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세(甲午歲) 가보세
을미(乙未)적 을미적 거리다
병신(丙申)되면 못 가리

1894년(갑오년) 이 땅에서는 동학농민운동이 있었다.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항거하는 광범한 농민층의 분노가 단순 지역 봉기를 넘어 밑에서부터의 혁명이 되었다. 하지만 일본군을 앞세운 위정자들에 의해 혁명은 실패로 끝난다.

그렇게 맞이한 을씨년스러운 1895년(을미년), 국모(國母)인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일어났다. 결국 1896년(병신년) 고종은 친러세력에 의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다(아관파천 俄館播遷). 이를 계기로 열강들은 이 땅에서의 온갖 경제적 이권을 침탈하며 조선의 국운은 크게 기울게 된다.

1894년부터 1896년까지가 이 땅의 안타까운 역사다. 외세를 떨쳐내고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가보자고 했건만, 제정신을 찾지 못하고 외세에 휘둘려 을미적거리다 보니 병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120년이 흘러 새로운 병신년, 2016년(단기 4349년)을 맞이했다. 올해 역시 녹록지 않다. 새해가 되었건만, 대통령은 야당은 차치하고, 여당과의 소통조차 원활치 않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은 연일 언론지상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만 드높일 뿐이다. 여당은 올해 4월 총선 공천권을 두고 계파 갈등을 벌이고 있으며, 야당은 이미 두 집, 세 집 살림을 시작했다.

경제는 5년째 2% 저성장을 이어가고 있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와 여야는 세계 경제 흐름이 엄중하건만, 경제 관련 법안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를 뒤로 미루고 있다. 부는 세습되어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극단적인 빈부 격차는 아무리 노력해도 잘 살 수 없는 대한민국 구조적 경직성을 견고히 할 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고의 자살률과 최저의 출산율이라는 불명예도 여전하다. 현재에서 희망을 갖지 못하고, 미래 자식세대에 대한 희망도 품을 수 없는 이 땅의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길은 무엇인가.

결국 답은 사람이다. 사람보다 권력, 사람보다 돈, 사람보다 명예를 우선하면서 대한민국은 불신사회가 되었다. 널리 모두가 이로운 홍익인간 이화세계가 아니라, 물질 만능의 이기주의가 팽배하면서 우리는 남을 밟고 올라가기를 바라고, 남보다 더 많이 갖기를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물질적인 풍요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통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인간성 회복을 통해 내가 귀하듯 상대방도 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인성 회복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2014년 12월 29일 대한민국 국회는 인성교육진흥법을 통과시켰다. 여야 의원들은 2014년(갑오년) 세월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이날 정쟁을 뒤로하고 재석 의원 전원의 찬성표로 가결했다. 그리고 2015년(을미년) 7월 21일 시행령과 함께 인성교육진흥법이 시행되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실효성 없는 법일 뿐이라고 그 가치를 폄하하기도 한다. 법 하나가 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뭐가 바뀌겠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2016년 우리가 맞은 새해는 정치, 경제, 사회, 외교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제가 없다.

하지만 인성이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남성과 여성,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의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 하였다. 첫 단추를 잘 끼었다. 인간의 가치를 가장 우선하는 세상으로 가보자. 이제는 더는 을미적 거려 병신 되지 않도록, 한마음 한뜻으로 나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