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학의 선각자, 홍암 나철 서거 100주기를 기리는 추모 학술회의가 열린다. 

사단법인 국학연구소(이사장 박성신)는 오는 7일 오후 2시 서울시청 지하2층 워크숍룸에서 ‘홍암 나철 서거 100주기 추모 학술회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나철은 1863년 전남 보성군 출신으로 유학자로 살았다. 1905년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강제로 체결한 을사늑약에 대해 “매국노를 죽이면 국정을 바로 잡을 수 있다”라며 이듬해 실행에 옮기려던 우국지사였다. 그는 1909년 대종교를 중광했다. 유학자가 아니라 단군신앙을 통한 국학운동을 전개했다. 근대 국학의 선각자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후 활발한 활동으로 30만여 명의 신도가 생긴다. 이에 따라 일제의 탄압은 거세진다. 그는 1916년 8월 15일 구월산 삼성사에서 자결한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며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올해는 나철 서거 100주기가 된다. 그의 죽음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 김동환 국학연구소 연구원
 
경술국치 이후 죽은 목숨으로 살다
 
이날 김동환 연구원(국학연구소)은 “홍암 나철 죽음의 대종교적 의미”를 주제로 발표한다. 먼저 나철의 죽음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다.
 
일제는 대종교를 종교유사단체로 규정했다. 폐교를 명령하고 집회와 설당(設堂)의 불허는 물론, 나철 이하 모든 간부를 감시했다. 대종교와 관련된 사람이라면 고의로 검문하고 소송사건에 대해서는 이유 불문하고 불이익을 안겼다. 나철의 만주행도 철저하게 봉쇄했다. 이에 대해 김 연구원은 “나철은 대종교 재건을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었다. 대종교의 절망적 위기를 구하기 위하여 또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나철은 1916년 1월 1일 대종교 남도본사 삼신전(三神殿)에서 제천의례를 올린다. 4월 30일 김교헌에게 교주의 도통을 넘긴다. 8월 4일 나철은 단군천진(檀君天眞)을 가슴에 품고 구월산 삼성사로 향한다. 그는 삼성사 곳곳을 수리한다. 8월 10일 수도실을 정하여 북벽에 단군천진을 봉안한다. 11일 수행문을 수도실 문 밖 기둥에 붙이게 한 후 폐문수도(閉門修道)에 들어간다. 8월 15일(음) 오후 11시경 자결로 생을 마친다.
 
김 연구원은 “그가 ‘국망도존(國亡道存: 나라는 망했어도 정신은 존재한다)’의 가치로 대종교를 다시 세우고 ‘이신대명(以身代命: 나의 목숨으로 남의 목숨을 대신한다)’의 명분으로 위난을 극복했듯이 대종교 절체절명의 위기를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또 다른 의도”라고 말했다.
 
주목되는 것은 경술국치 이후 나철의 삶이었다. 나철은 경술국치의 소식을 접하고, 그 자신 또한 죽은 목숨이라고 선언했다. 죽은 나라를 위해 죽을 때까지 흰 옷을 입고 살겠노라 다짐했고 실천했다. 또 망국의 죄인으로 좋은 음식을 가까이 할 수 없음을 밝히면서 죽음의 순간까지 조촐한 음식으로 연명했다고 한다.
 
▲ 근대 국학의 선각자이자 독립운동가 홍암 나철(1863~1916)
 
사회적 타살이자 육신제 그리고 수행적 완성
 
김 연구원은 나철의 죽음을 3가지로 봤다. 사회적 타살, 육신제, 수행적 완성 등이 그것이다. 
 
먼저 사회적 타살에 대해서는 일제가 신도(神道)를 앞세워 조선의 정체성을 말살한 배경이 있었다. 일본의 국교인 신도를 통해 조선의 식민지를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력의 통치와 함께 조선인의 정신을 지배하겠다는 뜻이다. 사이토 총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조선인을 반일본인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일제에 맞선 단체가 대종교이고 그 중심인물은 나철이었다. 
 
김 연구원은 “일제의 총체적 압박은 대종교의 모든 것을 정지시키고 고사(枯死)시켰다”라며 “나철의 자결은 뒤집힌 사회가 강요한 사회적 타살과 무관하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는 대일항쟁을 일깨운 육신제(肉身祭)라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대종교의 독립운동은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대내외에 천명한 일대 사건”이라며 “항일운동 본산으로서의 역할과 총체적 저항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라고 말했다. 특히 나철의 자결 이후 독립운동이 들판의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나철의 순교로 인해 지리멸렬하던 민족전선이 통일된 정신적 지주를 가지게 됐다.
 
세 번째는 단순한 죽음을 넘어 수행적 완성이다. 그의 유서에 대종교를 위해, 하느님을 위해, 인류를 위해 순명(殉命)한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수행의 최고 경지인 폐기(閉氣)를 통해 목숨을 끊은 것은 성스러운 죽음을 넘어 하늘과 만나는 조천(朝天)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김 연구원 외에 신운용 박사(사학,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가 ‘홍암 나철 연구에 대한 성과와 과제’를, 이승호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교수가 ‘홍암 나철과 한국철학’을 주제로 발표한다. 토론은 이숙화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사과정, 백도근 장안대학교 교수, 박승길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 등이 맡는다.
 
문의) 02-3210-1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