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일제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할 목적으로 고대 한반도 지배라는 역사 왜곡을 위해 특히 가야문화권 고분들을 파헤쳤다. 이렇게 진행된 약탈과 도굴을 피해 보존된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고분에서 금동관을 비롯해 피장자가 부착했던 상태 그대로 몸을 장식한 꾸밈유물 일체가 온전히 확인되었다.

(시계방향으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조사지역 전경, 63호분 근경(서-동), 63호분 및 주변 고분 전경(서-동). [사진=문화재청]
(시계방향으로)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조사지역 전경, 63호분 근경(서-동), 63호분 및 주변 고분 전경(서-동). [사진=문화재청]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중 교동 Ⅱ군 63호분이 지난해 11월 39호분 봉토에 가려져 도굴되지 않은 채 처음 발견된 것이다.

머리에는 21.5cm높이의 금동으로 만든 관이, 양쪽 귀부분에는 금으로 만든 굵은 고리 귀걸이 1쌍이 확인되었다. 목과 가슴에는 남색 유리구슬을 3~4줄로 엮어 만든 구슬목걸이가 있었고, 허리에는 은으로 만든 허리띠가, 손 부분에는 은반지들이 확인되었다. 신발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올해 9월 발굴되어 큰 화제를 몰고 온 경주 황남동 신라고분 출토 장신구 일체와 매우 비슷한 구성이다.

63호분 석곽 내 피장자의 꾸민유물 노출 모습. [사진=문화재청]
63호분 석곽 내 피장자의 꾸민유물 노출 모습. [사진=문화재청]

아울러 피장자의 발치 바닥을 약 40cm 낮춘 길이 220cm, 너비 130cm 공간에는 2명의 순장자가 안치된 공간으로 추정되는 공간이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순장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치아 일부, 다리뼈 일부도 함께 확인되었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이번 63호분 발굴성과를 오는 11월 5일 오후 2시 온라인 설명회를 개최한다. 유튜브를 통해 발굴 당시 녹화한 동영상을 공개하고 발굴단원이 직접 과정을 설명하고 국민과 언론의 질문에 답변할 예정이다.(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nrichpr)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중에서 미정비 지역에서 학술 발굴조사를 시행해 2019년 11월 63호분 내 시신이 안치된 매장 주체부를 열어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했다.

(시계방향으로) 금동관 내부 관모로 보이는 직물의 흔적, 금귀걸이, 구슬팔찌로 추정되는 유물, 은허리띠와 은장식 손칼 및 은반지 모습. [사진=문화재청]
(시계방향으로) 금동관 내부 관모로 보이는 직물의 흔적, 금귀걸이, 구슬팔찌로 추정되는 유물, 은허리띠와 은장식 손칼 및 은반지 모습. [사진=문화재청]

이번에 발굴된 금동관은 3단으로 이루어진 3개의 나뭇가지 모양의 장식을 세우고 가장 아래에 너비 약 3cm의 관테로 이루어진 형태이다. 관테에는 굽은옥(곡옥)과 금동구슬로 이루어진 금동드리개가 양쪽에 있고, 관테 양 측면에는 원통형의 금동막대장식이 드리워져 있다. 세움장식 밑면에 관모로 추정되는 직물의 흔적도 남아있다.

유물들이 쏟아진 63호분 석곽은 길이 640cm, 너비 130cm, 깊이 190cm의 규모이며 피장자의 머리는 남쪽을 향해 있었다. 피장자 주변의 목질흔과 꺾쇠들이 확인되어 상자형 목관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장신구 이외에도 순장 공간으로 추정되는 부분에서 금동제의 가는 고리 1점과 항아리 2점, 쇠도끼(철부) 2점, 쇠낫(철겸) 1점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