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또다시 부정부패 척결 이야기가 나와서 전직 고위공직자와 국회의원 재벌 그리고 전직 대통령들까지 떨고 있다고 한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이명박 대통령까지 모두 17대가 되는데 취임 초에 부정부패 척결을 선언하지 않는 정권이 없었다. 그러나 예외 없이 용두사미 흐지부지 끝났다. 말은 쉬운데 어려운 것이 부정부패 척결이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는 참으로 심각하다. 지금 우리나라는 부정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고질병인가를 모르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살인자가 살인을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같다. 언젠가 발생한 연쇄살인범이 자기가 기르는 개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신문에 나서 모두 어느 쪽이 짐승인지 분간할 수 다고 말했다. 

필자는 1993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의 군사정권(1961∼1993 36년간)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잡은 김영삼 문민정부가 이제는 부패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 주는가 싶어서 월간지『신동아』에다「부정부패의 역사」를 주제로 한 글을 연재하였다. 

조선시대와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를 비교해 보니 조선시대가 훨씬 깨끗한 것을 알았다. 당쟁의 경우도 조선시대의 당쟁이 훨씬 싸움이 점잖았다. 조선시대에 두 번 반정이 있었다. 반정이란 혁명이다. 임금이 부정하면 반정이 일어나 수습되었으나 근대에 와서는 부정이 심해서 동학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조병갑이 착취했다는 돈이 불과 3만 량에 쌀 수백 석이었다. 요즘의 부정에 비하면 어린아이 용돈이었다. 조선왕조가 대한민국보다 훨씬 깨끗한 정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을 요즘의 부정공무원이나 재벌에게 얘기한다면 다 웃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군사혁명을 일으키면서 부정을 척결한다고 했다. 전두환 대통령도 부정부패를 없애버리겠다고 소리쳤으나 그만둔 뒤 엄청난 비리가 드러나 감옥에 가야 했다. 여의도에선 금빛 나는 63빌딩을 권노갑 등 김대중 신복들이 해먹었다고 한다. 대통령 자신이 퇴임 후 법망에 걸려 감옥에 간 것은 고사하고 자살까지 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도 자기는 깨끗했다고 하지만 아랫것들이 술집에서 거액의 수표를 흘리고 다니지 않나 신군부의 부정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수표를 흘린 인물은 지금 모 신문에 자서전을 쓰고 있다. 

기왕 이야기가 났으니 5.16 혁명 후 대통령이 헬리콥터를 타고 강원도 춘천에 갔다가 돌아오는데 아래를 내려다보니까 북한강 양수리 못미처 지도에도 없는 왕릉이 보였다. 대통령이 보고 “저 왕릉이 조선시대 어느 왕의 무덤인가” 하고 물었다. 그러나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알고 있어도 차마 말을 못했던 것이다. 청와대로 돌아온 대통령은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한 측근이 “그게 이(아무개)의 가묘입니다.”고 대답했다. 이 아무개란 바로 대통령이 가장 신임했던 제2인자 이 아무개였다. 등잔불 밑이 어둡다고 했다. 자기가 가장 믿었던 심복이 거대한 릉의 주인공이었다.

훗날 누가 구경하러 가보자고 해서 춘천 가는 길에 왕릉을 들여다보고 필자도 놀랐다. 북한강으로 보트장이 나있고 호화 별장이 있는데 들어가 보니 일본 삼나무로 벽을 장식한 목욕탕이 있었다.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이 아무개가 당대 제일의 미인 김(아무개)와 같이 놀아나던 목욕탕이라 했다. 그러니 아무리 대통령 자신이 깨끗하다 해도 아랫것들의 부정을 단속하지 못하면 허사다. 요번 김영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고 하는데 초안을 잡은 김영란 자신은 자기가 쓴 부정부패방지법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국회의원들이 통과시킨 법은 100만 원 이상의 뇌물을 본인과 부인이 받으면 걸리지만 아들이나 딸이 받은 것으로 하면 괜찮다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시 국회의원 나리들의 머리가 김영란 한 사람의 여인보다 좋았던 것이다. 그러나 후일에 그들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이야기는 약간 빗나갔으나 권력과 돈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요즘 국회 청문회를 어렵사리 통과한 새 이 아무개 국무총리가 부정부패 척결을 내어 걸고 정치를 시작하였는데 시의적절한 일로서 모든 국민이 환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포스코나 경남기업 같은 재벌급 기업인이 감옥에 가고 그동안 헛돈을 쓴 지방자치단체장이 모두 걸려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니 금액이 엄청난데다가 잡혀갈 사람이 많아 걱정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에 투입한 돈까지 관련된다고 하니 관련 공직자들의 잠자리가 어수선할 것이다. 부정부패는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받는 사람이 벌써 둘이요 하늘과 땅이 보고 있으니 벌써 네 사람이 보고 있다. 그러니 뇌물에 비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더 무서운 일은 그 액수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무엇이 부정이고 부패인지 모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어느 지방자치단체의 공직자가 노인들을 위해 써야 할 돈 24억을 횡령했다는 기사를 본 것은 어제였는데 오늘은 새마을금고의 고객 돈 1,500억 원을 횡령했다는 기사가 났다. 내일 또 어떤 기사가 날지 알 수 없다. 위로 대통령과 장차관 그리고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의 부정에서부터 아래로는 학교 회사 은행 그리고 아파트 관리비까지 뜯어먹는 관리와 사무장에 이르기까지 부패의 고리가 뻗어나갔다. 이러다가는 우리나라가 언제 망할지 모른다. 

이상의 글은 1999년에 쓴 필자의 글「부정부패의 역사」를 재인용한 것이다. 1999년이라면 15년밖에 안 되었는데 전임 해군참모총장이 3년 형을 받고도 모자라 다음 해군참모총장이 또 검찰에 불려가서 방산부정사건에 대해 심문을 받고 있다고 하니 이런 해군 장성을 믿고 어떻게 국민이 마음 놓고 잠을 자겠는가. 부정부패는 갈수록 진화한다는 말이 있는데 맞는 것 같다. 요즘 국회의원들이 헌법 개정이 시급하다고들 야단이라 한다. 개헌의 골자가 내각책임제와 대통령중임제라고 한다. 더 시급한 문제는 부정부패의 척결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 엉뚱한 문제를 가지고 시시비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5년마다 새 대통령을 뽑고 새로운 내각이 구성되었지만 매번 신임 장차관들의 얼굴들을 보면 미덥지 않다. 혹시 부정부패의 전과자가 아닌가 의심해 보지만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장차관에게는 능력이나 학식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시해야 할 자질은 도덕성과 신뢰도다. 요즘의 장차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는 경제 관련 장관들이다. 국회의원을 하다가 장관이 되더니 얼굴이 맑고 깨끗해져서 보기에는 좋으나 그의 머릿속에 든 것이 없어서 그런지 이웃한 일본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다. 의사는 환자의 병을 진찰하고 환자에 맞는 약을 먹여야 한다. 환자가 아닌 다른 환자에게 먹이던 약을 먹여서는 병이 낫지 않는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아는 상식인데 왜 당신만 모른단 말이오. 

국민은 "제발 성실하게 일해주시고 부정부패의 꼬리를 잘라 주시오” 라고 바랐지만 장관들의 생각은 다른 데 있다. 최 모란 기획재정부장관은 필자가 재직했던 S대 경제학과 출신이라 한다. 누구보다도 그가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의 얼굴만 깨끗해졌을 뿐 머리에서 나오는 정책은 엉망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닮아서 그런가 기다려 보란 말인가. 지나간 이야기지만 대학에 다닐 때 좀 더 열심히 경제학 공부를 했더라면 “돈을 풀어라”는 일본 아베정권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수라라는 가수가 부르던 노래 “아! 대한민국”이란 유행가는 전두환 대통령 때 히트한 곡이었지만 백담사로 들어간 전두환은 그 노래를 듣지 못했다. 청와대 내실에 커다란 금고를 갖다 놓고 재벌들이 바치는 돈을 챙겨 두었다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금고와 돈을 같이 주었다는데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노태우 대통령. 이런 대통령들을 믿고 나라를 맡긴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의 처음 지지율은 78% 사상 초유의 대기록이었다. 그의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은 이름부터가 참신했었다.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 민족 민중의 새 시대가 왔다고 소리 친 386 세대가 정부를 장악했으나 부정부패의 양과 질은 더욱 더 늘어나 <억!>하고 죽던 사람들이 <조!> 하면서 죽는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러니 부정부패는 체제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선언하였다. 얼마나 알기 쉬운 말인가. 물러날 때 “나는 단 한 푼도 먹은 것이 없다”고 공언할 정도로 깨끗했다. 그러나 그도 즐겨 쓰던 대도무문大道無門이란 휘호가 차남 현철 씨 때문에 빛을 잃고 말았다. 거기다 더해서 국민에게 외환위기를 선사하였다. 그러면 그 다음의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권은 깨끗했는가. 물어보지 않아도 다 아는 사실들이 기다리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하는데 엄청난 돈거래가 있었다는 소문. 돈으로 노벨평화상을 샀다는 소문까지 곁들이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한국의 권력형 부정부패의 로켓이 멀리 유럽의 스웨덴까지 날라 가더니 노벨평화상의 값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 부정부패라는 시꺼먼 구덩이 속에서 단 한 발이라도 뺄 수 있을까.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부정부패는 너무 길고 질긴 역사에 뿌리박고 있다. 경제가 제일이라 하면서 돈을 물 쓰듯 하는 것이 과연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일인가. 

언젠가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의 물이 마르고 있었다. 요즘에도 비가 오지 않아 저수지의 물이 차지 않는다고 하는데 지구온난화의 탓이라고만 말하고 하늘이 노해서 그런 줄을 모른다. 한강 가에 희우정을 지어놓고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 태종우가 내릴 리 만무하다. 옛날 사람들이 몰라서 기우제를 지낸 것이 아니다. 알면서도 지낸 것이다. 그랬더니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지금도 바가 오지 않는 것을 보니 분명 하늘이 노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성직자가 죽으면서 유언으로 남긴 말이 있다.

“내가 저승에 가보니 천당이 없더라. 알고 보니 천당은 내 가슴속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제는 표만 생각하고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슴 속에 있는 양심을 두려워하여야 한다. 우리는 단 한번 잘못으로 일제침략을 받아 망국하였으나 10년이 못되어 3.1운동을 일으킨 국민이다. 지금 선량이라는 국회의원님들은 국민의 가슴속에 불타고 있는 양심의 횃불을 보고 깨끗한 정치를 하는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때마침 부정부패의 나라를 청렴도 세계 5위의 나라로 올려놓은 인물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류(이광요)가 타계하였다. 싱가포르와 대한민국은 다 같이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이나 대한민국은 부정부패 척결에 실패했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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