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부끼리는 네 꺼, 내 꺼가 없는 거야!” 한국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 83개국에서 시청률 1위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돌풍을 일으키며 또 하나의 한류 신드롬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오징어 게임에서 나오는 상금 456억이 자국 화폐로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려고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원화 환율을 검색하는 바람에 한국 원화 환율에 대한 조회수가 세계 3대 통화로 준기축통화로 불리는 엔화에 대한 조회수를 넘어서는 사상 최초의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한승용 국학연구소 실장
한승용 국학연구소 실장

2020년에는 한국말로 된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석권했습니다. 그리고 BTS의 한국어 노래 “라이프 고즈 온”이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K-드라마, K-팝, K-영화 등 세계를 휩쓰는 한류의 모든 물결이 한국어, 한글이라는 파도를 타고 세계로 퍼져나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류 문화 창조의 수단인 한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화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것은 말, 즉 언어입니다. 그리고 그 언어를 표기하고, 저장하여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 문자입니다. 한글은 문자입니다. 우리는 한글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쓰는 말, 언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고 살아갑니다. 한글이 얼마나 뛰어난 문자인지 574돌 한글날을 맞아 생각해 보겠습니다.

한글의 위대성은 현존하는 문자 중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문자라는 점이 꼽힙니다. 영어보다는 2배 이상, 일본어나 중국어에 비하면 5배 이상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습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통하지 않는 곳이 없어서, 비록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이든지, 닭 울음소리나 개 짖는 소리까지도 모두 표현해 쓸 수 있게 되었다.”라고 세종 시대 예조판서 정인지(鄭麟趾, 1396~1478)는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 기록했습니다.

이는 외국인들도 실감합니다. 문자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독일 에센대학의 플로리안 쿨마스 교수는 “엄밀히 말해 언어와 문자는 두 가지 다른 매체인데 그 모두를 감안할 때 한글은 최상의 문자입니다.”라며 “우리 모두 한글을 쓰면 어떨까요?”라고 제안합니다.

한국에 와서 살고 있던 독일 사람이 TV에 나와서 우리 말이 얼마나 좋은지 칭찬하면서 “독일어나 영어는 어떤 상황을 표현할 때 적당한 말이 없어서 그 상황을 풀어서 상대에게 설명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말에는 거의 모든 상황을 딱 알맞게 표현할 수 있는 말, 단어들이 대부분 있었다.”고 놀라워했습니다.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것인데, 언어인 우리 말 자체가 이미 세계 최상 수준의 표현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언어가 일반 백성들의 의사소통 수단이었다면, 문자는 대체로 세상을 지배하던 권력층들의 의사소통 수단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은 한민족이 수 천 년에 걸쳐 사용해오고 있는 그 언어를 귀천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문자로 표현할 수 있도록 천지인(天地人)의 원리로 훈민정음, 즉. 한글을 만들어 냈습니다. 마치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것처럼 풀뿌리 언어와 지배층 문자를 하나로 엮어냈습니다. 그래서 배우기 쉽고, 쓰기 좋게 만들었습니다.

다시 《훈민정음 해례》 서문을 보면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를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 만에 배울 수 있게 된다”고 했습니다.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글이 있게 되니...” 그렇게 천지부모의 마음으로 세종대왕은 미천한 백성들의 소리를 글로 표현하고 저장하고 전할 수 있는 한글을 만들었습니다.

그 미천한 백성들의 소리가 오늘날의 “오징어 게임”, “기생충”, 그리고 “미나리” 등의 작품 속에서 유독 세상에 가진 것 없고,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의 소리로 재현되어 퍼져나갑니다. 그리고 서구의 초인적 영웅주의 주인공 드라마에 눌려있던 힘없고 빽 없는,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존재와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깊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합니다. BTS는 스스로 겪은 삶의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면서 그래도 “나를 사랑하자(Love Myself)”라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한글이라는 문자에 담겨있는 언어의 힘을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언어는 힘없고 불쌍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면서 수천 년의 세월을 지내온 우리 문화의 결정체입니다. 그 문화의 결정체 속에서 한류가 무럭무럭 피어나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한국어, 한글을 더욱 사랑하고 애호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