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미술은 20세기 이전까지 서양 미술에서 흔적이 미미하였다. 변방 중의 변방이었던 러시아 미술이 이후 극적인 반전을 이루고 현대 미술의 아이콘으로 등장했다. 

예술감독 김영호 중앙대학교 교수가  1월 5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전시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예술감독 김영호 중앙대학교 교수가 1월 5일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전시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이를 주도한 이들이 러시아 아방가르드, 전위파 예술가들이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1890~1930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현대 미술 운동을 일컫는다. 이 아방가르드에는 러시아에서 일어났던 모든 미술 운동, 즉 상징주의(브루벨), 신-원시주의와 광선주의(라리오노프, 곤차로바), 입체-미래주의와 절대주의(말레비치), 구축주의(로드첸코, 타틀린, 리시츠키)뿐만 아니라 서유럽에서 활동하던 러시아 출신의 미술가들, 샤갈, 칸딘스키, 펩스너와 가보 형제까지도 포함한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4월 17일까지 열리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展〉에서 이들을 볼 수 있다. 이 전시에는 100년 전 러시아를 뒤흔든 아방가르드 작가 49인의 혁신적 회화 작품 75점이 소개된다.

관람객들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4월 17일까지 열리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展'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관람객들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4월 17일까지 열리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展'에서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100년 전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술감독 김영호 중앙대학교 교수는 1월 5일 기자 간담회에서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그동안의 서유럽 중심으로 짜여져 왔던 우리 근대미술의 지평을 러시아를 포함한 비서유권으로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러시아출신으로 유럽에서 활동한 칸딘스키를 비롯하여 말레비치는 서유럽뿐만 아니라 미국 모더니즘 미술사의 꽃을 피우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작가들이다. 칸딘스키나 말레비치가 러시아의 전통인 이콘화(성상화)와 루복(민중판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발견함으로써 우리나라 청년 작가들에게 서양 미술사의 연구 지평을 넓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나탈리야 곤차로바, 추수꾼들, 106*130.5, 캔버스에 유채, 1911. [사진=김경아 기자]
나탈리야 곤차로바, 추수꾼들, 106*130.5, 캔버스에 유채, 1911. [사진=김경아 기자]

 둘째로 김 감독은 러시아 아방가르드 전위파 예술가들이 20세기 초 전쟁과 혁명으로 점철된 격변기를 살면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면서 어떻게 현실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동참했는지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예술가의 사회적 소명을 창조적 열정과 실천으로 감수했던 작가들이 남긴 이 시대의 작품은 다름이 아닌 그 시대의 증거물이었습니다. 비록 당시의 예술가들은 관료화된 정권에 의해서 퇴폐미술로 낙인을 찍기도 했지만 이들이 작품이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보편적 진리의 가치를 추구하고 보편적 진리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담아내었던 그런 점들이 이번에 우리 한국의 젊은 예술 세대들에게 그리고 젊은 관객들에게 전달되기를 소망합니다.” 감 감독의 말이다.

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러시아 아방가르드에게서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을 볼 수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혁명과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러시아 아방가르드에게서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을 볼 수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유토피아의 건설을 위한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도 제 역할을 하는 예술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도전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 미술의 운명은 순탄하지 않았다. 192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관료화하면서 억압받기 시작했고 스탈린 정권에 의해 퇴폐예술로 낙인 찍히게 된다. “혁명을 추구했던 예술가들이 혁명의 정치세력에 의해 단죄받는 아이러니한 현실이었다.”(“전시도록”)

이 아방가르드 미술은 스탈린의 전체주의 체제에서는 관제 선전 미술로 전락했다. 그래서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실패한 혁명”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展"에서는 100년 전 새로운 세상을 열망했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展"에서는 100년 전 새로운 세상을 열망했던 젊은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하지만 김 감독은 "독일의 바이하우스와 미국의 미술관들이 러시아 아방가르드를 이어받았으며, 칸딘스키와 말레비치 그리고 로드첸코와 타틀린은 구미지역 미술사의 중심축을 이루는 거장으로 연구되기 시작했다”라면서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철의 장막이 걷히며 러시아 아방가드르는 20세기 미술의 아이콘으로 각광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힙한’ 감정을 주도하는 ‘미드 센츄리 모던’의 뿌리가 바로 칸딘스키와 말레비치 등이 주도했던 러시아 아방가르드이다.("전시도록")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 혁명의 예술展>은 1.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태동 2. 입체미래주의: 구상에서 추상으로의 이행 3. 러시아 아방가르드 영화 4. 추상회화의 등장 5. 구성회화의 귀환 6. 러시아 아방가르드와 디자인으로 구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