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부안군 월천리석장승(사진=윤한주 기자)

경이로웠다. 아니 신비했다. 어떠한 표현을 써야 할까? 고민될 정도다. 지난 11일 전라북도 부안군에서 만난 2개의 석장승 이야기이다. 왼쪽은 왕검(단군)이고 오른쪽은 환웅이다. 한자로 이름까지 새겼으니 단군문화의 실체가 분명하다. 돌을 만지니 수백 년의 역사가 전해지는 듯했다. 지난해 대전 단묘에서 환인, 환웅, 왕검(단군) 석상을 취재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름이 없었다. 반면 부안군의 환웅과 왕검은 달랐다. 크기로 보면 사람 키에 해당한다. 누가 만들었을까?

정식 이름은 월천리석장승이다. 1995년에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30호로 지정됐다. 이를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월천리 출신 매당 허방환(梅堂 許邦煥) 선생이다. 이후 문화재로 지정하는 데 공헌한 사람은 부안군 향토사학자 김형주 씨다. 먼저 발굴 이야기를 만나본다.
 
▲ 전라북도 부안군 월천리석장승이다. 앞면 복부에는 예서로 환웅(桓雄)이라 새겼다(사진=윤한주 기자)
 
매당은 1894년 진사에 합격한 우재(愚齋) 허권(許權)의 아들로서 부안지방 4대 갑부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대일항쟁기 친일파의 거두였던 전라북도 도지사 김대우(金大羽)와도 재판을 벌여 승소해 화제가 됐다. 부안 사람들은 매당이 똑똑하고 배짱이 있던 분이요, 배일(排日)적인 인물이었다고 평했다. 집에는 고종황제의 아들인 의친왕(義親王)이 친필로 쓴 매당(梅堂)이라는 당호 편액이 처마에 걸려 있었다. 지금은 강도를 당해 없어졌다는 것이 손자 허 탁 씨의 말이다. 
 
매당은 매월 초하루 보름이면 개암사(開岩寺)에 불공을 드리려 다녔다. 어느 날 꿈에 산신이 나타나 “내가 거북뫼(龜山) 도랑에 누웠는데 네가 내 배를 밟고 다니니 내가 배가 아파서 못 살겠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거북뫼 도랑에 가서 살펴보니 과연 한 쌍의 석상이 다리로 놓여있었다. 그는 일꾼들을 동원해 집으로 옮겨 세웠다. 김형주 씨가 매당의 며느리 정태인 여사에게서 들은 것이다.
 
▲ 전라북도 부안군 월천리석장승이다. 앞면 복부에는 예서로 왕검(王儉)이라 새겼다(사진=윤한주 기자)
 
처음 발견된 시기는 1930년대 초라고 한다. 배메산 뒤 거북뫼에 있는 수로를 건너다니는 돌다리로 묻혀 있던 것이다. 대일항쟁기 최초로 단군전을 지은 이진탁 선생이나 대전 단묘의 창립자 남지훈 여사 등이 단군의 현몽(현몽(現夢: 죽은 사람이나 신령이 꿈에 나타남)이 계기가 됐다고 하니, 스토리가 비슷하다.
 
김 씨는 “문화재로 지정할 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류승국 원장이 감정했고 300년 이전의 것”이라며 “1909년 나철(羅喆)은 단군을 신앙하는 대종교를 세웠다. 그 전에 나온 단군신앙의 신앙신체로는 희귀한 자료”라고 말했다.
 
화강석재로 만든 장승의 앞면 복부에는 예서로 환웅(桓雄), 왕검(王儉)이라 새겼다. 뒷면에는 장백산(長白山), 구룡연(九龍淵)이라고 했다. 백두산이라고 하지 않고 중국에서 부르는 장백산이라고 표기한 점이 눈에 띤다. 구룡연은 우리나라 3대 폭포의 하나인 구룡폭포 아래에 깊이 13m의 연못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단군상은 크기 182㎝, 두상 55㎝, 밑둘레 158㎝이고, 환웅상은 크기 172㎝, 두상 56㎝, 밑둘레 140㎝이다.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는 “환웅이 있다는 것은 (제작자가) 『삼국유사』의 '고조선(古朝鮮)조'를 읽었다고 볼 수 있다”라며 “부안군은 바닷물에 잠겨있었다. 육지와 변산반도가 바닷물로 갈라져 있던 것인데 육지로 변하면서 부안 땅이 된 것이다. 섬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단군문화유적이 남아있는 것”라고 설명했다. 
 
▲ 매당 허방환 선생이 발견한 월천리석장승이다. 환웅과 단군의 역사를 증언하는 것처럼 서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실제 부안군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돌솟대와 돌장승이 많다. 섬이라는 지형 덕분에 외래문화가 들어오기 전의 귀중한 자료가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이 박 교수의 말이다.
 
허 탁 씨는 취재는 허락해도 인터뷰는 고사했다.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별세한 후 조부의 책은 모두 버렸다고 한다. 김 씨의 말에 의하면 당시 매당의 유품을 훔치려던 강도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김 씨는 “매당의 집에 도교나 신선사상 관련 책이 많았다”고 말했다. 단순히 단군과 환웅 석상만 모셨던 인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석상 앞의 제단에 대해서는 매당 선생이 초하루 보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보안면 차원에서 제사를 지냈고 지금은 끊어졌다. (계속)
 
■ 월천리 석장승 (바로가기 클릭)
부안군버스터미널에서 500번대 버스를 타면 20분이면 월천리에 도착한다. 정류소에서 노인회관이 왼쪽으로 보이고 오른쪽이 매당 허방환 선생의 자택이다. 지금은 손자인 허 탁 씨가 산다. 집 안에 환웅과 왕검(단군)이라고 새겨진 석장승을 만날 수가 있다. 
 
■ 도움 받은 책
1. 박성수, 『단군문화기행』, 석필 2009년
2. 김형주, 『부안 속의 역사문화 이야기 땅 이름 마을 이름』, 부안문화재단 2013년