자의 모든 장식기법을 구사하고 섬세하게 향로의 몸체를 감싼 연꽃이 시선을 사로잡아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토끼가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다. (3층 고려실)

▶ 조선 회화 속 토끼

19세기 조선시대 문자도 속 토끼.
19세기 조선시대 문자도 속 토끼.

○ ‘문자도’ 속 토끼

19세기 조선시대 유교의 여덟 가지 덕목 ‘효孝 제悌 충忠 신信 예禮 의義 염廉 치恥(효도, 우애, 충성, 믿음, 예절, 의리, 청렴, 염치)’를 한자 획과 함께 동식물 그림으로 표현한 문자도 속 토끼. 달 속에 그려진 토끼는 유교 덕목인 치(염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토끼가 다산과 훙요, 장수를 의미하는 동물이란 점에서 백이와 숙제처럼 떳떳한 기상을 오래도록 이어가기 바란 선조의 마음이 반영된 듯 하다.

둥근 달을 바라보는 토끼. 19세기 조선시대 그림. 사진 강나리 기자.
둥근 달을 바라보는 토끼. 19세기 조선시대 그림. 사진 강나리 기자.

◯ 둥근 달을 바라보는 토끼

19세기 조선시대 비단에 그린 토끼 그림. 두 귀를 쫑긋 세운 토끼가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을 바라보고 있다. 토끼는 흰 바탕에 음영을 더해 털의 질감을 잘 나타냈고, 달은 진한 흰색으로 표현했다.

매를 피해 도망가는 토끼. 18세기 조선 최북의 그림. 사진 강나리 기자.
매를 피해 도망가는 토끼. 18세기 조선 최북의 그림. 사진 강나리 기자.

○ 매를 피해 도망가는 토끼

18세기 조선시대 최북(1712~1786)이 그린 그림. 바위 아래 토끼가 두 귀를 세우고 다리를 앞뒤로 짝 펼친 채 온 힘을 다해 도망가고 있다. 매는 살기 등등하게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살피지만 아직 토끼를 발견하지 못했다. 조선시대에는 매가 토끼를 사냥하는 그림을 새해를 맞이해 집 앞의 문에 붙이는 세화(歲畵)로 사용했다.

19세기 조선의 매를 피해 숨은 검은 토끼 그림. 사진 강나리 기자.
19세기 조선의 매를 피해 숨은 검은 토끼 그림. 사진 강나리 기자.
두려움에 얼어버린 토끼의 표정이 생생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두려움에 얼어버린 토끼의 표정이 생생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 포식자 매를 피해 한껏 웅크린 토끼

19세기 조선시대 서화 중 ‘매를 피해 숨은 검은토끼’ 그림. 검은 토끼 한 마리가 소나무 아래 구멍 사이로 머리를 들이민 채 몸을 한껏 웅크리고 매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나무 위에 앉은 매는 뾰족한 부리 사이로 붉은 혀를 드러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토끼는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동그랗게 뜬 모습으로 대비된다.

매에게 붙잡힌 토끼. 매의 형형한 눈빛과 토끼의 얼어버린 눈빛이 대조를 이루고 까치들, 꿩들의 표정이 생생함을 더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매에게 붙잡힌 토끼. 매의 형형한 눈빛과 토끼의 얼어버린 눈빛이 대조를 이루고 까치들, 꿩들의 표정이 생생함을 더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1768년 심사정이 그린 토끼와 매의 표정을 표현한 기법이 뛰어나다. 사진 강나리 기자.
1768년 심사정이 그린 토끼와 매의 표정을 표현한 기법이 뛰어나다. 사진 강나리 기자.

○ ‘매에게 붙잡힌 토끼’

1768년 심사정(1707~1769)이 그린 토끼 그림. 날카로운 매의 발톱에 잡혀 꼼짝 못하는 토끼는 눈마저 얼어붙고, 매는 눈에 힘을 잔뜩 주며 놓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친다. 매 위로 까치 한 마리가 놀란 눈으로 광경을 지켜보며 날개를 퍼득이고, 다른 까지는 소나무 가지에 서서 흥미롭게 내다본다. 바위 아래 장끼와 까투리는 무관한 듯 태평한 모습을 하고 있어 각 동물들의 표정이 생생하다. (2층 서화 2실)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김유신 묘에서 발굴한 십이지상 토끼. 사진 강나리 기자.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김유신 묘에서 발굴한 십이지상 토끼. 사진 강나리 기자.

▶ 남북국시대 십이지상 중 토끼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 또는 통일신라시대로 불리는 8~9세기 경주 충효동 전 김유신묘에서 발굴한 십이지상 중 토끼. (1층 통일신라실)

고려시대 청동거울 속 토끼. 사진 강나리 기자.
고려시대 청동거울 속 토끼. 사진 강나리 기자.
고려 청동거울 속 토끼. 사진 강나리 기자.
고려 청동거울 속 토끼. 사진 강나리 기자.

▶ 고려인의 삶을 엿보는 청동거울 속 토끼

고려시대 개성에서 출토된 ‘나무와 집이 새겨진 거울’에는 나무와 전각이 돋을 새김되어 있다. 첫 번째 거울에 새겨진 토끼는 불꽃문약을 배경으로 방아를 찧는 토끼 옆에 두꺼비가 그려져 있다. 두 번째 거울에는 오른편 전각 아래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데 예부터 토끼는 달 속에서 방아로 불사약을 만든다고 한다. (1층 고려 1실)

조선시대 연적. 사진 강나리 기자.
조선시대 연적. 사진 강나리 기자.

▶ 조선시대 선비의 애장품 연적 속 토끼

19세기 조선시대 청화백자로 만들어진 토끼 연적. (1층 조선3실)

17세기 일본 에도시대 청화백자 토끼무늬 접시. 사진 강나리 기자.
17세기 일본 에도시대 청화백자 토끼무늬 접시. 사진 강나리 기자.

▶ 일본 유물 속 봄날의 흰 토끼

17세기 전반 일본 에도시대 고이마리 양식의 청화백자로 만들어진 ‘토끼무늬 접시’ 접시에 토끼, 구름, 사각 모양 종이를 오려 붙인 후 분취법으로 청화안료를 뿜고 종이를 들어낸 뒤 세부 묘사를 했다. 접시 오른쪽에 ‘봄날의 흰 토끼(春白兎)’라고 새겼다. (3층 일본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4월 23일까지 2023년 계묘년 맞이 “토끼를 찾아라” 테마전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