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명상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이 발생했을 때 시해 가담자 처벌과 주모자 추방 등을 요구해 일본 정부가 사변에 가담했음을 인정하도록 만든 외교관이 있었다. 서울 주재 초대 러시아 공사로 12년 간(1885년~1897년) 러시아의 대조선정책을 최일선에서 담당했던 카를 이바노비치 베베르이다. 베베르는 동아시아 역사, 지리, 민속, 문화전문가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최덕규 재단 한일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김종헌 고려대 연구교수의 번역으로 ‘러시아 외교관 베베르와 조선’을 발간했다. 2013년 모스크바에서 출간된 벨라 박 교수(러시아과학원 동방학연구소)의 동명 서적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외교관으로서 생의 전성기를 보냈던 베베르의 조선 경험에 대한 일대기이다. 러시아와 조선 최초의 외교관계 수립과 전개과정에 남긴 베베르의 족적을 따라가는 여정을 통해 19세기 말 조선의 격동기와 마주하게 된다.
베베르 러시아공사는 청, 일본과 기타 제국주의 국가들의 조선에 대한 침략적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가 고종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기에 일본의 무자비한 위협을 피해 고종이 1년간 왕궁을 떠나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아관파천(1986. 2.11.~1897.2.20.)도 일어났다.
원 저자인 벨라 박 교수는 베베르와 관련된 각종 공문서와 보고서, 전문, 메모, 편지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베베르의 활동을 다각적으로 복원하고자 했다. 조러 수호통상조약 체결부터 청일전쟁, 아관파천 등 시간 순으로 베베르의 활동을 추적한 기록이다.
발간된 책 표지에는 상복을 입은 고종과 왕세자(훗날 순종)가 베베르와 함께 러시아공사관 현관에서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 자료로, 상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러시아공사관에 고종이 머물던 1896년 에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올해는 한국과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과 수교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가 활동했던 시기는 한‧러 관계의 원형이 만들어진 시기이기에 이번 출간은 의미가 크다. 고종의 북방정책에 대한 성찰과 한러 관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총 435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